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벌이와 이상 그 어딘가
한국의 40대라면, 최소 한 번 정도는 EBS에서 방영한 "그림을 그립시다(원제: The joy of painting, 본 방영: 미국 PBS)"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밥 로스(Bob Ross)가 진행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에서, 가끔씩 자신이 걸어온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의 대중적 성공을 가져온 멘트인 "참 쉽죠(That easy)"만 기억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정확히 어떤 회차인지는 모르겠지만, 밥 로스는 다음의 말을 한 적이 있다.(https://youtu.be/z7r0DIjRGd4)
I spent half my life in the military and there I had to live in somebody else’s world all the time.
"나는 내 인생의 절반을 군대에서 보냈는데, 그 곳에서는 항상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했다."
And I’d come home after all day of playing soldier and I painted picture.
"나는 하루 종일 군인놀이를 하다가 집에 오게 되면 그림을 그렸는데"
And painting offered me freedom.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나에게 자유를 줬다."
And I’d come home after all day of playing soldier and I painted picture.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내가 원하는 세상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It was clean, it was sparkling, shiny, beautiful, no pollution. Nobody upset. Everybody was happy in this world.
"(그림 속 세상은) 깨끗하고, 빛났으며, 오염도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화난 사람도 없었고, 모두가 행복했다."
That maybe how I made it through 20 years of military.
"내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군대에서 20년을 지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군인시절 밥 로스에게 과연 본업은 무엇이었을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주며,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군인"이었을까? 아니면, 캔버스 앞에서 자신의 자유 의지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였을까?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밥 로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없기에, 정확한 답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분의 행적을 보면, 어느 정도 답변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참 쉽죠"와 더불어, 그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가 "아프로헤어"인데, 그는 원래 곱슬머리가 아니다. "그림을 그립시다"출연전에는 빈한하게 활동하던 화가였기에, 생활비를 아끼고자 잘 풀리지 않는 아프로헤어로 방송 출연을 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립시다" 성공 후, 자신은 원래의 헤어스타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그러지 못함을 하소연한 적도 있다. 아마 그는 군복무 중에도, "군인"을 본업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생업으로만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재능과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주변 환경과 개인의 운 등에 의해서 그 재능의 일부만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생각외로 많다. 현실적인(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하기 싫지만 일을 하는 사람도 사실 많지 않은가?
예전부터 계속 가진 생각 중 하나지만, "본업과 생업을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많은 수의 작가들은 문학활동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하기 어려워, 생계를 위한 별도의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직에 종사함에도 그 전문직을 생계의 일환으로서 생각하는 분들도 간혹 보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친한 몇몇의 지인들에게 "공공기관 전문위원"은 내 생업이지 본업은 아니라고 말하며, 내 본업은 "지식확산자 & 연구자"라고 말한다. 그 외에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생각을 절대 밝히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아직도 생업과 본업을 별도로 보는 이러한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경직성이 큰 나라이기 때문에, 이러한 모난 생각을 밝혀봐야 결국 나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서 이런 의견을 가지면,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너무 잘난체 한다고 평가받기 쉽지만, 이건 몇몇 재능이 뛰어난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사람은 두가지 이상의 재능을 가진 경우가 많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준다면, 보다 다양성 높은 풍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