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뱀띠 엄마의 독립
만세 뒤에 붉게 짓무른 눈
3월2일.
엄마가 이사했다!
큰언니의 전화.
뭐어?
아니, 글쎄. 내가 와보니까 엄마방이 이제 1층이라는 거야.
(*소형 다가구 주택의 소유주인 우리 오빠네. 그래서 오빠네랑 동거하던 엄마는 그 건물의 4층에 거주해왔다. )
잘됐네!
노인네가 이사했는데 두 딸이 모를 정도라면, 분명 뭔가 자초지종을 설명할 여유도 사전 준비할 경황도 없는 어떤 사정이 생겼을 터이지만, 평소 오빠의 스타일로 보아 그게 결코 화목한 정경 속에 일어난 일은 아닐 것 같았지만, 내 즉각 판단은, 잘 되었다. 이것이 최선이었다ㅡ이었다.
시시콜콜 따져서 무엇하겠는가.
사람 맘이 스스로 내켜야지, 적어도 가족이라면 이래야 하는 거 아냐, 이런 공식도 통하는 데서나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유형의 사람을 보고 겪으며 느낀 바,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들은, 이미 그 사람 자신이 자신의 마음 조절에 실패했거나 아예 방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을 잘 아는 이상, 문제의 사람을 붙잡고 시시비비를 가린다고해서 일이 해결될 것도 아님을 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엄마의 분가 소식에 기뻐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정말 잘됐어요. 고령자는 뭐니뭐니해도 1층이야. 문만 열면 땅을 밟을 수 있고, 해 좋은 날 의자 내놓고 해바라기도 하고 지나가는 이웃과 인사도 나누고...또 좀 있으면 꽃 피는 것도 보고...만세라도 불러야 되겠네!
내가 이렇게 자꾸 떠벌이자, 처음엔 이게 뭔일인가 했던 언니 맘도 조금은 밝아지는 듯했다.
언젠가부터 엄마를 요양원으로나 보낼 사람으로 본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빠 하나, 언니 하나, 나 이렇게 셋이 비용 분담하면 요양원에 보내는 게 가장 손쉬운 일로 여겨진 모양이다.
브런치 잡지의 어느 회에선가, 나는 내 엄마에 대해 조금 썼다. 도대체 이해를 어디까지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를 이어 제사 지내줄 건 아들이라고, 알맹이는 다 아들네게로 밀쳐두고,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여론이라도 단속하듯 나를 자꾸 진창에 빠트려놓던 엄마의 맹목... 아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보면 그것도 하나의 사랑일진대, 여성은 왜 사랑 하나를 이룬다는 강박으로 아니해도 좋을 우치(愚痴)를 범하는지 정말 알 수 없다고...
그러나, 그건 나라는 딸의 제3자의 시점이고.
모성을 완성하려는 엄마 당사자로서는 모두 그럴 만한 필연성이 있었던, 엄청난 인고와 희생이 바탕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수혜자는 오빠와 그의 가정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엄마라는 의무로 내가 너를 이렇게나 지켜줬는데ㅡ
그러나, 아들은 그 엄마를 아무렇게나 치워버릴 짐짝 취급...꼴보기 싫으니 "노인요양원"에로,라고ㅡ 이것이 단지 오빠가 품은 희망사항이라해도, 듣기에 따라 얼마나 폭력적인가.
이미 엉망진창으로 얽혀버린 가정사, 가족들은 그런 것을 토론할 토대조차 잃은 터. 그저 내게 가장 걱정거리는, 엄마가슴 속 아들에 대한 진한 미련, 그 미련이 남아있는 한 누구도 개입할 수가 없다. 그런데 결국 엄마가 마주해야할 현실이 너무나 실망스러울 때, 그 타격으로 노쇠한 몸에 그나마 남아있는 삶의 의지가 풀썩 무너지게 되는 게 아닐까 .. 그점이 가장 걱정이었다.
다행히 큰언니도 올케도 내가 걱정하는 그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 그리고 더 다행인 것은, 어떤 깨우침 한 줄기가 엄마의 뇌수로 흘러들어갔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빠조차도 더이상의 극단을 포기하고 차선의 선택을 결단하게 되었던 듯하다.
불행 중 다행이랄지.
이로서, 인간의 도리를 위해 가족 모두가 제각기의 고민과 노력을 보탤 시간을 번 것이다.
이제껏 마음의 귀로 들리던 엄마의 신음소리도 이제 끝이다. 살아가는 한 또 다른 고뇌가 생기겠지만, 적어도 엄마 자신을 향한 끝도없는 자책과 자해(自害)의 신음은 아닐 것이다.
고개를 들고 앞을 향해 나아가면 될 일이다.
자식이니 뭐니, 다 훌훌 털고 생각하면, 90 인생 처음으로 온전히 엄마만의 지상공간이 생긴 것이다. 세상의 많은 아가씨들이 꿈에 그리는 '원룸' 이란 것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월세 걱정도 없다.
사실, 방안에 세간살이를 놓기엔 너무 좁다.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
아들이 좀 괘씸하게 굴긴 했지만, 그 아들의 집이라서 따로 눈치 볼 것도 없으니 그걸로 퉁치면 그만.
거듭 말하지만, 서울 시내에 살면서 93세의 고령자가 급하게 자신만의 집을 얻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엄마 일을 지켜보며 새삼 '독립'과 '자유'의 값어치를 느낀다. 아무리 비싼 댓가를 치루더라도 반드시 지킬 것.ㅡ소리쳐 응원하고 싶다.)
