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읽은 뉴스 기사.
대략을 말하면 제주산 감귤이 러시아에 수출되고 있는데, 제법 환영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귤을 먹어줘야 해.
이웃에 사는 허약한 할머니는 내가 나눠준 귤 10 개에 대한 보답인지, 귤 한 봉지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되었지만, 아아, 네에. 하고 덥석 받았다. 왜냐하면, 옥탑까지 그걸 들고 올라온 할머니를 우선 부축해 맞아야 했으니까. 그렇게 얼떨결에 받은 봉지에 얹혀진 말씀이, 가을 겨울엔 귤을 가끔 먹어주는 게 좋다는 상식 풍부한 말씀이었다.
사실 그 직전에 나도 그런 생각으로 귤 한 상자를 샀다. 한 상자를 산 김에, 10개를 조심스럽게 추려서 할머니한테 갖다 주었다. 귤을 담으면서도, 이 할머니는 소화기관이 약하댔는데.. 혹시 안 좋아하면 어쩌지? 걱정이 들어서 우선 10개만 드려보자는 맘이었다. 갖다는 줬는데 잘 드실지... 우리 어른들은 뭘 받아도 구체적인 표현을 삼가기 때문에 할머니의 진짜 반응을 알 수 없는 채 몇 날이 지난 것이고...
그런데, 할머니가 원래 귤을 좋아하셨구나... 11월의 끝무렵에 할머니 손에서 내 손으로 귤 한 봉지가 전해지고 나서야, 내가 제대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때는 혼자 생각했다.
나중에 귤 사면 또 나눠 드려도 되겠구나.
그러나 생각만으로 해를 넘겼다.
12월 한 중간에 한 번 더 귤을 사긴 했지만, 할머니와 나누지 못했다.
할머니를 찾아 대문을 두드리고 설명하고 봉지를 건네고 ..그러느라고 4,5분쯤 더 밖에서 지체한다는 자체가 부담스러워서였다. 당시 내 컨디션으로는 바깥의 찬 공기가 일단 무서웠으니 말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복잡한 이유는 코로나로 인한 불안한 인심에 있었다. 충동적인 나 자신에게, 때가 때이니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신중해야 한다고 되뇌였다.
아무리 이웃 간의 정이라도 내가 나서서 능동적인 접촉을 했는데, 만약 한쪽이 코로나 확진이 나오면 어찌할 것인가. 가령 그게 나라면 내 성격에 내가 한 일 내가 책임진다 하면 오히려 간단하다. 그러나, 만일 할머니가 걸리고 코로나 역학조사를 거친 결과 그게 나 때문에 전염된 것이라고 하면 그렇잖아도 노쇠한 할머니한테 나는 얼마나 미안할 것이며 할머니 또한 나를 얼마나 원망할 것인가... 한 겨울 오후, 내가 사는 집 담장 옆에 차를 세우고 마이크를 틀어 놓은 야채 트럭을 보고 내려가서 귤을 사다가, 문득 할머니 생각도 나서, 귤 한 봉지 더 살까, 하며 10미터가 채 될까 말까 한 골목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아냐, 그럴 때가 아냐.
무릇 코로나 19의 영향력을 도외시할 수 없는 주민으로서 골목 인구의 병리적 안정까지 고려하며 자연스레 솟구치는 인정을 억눌러야 했던 엄숙한 결론이란 것이 고작, 왕래를 안하는 게 현명하다ㅡ라니.
그런데, 12월 마지막 날에 어쩌다 사촌동생을 만나 점심을 사니, 사촌동생이 헤어질 때 귤을 안겨 주었다. 이 한 봉지면 원단 주말에 실컷 먹고도 남겠다. 과일 부자 된 기분으로 종이봉지에 옮겨 시원한 곳에 두고 요즘 몇 알씩 꺼내 먹는다.
사실, 둥글둥글 노란 귤들은, 그 환한 빛깔만으로도 얼어붙은 겨울에 서프라이즈가 아닌가. 화가 반 고흐가 귤을 알았다면 분명 정물화로 그리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다가 읽은 뉴스, 러시아 사람들의 겨울 식탁에 제주산 귤이 올려진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기 전까지 제주도와 러시아는 곧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굳이 연결하려면 고르바초프 옛 소련 서기와 노태우의 회담 장소?
그런데 이제 나는 황금색 귤껍질을 벗기는 이 순간 나와 같은 입맛과 감탄으로 제주산 귤을 손에 들고 먹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이 떠올려지는 거다. 따뜻한 남국 제주도로 이어진 겨울의 새 이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