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자서전"
종교에 매몰된 자와 실험하는 자
이사할 때마다 이런저런 사유로 뭉텅이로 책을 버려야 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속이 무척 쓰라렸는데, 이제는 그것도 회자정리(会者定离)의 도리로 받아들인다.
그런가 하면, 내 건망증 때문에 책은 읽어 뭐하나 혼자 쓴웃음을 지을 때도 많다.
언제부턴지 책 한 권을 재밌게 잘 읽고 나서 책장을 덮으면, 잘 읽었다는 기억만 남고 내용은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 이건 새삼 말할 것도 못 된다. 문제는, 어쩌다 책을 사왔는데, 알고보니 집에 이미 그 책이 있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중복되는 책이 지난 한 해만도 벌써 대여섯 권이다. (* 장서가 많기나 하면 그도 그럴 만하겠으나, 앞에서 밝혔듯 남아있는 책의 양은 얼마 안 된다. 거기다 책을 솎아낼 때마다 제각각 다른 기준이 있어서, 지금 내 책장은 아동청소년용 전집이 상당수이다. 그런데도 있는 책을 또 사 오는 일이 여러 번이니, 내 기억력을 얼마나 믿을 수 없겠는가...)
그런 후회스러운 구매 속에 "간디 자서전"이 들어 있다. 근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할인이라 들고오며 횡재했다 했는데, 내 집 책장에 낡긴 했지만 같은 제목이 꽂혀 있는 거다.
으이그.
그래서 그 낡은 것은 따로 꺼내 놓았다. 누구 책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주려고.(* 누레진 책이지만 그래도 읽고 싶어, 요즘 이런 사람이 있으려나, 확신은 없다.)
오늘은 모처럼 내 건강 회복에 대한 자축 겸 신년의 회식으로, 오후에 이웃 할머니를 모시고 골목 앞 식당에 갔다. 둘이서 갈비탕 한 그릇씩 비우고 들어온 저녁. 배가 부르니 의욕이 솟아서인가.
새삼스레 (지난 가을에 사온)'간디' 책이 읽고 싶어졌다. 첨엔 조금만 읽을 생각이었는데, 점점 흥미가 넘쳐 책장이 마구 넘겨졌다.
세상에, 어쩜 이리도 진지한 사람이 있을까.
그럭저럭 굴러가는 듯한 이 세상에 자꾸만 질문을 던지는 간디.
우리라면, 간디 같은 아이를 위대하게 키우기 힘들다. 그런 아이에게 우리들은, "지나치다"라고 찌푸릴 것이다. 너무 이상주의라서 현실감이 떨어진다든지, 남과 어울리기엔 원칙을 너무 고수한다든지... 그런 식은 고쳐야 한다고 강요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우리들 속에 섞였다면 '고지식하다''벽창호다'라고 하면서, 흉이나 실컷 잡았을 지 모른다.
그런데 그에겐 사람들이 모였다. 인도인들은 간디야말로 진정한 리더라는 걸 바로 알았다. 그리고, 간디는 그 특유의 진지함과 성실함으로 신의 소리(이타적 지향)에 따라, 엄청난 역량을 발휘한다.
일평생, 공익을 위한 행동을 지휘하고 이끌며 그 속에서 수많은 지혜를 얻는다.
특이한 것은, 그가 밝힌 바ㅡ 학생 땐 공부에 관련된 책 외엔 독서량도 많지 않았다고. 그런데 그 이점으로 독서한 것을 잘 기억하게 되었다고. 여기에 그가 언급하지 않은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간디의 독서가 남다른 점은 독서를 통해 얻은 지혜를 바로 자신의 생활에 반영시키는 실험정신이다.
물론, 거기엔 엄청난 의지가 있다.
그리고 올바르다 믿으면 망설임이 없다.
이런 행동적 태도에 그의 마음 속에 지닌 종교적인 것이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종교에 대한 토론과 배움에 대해 많은 부분 할애했는데, 자신이 가진 신앙만 옳다하는 태도란 없다. 무엇이 가장 이타적인가, 그것이 기준이다. 절대 이론적 납득으로 그치지 않는다. 정신적 공익적 활용, 이 실험가이다.
건드리지 못할 완벽한 표본으로 자신이 가진 종교를 장식장 안에 모셔두고, 그것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한 양 아무런 연구가 없는,보통의 나태한 신앙인이 아니다, 간디는.
간디의 일생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틀에 스스로를 가둔 보통의 종교인의 삶과는 너무도 다르다.
좁은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배움의 자세가 간디로 하여금, 만인에게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지 , 그 길을 선택하여 끝없이 전진하게 한 것 아닐까...
종교를 가졌다 하나 이제까지의 나, 간디에 비하면 누에고치 속에 잠든 누에처럼 안이하기만 하였다.
새해, 실험탐구적 태도를 크게 확대할 것.
가능하다면 우주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