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게다가 아프기까지 한

by 새벽종 종Mu

어린 아들에게 가족이란, 엄마, 아빠, 누나, 그리고 심장이 약한 자신, 이렇게 네 식구이다.

뜀박질은 절대 못하는 몸, 그런 신체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적응엔 본능적인 저항감이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 할머니를 밀어낸다.

할머니에게서 한국 냄새가 나.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야.

싫어. 싫어.


아이의 언어에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외국에서 자란 아이의 막연한 관념이다. 저 스스로가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걸 모를 리 없지만, 할머니 냄새라고 하지 않고 마치 한국인 특유의 어떤 냄새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그건 그렇고, 보통 미국 사회에서 규정하는 할머니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할머니 요리 잘하냐고. 쿠키도 구울 줄 아냐고 툭 던지는 것이, 아이는 속으로 집안일에 야무지면서 손주들을 곧잘 챙기는 그런 할머니상을 갖고 있는 모양.

손녀는 글쎄, 어른에게 많은 걸 바라서는 안 된다는 걸 일찍 깨우친, 제 할 일도 잘할 뿐더러 동생에 대한 책임까지도 짊어지려 하는 그런 아이. 그러니 할머니를 딱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엄마. 여기 와서 나하고 같이 살아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 좀 돌봐 주세요.

고령의 나이에 딸의 요청을 듣기로 한 어머니.


딸이 사는 미국으로 건너올 땐 막연하지만 결연한 이별이 있었으리라.

정든 이곳, 어쩜 살아서는 다시 못 돌아오겠지.ㅡ 하면서 얼마 되지 않는 것일지 몰라도 딸에게 주고 싶어 모조리 청산했을 것이다.

이거, 너 써라.

오랜만에 만나는 딸에게 무심한듯 건네는 돈이 든 봉투.


사위가 운전하는 차는, 공항을 떠나 도시를 지나 마을들도 지나, 점점 멀리 들판으로 달린다, 차는,

들판 저편 한 구석에 뎅그러니 놓여있는 임시주택 ㅡ바퀴 달린 집이라고 부른다. ㅡ앞에서 선다. 거기쯤에서 할머니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소상히 알게 되었으리라.


아이고, 내 금쪽같은 자식이 타지에서 뿌리도 못 내리고 얼마나 고생이 심할꼬.


서로 좋아 죽었다는, ㅡ할머니의 말을 빌면,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이런 노래를 둘이 마주 보고 부를 땐 두 사람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는 딸과 사위.

이것이 한국에 살다가 이제야 날아온 할머니의 회고이고 보면, 딸 부부는 한국에서 연애하고 한국에서 결혼했던 게 분명하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엄마를 남겨두고 이민까지 감행한 데는 부부의 삶에 절실한 무엇을, 미국이라면, 미국에서라면 충족시킬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실제 삶은 '구원의 약속'을 어디서 다시 찾아야 할지... 부부의 의견이 갈린 채이다.


병아리 감별사로 평생 살기 싫다며 농장 만들 계획에 맘이 바쁜 남편.

병아리 감별사라도 좋으니, 어린 아들 치료하며 둘이서 남매를 잘 키워가는 게 가장 우선이라는 아내.


최우선 순위가 농장인가 아이인가,

남편은 병아리 감별사로 자신의 일생을 채울 수 없어 양보 못하고, 아내는 내 새끼 외딴곳에서 친구도 없이 지내고 여차하면 병원도 멀고, 게다가 농장에 돈은 한없이 들어가고... 가정을 꾸리는 주부이자 엄마로서의 절망감에 어쩔 줄 모른다.


딸의 어머니, ㅡ한국에 아무것도 남겨둔 것 없이, 그저 손주들을 보살피는 명목이라도 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하고 달려온 할머니.

그녀에게 딸이 사는 미국은 어떤 곳이어야 했을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 자손들이 무탈하게 잘 살아줬으면.

생애 마지막 떠맡은 손자돌보기. 그러나 어린 손자 녀석은 내놓고 싫어한다.

이리 되고 보면, 사실 임시주택 안에서 가장 절박하고 고단한 존재는 바로 할머니일 것이다.

그럼 뭐 어때. 내가 너희들 곁에 와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아.


소년의 할머니가 여느 할머니와 정말 다른 점은, 전쟁도 겪고 남편도 잃고 고단한 일생을 겪었음이 분명한 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에도 걱정을 내비치긴커녕 단 한번이라도 한탄 한 마디 한숨 한 줄기를 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정말 강한 소년이야.


심장이 발작을 일으켜 자기도 모르게 죽을까 봐 무서워하는 손자에게 주문이나처럼 진심 힘을 주는 할머니의 말.


