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 있는 바깥벽으로 나팔꽃 여남은 포기가 심겨 있습니다.
매일처럼 한 뼘쯤씩 자라나더니, 제일 빠른 덩굴 키는 이제 창틀 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창안에 그녀가 아주 잘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오후 내내 창가에 앉은 채, 전화기를 붙잡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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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던 거 같아요.
그녀, 창가쯤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그리고는 연신 휴대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오는 전화를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어쩐지 많이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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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반가운 목소리, 그러나 어이!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제자가 묻습니다.
우리가 뭘 하면 되나요?
그 물음이 첫마디일 줄이야!
그녀는 뜻밖이란 느낌에 당황하여서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전화를 툭 끊습니다.
실은 원래 전화를 하기 전에 몇 가지 당부를 하였던 터인데, 무슨 일인지 그 당부가 묵살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두서가 없어졌습니다.
당부했던 앞 순서는 이랬습니다.
먼저 창문을 여세요.
바닥에 먼지를 털어 내세요.
수돗물이 나오는지 확인하세요.
여학생 둘이가 몇 시간씩 있으면서 짐 정리를 도와주려면, 집안이 통풍이라도 되고, 대강이나마 먼지를 거두고, 손이라도 씻을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할 것 같아 생각해서 한 말인데...
아마도, 열쇠를 갖고 와 문을 열어준 레이 선생이, 그럴 필요 없다고, 빨리 일이나 하라고 무 잘라내듯 싹둑 끊어낸 듯합니다.
어째 조금도 학생을 배려하지 않는지... 더구나 두 아이는 스승과 제자의 정으로 자원해서 온 학생들 아닌가...
그녀는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레이 선생은 오히려 내가 쓸데없는 데에 신경을 쓴다고 오해한 모양입니다. 화면 안에서 화가 난 표정으로 책장 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뭐부터 챙기면 좋을지 빨리 지시하세요.
그런 독촉하는 어조에 그녀는 그만 벙어리처럼 입이 탁 막힙니다. 그래서 지시하기는커녕 자기도 모르게 전화를 끊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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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다듬어야 해. 일의 순서야 어쨌든 세 사람이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전화는 다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녀, 힘주어 말소리를 냅니다.
자아, 그럼 이렇게 하는 거다. 책은 세 가지로 나눌 거야. 각각 분류해서 놓기다. 나한테 보낼 것, 우선 맡길 것, 그리고 내놓을 것 ㅡ 이렇게 따로따로.
화면 저편에서 책 표지가 자꾸 바뀌어갑니다.
그건, 보낼 것.
으응, 그건 내놓을 것.
맡길 것.
보낼 것...
그녀는 눈이 아프도록 뚫어지게 화면을 보며 어떤 건 빨리, 어떤 건 한 숨 간격을 두고 결정을 내립니다.
내놓겠다 하면 그것으로 이별이기에, 세 번째 결정엔 자꾸 망설여집니다. 그래서 맡길 것 쪽으로 보류하는 책이 자꾸만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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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 너무 많아.
레이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많아, 넘치게 많아.
학생들도 보류할 책이 자꾸 쌓여감에 부담이 커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한 명이 이렇게 책 권 수가 많을 줄은 모르고 네, 얼마든지요, 하며 맡아주겠다고 약속부터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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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왜 이리 무거운 것일까요?
그녀는 왜 쉽게 내버리지 못할까요?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어딘지 미련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헤어지지?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입니다.
해가 무척이나 긴 6월의 어느 주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