안 언다더니?
속으로 집주인 아저씨를 원망했다.
이사하기 전, 여름이었는데도 화장실이 유달리 휑해 보여, 뭐든 별로 따져볼 줄도 모르는 내가 물었다.
겨울에 추우면 수도관이 얼지 않냐고. 그랬더니 주인아저씨가 그런 일 없다고 단언해줬다. 그래서 안심했는데...
여름날 거실 바닥에 뜬 무지개그래도 드물게 한파가 온대서 나름 주의하려고 화장실 세면대 수돗물을 켜고 잔 것까지는 좋았다.
수돗물이 나오니까.
문제는 세탁기 급수기였다. 아니, 어쩌면 세탁기와 호스로 연결된 수도꼭지까지 얼었던 것 같다. 세탁기 자리는 세면대보다 외벽 쪽이고 창문도 가까우니... 빨랫감을 넣고 세탁기를 가동했다가 급수가 안 되는 걸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이럴 수가!
이러다 겨울에 손빨래하게 되고, 손빨래해대느라 과로하고 그러다 아프면 이 무슨 악순환인가... 이미 한 달도 넘게 겨울 감기에 시달렸던 게 얼마나 무섭던지, 이제 아프다는 건 겁부터 났다.
어쩌지? 맨 수도꼭지라면 촛불이든 뜨거운 물이든 쉬운 방법도 있으련만, 세탁기 급수기는 호스가 조여져 있고... 서두른다고 악화시키면 도리어 곤란할 것이다. 이럴 땐 인터넷을 검색해 보는 것도 방법이지.
휴대폰을 든다.
핫팩 없는 겨울을 생각할 수 없다. 통증도 완화하지 추위도 잊게 하지...어라! 이런 방법이 있어?
핫팩을 헝겊으로 싸매 주라는 조언을 발견하고 기뻤다. 마침, 집에는 내가 쓰려고 사다 놓은 핫팩이 많으니, 보자기를 찾아 매달아 주는 것쯤은 쉬운 일이다. 역시 검색해 보길 잘했어.
그러나, 오래 걸릴 것인가?
반나절이 지나도 여전히 급수가 되지 않는 세탁기.
우우...
그 막간에, 영천 시장 뒷길에서 '두 남자 차돌 떢볶기'를 운영하는 숙현 씨와 통화.
원래 통화한 이유는 한파에 식당은 이상 없는가, 안부 묻는 일이었다.
식당은 이상 없는데, 눈길에 언덕길이 많아 배달이 불가해서요, 며칠 휴업했어요.
그래요? 오토바이로 눈길은 정말 너무 위험해요.
같이 걱정을 하다가,
근데 우리 집은 세탁기 급수기가 얼었어요. 핫팩을 매달아줬는데도 아직이네요.
하고 내 사정을 말하니,
화장실에 난로를 켜 두는 게 좋겠네요? ㅡ그런다.
전기세보다 동파되면 더 큰 일이라고.
딴은... 일리 있는 얘기다.
화장실에 난로를 놓자면 물이 튈까도 걱정되고, 차라리 거실의 난로 열이 화장실로 통하게 화장실 문을 열어두는 식으로 해야겠네요.
통화를 끊자마자, 나는 화장실 미닫이 문부터 열고 전기난로 스위치도 '강'(强)으로 높였다.
그렇게 반나절쯤 지났을까, 드디어 세탁기에 물이 흘렀다. 큰 일 하나 해결한 듯한 상쾌함이라니!
그렇지, 이번엔 변기야.
실은 지난밤에 세탁기 급수기처럼 변기의 급수기도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아침부터 세탁기에 놀라고 변기에도 놀랐지만, 방금 전까진 세탁기가 더 신경 쓰여서, 변기 쪽 벽 아래에 따로 수도꼭지가 있다는 상식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맞아, 그쪽에도 핫팩을 매달아줘야지.
그러고 보면 핫팩을 두 봉씩 사다 두길 너무 잘했지. 봉지를 뜯고 나서야, 옷에 붙이는 접착용이 아닌 걸 알고, 잘 못 샀다고 후회하긴 했지만...
뒷벽 아래로 수도꼭지를 찾아 핫팩을 꽁꽁 싸매 주려니 속으로 좀 아까운 생각도 난다. 이거 하나에 천원도 넘는 건데 벌써 세 개째다. 대신 오늘은 내 몸에 쓰지 말자. 그래서 내 집으로 이어진 수도관(水道管)에게 다짐 한 마디.
이 핫팩 내가 쓰려고 사둔 건데 오늘 특별히 너희한테 쓰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녹아줘야 해.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핫팩도 달아주고 난로도 연일 켜 둔 채이지만 변기 수통은 계속 비어있고, 뚜껑을 열어볼 때마다 내가 일일이 물을 채워 넣어야 했다.
이래저래 한바탕 난리 법석을 피우다 보니, 새삼 외풍(外风)이 걱정되어서 닥치는 대로 바람구멍을 막고 비닐 장막도 치고, 가지고 있는 재료로만 메꾸려니 실내 풍경이 점점 빈티 범벅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도 작고 손이 미숙한대로 한참 동안 방한(防寒) 작업에 몰두했다.
이제는 더 하려도 남은 재료가 없구나.
할 수 없이 얼추 수습을 하고, 난로 옆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나마 손을 댔다고 거실이 자못 아늑한 게 겨울날의 시정(诗情)이랄지, 문득 이 식탁에서 글 작업이든 그림 작업이든 원하는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한파 하루 전에 배달된 전기 난로의 공로가 가장 크다.)
