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과 대양

바람 없기를, 아니 있기를

by 새벽종 종Mu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고.

나는 휴대폰 케이스가 무료라는 글자에 걸음을 멈췄다.

바꾸고 싶다.

지금 쓰고 있는 게 자줏빛 케이스인데, 처음부터 이 자줏빛이 별로였다. 빨간색을 싫어하지 않는데, 자줏빛에선 답답한 기분을 느끼는 나.

그래서 바꾸고도 싶었다.

"뭘 도와드릴까요?"

키 큰 직원이 다가와 물어서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 문 앞에 누구도 없었고, 그렇다고 매장 안에서 나온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도 내 앞에 나타나 서있는 젊은 청년.

결론만 얘기하면 나는 미끼를 문 물고기처럼, 직원에게 핸드폰을 건네고, 저런 어쩌다 이렇게 금이 갔어요? 제가 필터라도 갈아드릴게요.ㅡ라는 친절함을 믿고 탁자에 마주 앉게 되고, 조금 더 있다가는 새 휴대폰으로 갈아탈 결정을 내린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을 벌인 것이다.

작년 여름에 바꾼 휴대폰이니 겨우 반년 쓴 거다.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그렇게 쉽게 새 걸로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땅에 한번 떨어뜨린 일로 액정이 여기저기 금이 가긴 했다. 그렇긴 해도 쓰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나를 대하는 영업직원의 솔직한 말을, ㅡ자연스럽게 부족한 자신을 내보이면서도 결국 자신이 할 일을 다 해내는 그런 진행을 목격하는 게 신선했다. 비록 청년이 나의 결정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고자, 나름 미리 습득한 방식을 차근차근 나한테 써먹었다고 해도, 청년의 어느 일면이 진솔해 보이는 순간만큼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간세계다움'이었달까.


그림을 그렸어요.

예술대학에 진학했어요.

교통사고를 겪고 어디랄 것 없이 아프고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대학도 중퇴하고 이일 저일 해봤어요.


사실 이런 얘기 나한테 상관없다.

어쩌면 자리에 앉은 내가, 메모 철에 볼펜 하나가 그려져 있는 걸 보고, 펜을 들고 그걸 따라 그리니까, 청년 자신이 과거에 그림을 그렸던, 그런 꿈을 가졌던 기억이 떠올랐던 건지도? 아니면, 그냥 그렇게 자기 얘기를 누구에게나 가리지 않고 조금씩 털어놓으며 사는 버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의 개인적 얘기를 듣게 되면서 내 귀는 이미 그 사람의 절친 모드로 돌입하고 있었다.


그럼 그림을 잘 그리겠네요?

중퇴했어도 재능을 썩히진 마세요.

휴대폰 기능으로라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면 어때요?


청년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모르는 아줌마가 그렇게까지 진지해질 줄 몰랐던지, 그만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자신은 잠이 몹시 부족하다고ㅡ 그러고 보니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


그대로 믿어주고 걱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실제적인 감지도 한다. 말은 자고 싶다고 하지만 퇴근하자마자 바로 집에 갈 것 같지 않은 젊은이다... 얼핏 눈에 들오는 젊은이의 흰 운동화가 꾀죄죄하니, 오래도록 아무렇게나 신고 다녔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나는 그 운동화를 통해 판단한다.

저 운동화가 어쩌면 청년이 말하지 않은 가장 진실한 속엣말일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검은색 옷, 검은색 구두로 일치를 보고 있는 다른 영업직원들과 옷차림이 너무나 다른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는 영업을 하고있고, 나는 그를 만나 필요한 기계를 바꾸는 것이고, 그것뿐이다. 청년의 입을 통해 내가 들은 것,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면 더 이상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일 것인데... 그런데도 나는 틈틈이 낙서하며 귀에 담기는 말소리에 일일이 관심을 가졌고, 그것으로 이미 내 앞의 상대에 대한 충분한 예의와 진심을 표현했으니, 예정에 없이 휴대폰 영업장에서 하릴없는 오후를 보낸 것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내심 엉뚱한 빼기 더하기를 하는 나.


그리고 하루를 건너뛰어 오늘 밤 아들과 통화했다.

10분쯤 얘기하고 끊으려다가, 그 사이 뭐 새로운 일 없었냐고 물었더니,

"우리야 매일 실험실이지요, 뭐..."

집에서 실험실, 실험실에서 집, 늘 이런 경로로 단조롭게 반복하는데 새로울 일이 뭐 있겠냐는 뜻이리라.

아들, 그게 행복한 거야.

24시간 연구하는 리듬을 유지시키는 그런 생활. 거기서 굉장한 결과가 나오는 거야.

그런가?ㅡ아들의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


통화를 끊고 뒤돌아본다.


아아. 아들하고는 다른 식일 터이지만, 나도 단조롭고 안정된 생활을 체험하였지.

교사가 되어 교무실에 앉아 있을 때ㅡ 아주 평화롭고 그윽한 어항 속에 들어앉았다고, 그래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르자, 이대로 만족하기엔 인생이 진보도 없이 어정쩡하게 정체하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신기한 것은 만족과 불안이 한 세트로 따라다녀서 쉽사리 새 결단을 내리기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어항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야한다는 처지 인식도 있었고 감사할 일이 많았음에도, 이 세상이 어항만으로 다가 아닐 거라는 직감은 직감대로 자라나고.ㅡ 결국 그 직감이 나로 하여금 내 기질에 보다 어울리는 길을 찾아 나서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서 그 사이 뾰족한 수가 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 확신 강하게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는 말도 아니다.

그리고 아직도 대양으로까지 헤엄쳐 나왔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신히나마 어항 바깥으로 나오게 된 것을, 스스로에겐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보장된 안정.

그런 것이 갖는 무한한 매력을 누가 모르겠는가.


특히 어려서부터 용돈이란 걸 넉넉히 누려본 적 없이 성장한, 그렇다고 어떤 일이든 소매 걷어 부치고 수입원으로 바꿔낼 줄도 모르는 나 같은 고지식한 사람에게, '안정' '보장'이란 말처럼 유혹적인 것도 없다. 솔직한 진심은, 그저 거기에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떨어지고 싶지 않다. 이렇게 모험이 두려운 나이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반대로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분명 있다.


살면서 점점 이 도리를 수긍하게 된 것이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