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owme Nov 01. 2020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

오래된 친구 한 명이 고민을 털어놨다. 간절하게 원하던 일을 시작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권태에 빠진 듯했다.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해야지 삶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까, 라는 근심이었다. 처음에는 친구의 걱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누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허우적거리는 늪이겠거니 했다. 나의 경우는 취미가 일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더욱 격렬하게 다른 흥미를 찾으려 애를 썼다. 연애를 하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찾아다녔다.

     

친구와 헤어질 때쯤,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어떠한 책도 상관없다고 했다. 도서의 관한 취향을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면 베스트셀러부터 시작하라고 말했다. 책을 선택하는 과정의 괜한 편견도 주고 싶지 않았다. 독서를 하면서 자신만의 편견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은 가장 값싸고, 손쉽게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야”라는 어쭙잖은 조언도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책을 읽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생기면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독서가 본격적인 취미가 되기 전에는 ‘편식’을 했다. 책을 읽는 이유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를 얻기 위함이 컸기 때문이다. 인문·사회 도서를 끊임없이 읽었다. 독자를 위로하는 자기 계발서나 감성을 건드리는 문학, 에세이는 기피했다. 시간 낭비라고 확신했다. 또한, 경제 서적은 관심사도 아니었고, 진입장벽도 높다고 생각해 자연스레 눈길을 피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그러던 중 '편식'을 깬 일이 나에게 찾아왔다.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국내 작가의 소설이 해외의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한 동안 온·오프라인 베스트셀러 상단을 차지했다. 외면하기 쉽지 않았다. 반신반의했지만 서점을 찾아 구매하여 읽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재미있었고, 부끄러웠다.’ 나름 글을 쓰는 걸 직업으로 삼았는데 생경한 단어가 한가득했다. 사전을 찾아가며 책을 읽는 게 오랜만이었다. 기분 좋은 귀찮음이었다. 이때부터였다. 독서에 '편식' 없이 임했고, 어떠한 책이든 일단 읽어보고 평가했다.

     

특히 문학을 탐독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함에 있어 표현이 풍부해졌음을 실감한다. 상황을 설명할 때, 조금 더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문학은 여느 인문·사회 도서만큼이나 현실을 녹여낸다. 모든 문학이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날카롭게 현실을 인식하는 작품도 많다. 서점에서 재미있다는 소설을 을 때 고민하지 않는다. 지금은 '편식' 없이 읽을 책을 선택한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앞서 말했지만 책만큼 편하게 남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공간도 없다. 우리는 전문가의 지식을 얻기 위해 강연을 찾고,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려고 모임을 등록한다. 이는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모두가 쉽게 할 수 있는 방편은 아니다. 이 때문에 나는 주저 없이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처음에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도서를 선택하라고 말해준다.

 

한편, 나는 웬만하면 책을 서점에서 구매하여 읽는다.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구매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도 많았지만, 책에 대한 애정이 생겨 포기하지 않고 읽게 된다. 서점은 종이와 잉크의 냄새가 어우러져 묘하게 후각을 자극하는 장소다. 내게는 마냥 뛰놀게 되는 놀이터다. 또한, 서점은 작가의 고뇌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독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를 찾아간 어느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