마침, 식탁 위에 물감통이 보인다. 참, 물감통 안에 쓰다만 흰 물감이 아직 있지...12월 말부터 백련 두 폭을 그리고 있는데, 아마 다음 시간에 끝맺음 할 것 같다.
그러려면 아마도 미리 연꽃잎에 흰색을 덧칠해 가는 게 좋겠지?
그림을 펴 놓고 붓을 들었다.
혼자 칠하려니,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 틀리는가 알 바 없지만, 어쨌든 접시에 풀어놓았던 흰 물감을 다 쓰고 나서 그림을 접었다.
벌써 전등을 밝혀야 할 시간이다. 오늘도 이렇게 짧은 한낮이 아쉽게 지나가버렸다. 헤아려 보면, 원단부터 내일 내일 하고 미뤘던 타자 작업을, 아무 진전 없이 신년의 열흘을 보낸 것이다.
마음과 달리 몸은 한없이 굼떠서...
몸이 고장인가 하면 집이 고장 나고...
갈 길은 먼데 어찌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게 다 풍토병 때문인가?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웬 풍토병? 그야말로 여기저기 항구 따라 떠다니던 배가 모처럼 고국에서 꿈같은 1년을 보냈다고 엊그제 자축한 터에 말이지, 말하고 있는 내 귀에조차도 모순으로 들린다. 그래도 어쩐지 그 말이 제일 개괄적이다. 그리고 어느 계절보다도 서울의 겨울나기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추위에 대한 두려움은 5년 전, 십 년 남짓 머물렀던 청두를 떠나 항조우에 갔을 때부터 심해진 것 같다. 아니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청두에서부터 계절 순환 자체가 내 몸에 무리를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아니, 거기는 비교적 따뜻한 지방이잖아. ㅡ라고 스스로도 반문하게 되지만, 그런데 한 가지, 한 지방에 두 계절 이상 머무르면 반드시 받아들이게 되는 엄연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면 안 된다.
그 지방의 계절 순환은 그 지방만의 법칙이 있어서 이주자는 맹렬한 속도로 그 법칙을 익혀야 한다는 것.
같은 1년 4계라지만 미묘하게 다른 풍토. 그때부터 우리 몸은 전시 태세가 된다. 내가 이렇게 과장하는 것은 어쩌면 내 신체리듬이 마침 갱년기에 접어들어 유독 더 힘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늦가을 이후 내 글 매 편에서 건강 문제가 언급되니, 읽는이에 따라서는 나를 비관주의자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안할 것은 내 나이가 노쇠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시기적 문제이다. 나 스스로 이 점을 수긍하고 주의하는 것일 뿐, 특별히 심하다는 얘긴 아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병을 통해 일찍이 터득한 지혜가 있는데, 청춘이라도 병이 들면 노인보다도 더 허약한 법이니 굳이 노쇠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하나. 또, 병도 적당히 활용하면 자신의 성장에 이롭다는 것 하나ㅡ이렇게 두 가지이다.
이를테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건강한 자라면 조금쯤은 향락을 추구하는 성향이 욕구 있기 마련인데, 아프면 우선 회복을 위해 그런 욕망에서 거리를 지키려하는 조심성이 생긴다. 이 조심성이 바로 병으로 하여 얻은 이익인 것이다. 즉, 맑은 가난이란 말처럼 맑은 아픔은 생활을 간결하게 해 준다. )
어쨌든 항조우에서 2 년, 이제부터는 그곳의 4 계절에 대해 좀 알 것 같다 싶을 때, 즉 제대로 다 적응도 하기 전에 나는 다시 중국 동북부의 산둥지방으로 부임하였다. 산을 깎아 지은 교정인데다, 내가 살 아파트는 더 높은 곳인 바람이 윙윙윙 울고 지나가는 산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재작년 12월쯤에도 혼자서 골골거렸다. 찬바람에 힘이 들었던 탓이다. 언제나 나는 삭신이 무력해지면 무조건 몸살이라 부르는데,
"상한(伤寒, 찬 기후에 병이 듬) 이군요." 중국에서의 병명은 그랬다.
새로운 곳에 익숙해지려면 신체적으로도 환절기마다 고비이다. 아니 어쩌면 매일매일이 고비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몸에 무지한 게 아니라 '적응"이란 절대적 임무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누군가는 해마다 같은 계절에 비슷한 병을 앓는 사람은 자신의 몸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 했지만, 그것도 한 곳에 오래 머문 경우에나 해당될 것이다. 내 몸은 이제 땅만 바뀌면,ㅡ 설사 그곳이 내 조국, 서울의 땅이라도 ㅡ자동적으로 항전(抗战) 태세로 전환된다. 매일매일 격렬한 투쟁이 있고 보이지 않는 승패가 정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하루 24시간은 언제나 너무도 빠르다. 그러느라고 맘먹고 있는 작업이 있는데 석 달 넉 달 시작도 못한 채 정신없이 지났다. 그래서 내 맘이 시리다.
계획을 미루게 되는 일 때문에, 몸이 약해지면 나는 내심 초조하다.
조급하지만 조급해하지 말자.
저녁마다 스스로 얼어붙는 자책감을 녹여낸다. 나를 강박증과 불안에서 이완시키는 방책으로 딴 데 시선을 돌려본다.
자아, 오늘도 봐라, 걱정을 누르고 기다려 준 사이에, 변기 수통에도 물이 차올라 있지 않은가.
느긋해지자!
나를 달래는 이유는 하나.
늦은 것보다 더 나쁜 건 지레 포기하는 거니까.
그래, 그러니까 마음이 있는 한 전진이라고 믿자.
네 마음만 견고하면 결국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