현실적 변화에 적응하기까지 자잘한 불편이 왜 없으랴만, 원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좋은 일도 매번 꼭 포장이 예쁜 선물로 배달되어 오지는 않는 법이다.
그러니, 꼬이고 꼬여서 앞이 안 보이던 일이 돌연, 죽음이 아닌 삶의 방향으로 바뀌려고 이렇게 이사를 한 것이리라.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언제부턴지, 자신의 몸과 맘을 온통 옥죄고 살았던 엄마였다.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자각했으면...
자신의 생명을 좀더 자연스럽게 펼치는 것에 집중하길...
매일 간단하고 쉬운 일부터 자신감을 쌓아가며... 무엇보다 90 평생 벗지 않고 있던 인습의 굴레 같은 건 벗어 던져버리기를...
3월 4일.
엄마를 보러갔다.
양눈이 붉게 짓무른 게, 이불 속에서 혼자 울고 있었던 모양.
나는 모른 체 떠든다.
엄마, 복 터졌네! 이런 신식 원룸에 다 살아보고...오빠한테 고맙다 해, 오빠가 아주 큰 결심했구먼.
몰래 울었던 처지에, 표정을 고쳐 웃기도 뭐한지 엄마는 냉장고 문부터 연다. 그 안에서 딸기며 케잌들을 주섬주섬 꺼내놓고,
내가 너한테 많이 미안하다.
생전 못하던 이런 말도 하신다.
죽기 전에 너보면 이 말만은 해야지 했다고.
나는 거기에 별로 덧붙일 말이 없다.
그저 나의 바람이라면, 엄마가 지금 처지의 이로운 점만 누렸으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지금 옛일을 떠올릴 때가 아니라고, 살다보면 설움도 겪는 거지 일일이 생각할 필요 없다고, 구중궁궐 공주님도 운세가 나쁘면 노비로 팔려가 살았다고, 마치 아침 점호에 나서는 사감 선생처럼, 감상을 못 본 체 제쳐두고 할일을 재촉하기에 바쁜 맘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한, '서러움과 외로움'은 소소하니 작을 땐 그럭저럭 이불처럼 덮고 살만 하다. 하지만, 커지면 커질수록 눈물을 먹고 무거워진 그것은 소리소문도 없이 한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부식시켜버리기도 하니까.
그러니 거기에 나까지 눈물을 얹을 필요가 없다고ㅡ나름 강하게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태양이 되고 바람이 되어, 사람들의 생기를 앗아가는 비애를 물리쳐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원룸으로 이사한 93세 뱀띠 엄마의 독립은 어디까지나 경사 중의 경사로서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오늘 별도로 선언해두고 싶은 것은, 나의 엄마가 현실에 지지않았다는 사실!
지지않음, 그것이 승리이다.
'너의 억지 소리에 기가 죽을 내가 아니다!
자식의 소리라고 일일이 좌우될 필요가 없지, 내가!'
억지를 부리는 아들 앞에서 이러한 지혜가 반짝 눈 뜰 수 있었던 찰나, 이때 깨어난 의식이 엄마의 생명 깊숙히 존재해 있던 삶의 의지를 자극하여, 이제껏의 암울한 자포자기의 태도를 버리고, 새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누구의 힘도 아닌 엄마 자신의 결정이었다.
이제까지 나는 딸로서 오래도록 걱정했다. 맹목에 중독된 엄마가 중요한 순간에 핸들을 제대로 못 꺾을까봐, 아니 그보다도 다 놓아버리고 순간적으로 붕괴될까봐 항상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역시 본연의 내 엄마는 강했다.
박수라도 실컷 쳐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남보기 초라해도 스스로 그 현실을 받아들이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굿굿이 살기로 작정했다는 건, 지금까지의 엄마로 보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용기가 우선은 기적이다.
열심히 살려는 명랑함만 유지된다면, 엄마의 1층 원룸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희망의 쉼터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아무리 희망을 외쳐도, 엄마 가슴 안은 여전히 허다한 유감들이 오락가락 배회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중인 엄마가 보인다. 그러한 엄마의 노력이 내겐 희망의 꽃망울로 보인다.
객관적으로 말해,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는 믿을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엄마의 기분 하락에 촉각이 예민해지는 현재, 앞으로의 행불행을 결코 예단할 수도 없는 상황인 걸 안다. 그렇지만, 나는 굳이 3월과 함께 엄마가 이제까지의 집착과 허식을 버리고, 발밑의 샘을 파는 생활을 받아들인 자체를 미래적으로 명랑하게 해석하고자 한다.
그것은 나의 상상 속에서, 차마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어떤 직면의 순간 앞에서, 엄마가 끝끝내 운명의 핸들을 놓지 않고 버틴 장면이 텔레파시처럼 감지된 때문이다. (*모르는 이는 이를 두고 명이 질기다고 하겠지만, 고지식한 엄마에겐 한번 더 당신의 현실을 포용하자는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두고봐라, 나는 진짜 행복한 엄마가 될 것이니,ㅡ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순간, 엄마가 차라리 전에 없던 이런 희망사항을 가슴에 새겼기를, 내가 대신 꿈꿔준다.)
어쨌든 모친이 타격 속에서도 삶의 끈을 꼭잡고 놓지 않았다는 사실, 자식으로서 이 일보다 다행인 소식은 다시 없을 것이니, 차라리 하늘에 대고 감사를 할 일이다.
감사합니다.
엄마가 '쓰러지지 않는 정신력'을 갖게 해 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 엄마가 강하게 살 수 있게 지켜주세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