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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Oct 23. 2020

할머니를 찾아간 어느 날

#기억한다는 말의 무게

아직 햇빛이 어둠을 밀어내지 못한 주말 아침이었다. 모처럼 쉬고 싶은 날이었지만, 보름 전부터 아버지와 약속한 일정이 있었다. 부지런히 씻고, 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귀찮은 내색을 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달랬다. 우리는 단출한 음식과 함께 가져가야 할 물품을 챙겼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올랐다.


주말 아침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세 시간 반가량을 달렸다. 중간에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기 위해 커피도 마셔야 했다. 어느새 날이 밝았고, 휴게소에는 나들이객으로 붐볐다. 곧 아버지와 나는 영동고속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문득 군 복무를 하던 과거가 떠올랐다. 하루가 시작되기에는 이른 아침이었다. 급하게 행정병이 나를 깨웠고, 조모상을 알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날일 줄은 몰랐다.



아흔이 훌쩍 넘은 할머니는 그렇게 홀연히 떠났다. 나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의 사정으로 어릴 적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추억이 많고, 자연스레 속도 많이 썩혔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할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손자가 되겠다는 흔한 다짐도 많이 했다. 물론 끝내 지키지는 못했다.

      

조모상을 진행하는 사흘간 슬픔이라는 감정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계속하여 조문객을 맞이해야 했고, 그들을 위해 준비 음식을 날랐고, 떠난 자리를 치웠다. 이 같은 노동이 반복됐다. 슬퍼할 틈이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또한, 누군가 나의 곁을 떠난 게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 집은 성묘를 명절 연휴에 겹치지 않게 잡는다. 명절 당일에는 집에서 차례를 지낸다. 올해는 일정이 맞지 않아, 뒤늦게 성묘 일정을 확정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아간 그날은 가로수도 옷을 바꿔 입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중앙고속도로를 지났고, 경상북도 영주에 도착을 했다. 조금 더 여느 시골길과 다름없는 도로를 달렸고, 곧 할머니와 마주했다.

 


풀은 무성했고, 나무는 생명력을 과시하듯 가지를 뻗어내고 있었다. 내가 이곳을 뒤늦게 방문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제초기와 낫, 톱을 가지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아마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왔다는 죄송스러움일 것이다. 묘 살핌을 끝마친 우리는 준비해 간 음식으로 차례를 지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지내고 있는 몇몇의 친척을 방문하여 안부를 물었고, 우리는 붐비는 도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이내 차에 올랐다.

      

서른이 넘었지만 나와 관계를 맺은 생명을 떠나보내는 일은 아직도 익숙지 않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말은 삶을 관통하는 생명이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이와 함께 떠나간 생명은 비록 육체는 소멸했지만, 자신을 기억하는 생명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는 방편이라 믿는다. 일본 작가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자신의 가족이자, 딸이었던 반려견 멜로디를 잊지 않기 위해 그녀와의 추억을 <멜로디-사랑의 연대기>라는 에세이로 기록했다. 멜로디는 <멜로디-사랑의 연대기>에서, 아키라의 기억에서 여전히 자신이 좋아했던 거리를 산책하고 있을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말은 무겁디무겁다.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시간성에서 관계 맺은 모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시간이 흘러서 나 역시도 누군가의 시간성에서 영원함을 만끽하고, 숨 쉴 수 있는 존재가 되길 희망한다. 관계 맺고, 대화하며, 공유하고, 기억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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