그 손자를 데리고 숲속 물가를 찾아 씨앗을 뿌린다.

옆에 따라온 손자 귀에 들리라고,

이 미나리 씨앗은 말이야, 할미가 한국에서부터 가져왔단다... 어디서든 뿌리를 잘 내리고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란다. 누가 먹어도 맛이 있는 미나리란다.


미나리를 찬탄하는 할머니의 말소리는, 지구라는 별에서 한번 살아보기 위하여, 머나먼 별들로부터 날아온 생명의 씨앗들에게, 떠나온 별나라에 대한 향수를 이기며 지상에서 삶의 투쟁에 안간힘 쓰는 일체 생명들에게 보내주는 기도이며 축원이었다.


원더풀,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소년의 심장도 그 노래를 들었으리라.

나도 강해져야지.


어머니의 노래, 요즘 나도 스승의 시에 마음을 기탁하곤 한다.

*

어머니의 기원에는

한계가 없다.

막힘도 없다.

겁쟁이의 마음도, 나약함도,

미혹도 없다.


한결 같은 기원의 근저에는

절망과 포기를

쫓아 버리는

용기가 불타고 있다.

*


농작물(식물)을 기른다는 것.

그것은 대지와 대자연의 은혜를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식물은 대지의 아이이므로, 식물의 생명력은 뿌리를 통해 대지에서 끌어 올려진 것이다.

대자연의 이치를 한없이 믿는 할머니의 생명력은 스스로 대지가 되어 스스로 뿌리가 되어 생기를 불러 일으키는 힘이 있다.


출구가 거의 없는 막다른 곳에 몰린 한 가정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갈기갈기 찢겨져 바람에 날려버릴 깃발처럼, 미주대륙의 들판 한 구석에서 펄럭대고 있었다. 태어닌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그대로 피폐해져버려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뜨내기가정,

그들을 보듬겠다고 날아온 외할머니.

민들레의 노랑 꽃포기.


티비나 보다가 아이 다치는 줄도 모르고

체통도 없이 손주에게 놀림받으며

마침내 기력이 쇠한 몸으로 화재를 일으키고 만 노인이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를 맞이함으로 하여,

불안과 갈망으로 방황하던 부부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소생의 회전축을 찾아냈다. 비록 모든 것이 어렴풋하지만..


할머니, 우리집은 저기예요.

아이들은 할머니 손을 잡는다.


다들 이 영화는, 미국 이주민의 암담한 생활 그대로를 그려낸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가 지구라는 별을 찾아 떠나온 이주민이 아닐까.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별에서 별로의 이주가 아닐까.ㅡ 그렇게 여기면, 자신의 존재로 모두의 뿌리를 대신한 할머니의 존재는 우주로부터의 선물이다.


#.

어버이날 효도를 조카에게서도 받다니!

영화 <미나리>는 조카의 선물.


그러나, 모처럼 영화관람이 잡힌 어제는, 아침부터 머릿속이 산란했다. 평소와 많이 다르게.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살피는 A 씨가 결국 내게로 밀쳐놓은 '(몇 달에 걸쳐) 먹던 찌꺼기'는 찌꺼기대로 역겨웠고,

연일 속보가 이어지는 어떤 사건 속의 억울한 죽음에 갈피가 안 잡힌 채 드는 상념은 상념대로 쓸쓸했다.

또 오후엔 현실 속의 타격. ㅡ 현금인출을 하다가 보니, 여러 종의 카드를 써보지 않은 나로서 전혀 파악이 되지 않은 출금 내역이 돌출하여서는 그렇잖아도 새가슴을 잔뜩 놀래켰다.


그러나 하루의 번잡함은 문득 나로 하여금, 이왕 지구에 날아온 이상 지상의 삶을 한껏 사랑해 보자는 '일종의 깨우침'을 가져왔다.


신기하게도!


이 세상엔 물가를 찾아 미나리 씨앗을 뿌리며, 미나리, 원더풀! 미나리, 원더풀! 이라고 감탄하는 할머니가 있어.


푸르른 넓은 들판 위에서,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말 그대로 그랜드마더( 더 크신 어머니).


도심의 거리에서 번민 속에 지쳤던 나는 어느 결에 생기를 되찾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ㅡ다른 사람의 불의에 대한 상심으로 너 자신를 해칠 필요는 없어.

혹시 타인의 어떤 아픔에 동고한다면 이렇게 바꿔 생각해 봐. 지금 불행한 그 사람이 불행을 성장의 인(因)으로 전환하여 훨씬 멋진 인생을 구가할 지도 모르잖아.... 그는 반드시 행복해질거야.


그래, 잊지 마.

우리들은 본래 강한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