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취재기자 때의 경험이다. 근무를 시작하기 전, 아침마다 데스크에 작성할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여 보냈다. 변명 같지만 업무가 너무 고단하여, 고민하지 않고 그날도 밋밋한 키워드를 전송해버렸다. 메시지를 본 팀장은 오늘만큼은 넘길 수 없었는지, 답장을 바로 해왔다. “힘들면 내근을 하는 게 어때?” 아차 싶었다. 며칠간 추가적인 취재가 필요치 않은 미사 어구만이 난무한 나의 기사를 당연하게 눈치챈 것이었다.
나는 그날 오랜만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묻고 듣는 일에 열중했다. 사실 기사 작성에서 글쓰기 능력보다 독자가 궁금할 만한 사항을 취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작문 역량이 뛰어난 기자보다 취재를 잘하는 선배들을 보며 언제나 동경했다. 시의성이 높은 이야기를 어떻게 파악하고 기사화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한정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단순하게 기사를 작성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핵심을 챙기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기자가 참여하는 공식적인 회견과 백브리핑이 끝나면, 나는 들은 내용을 송고하려고 곧바로 기자실에 향했다. 속보 싸움이 중요하다는 핑계로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사로 게재하던 선배들은 계속해서 사람을 만났고,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글감을 확보했다. 내가 쓴 기사와 그들이 독자에게 보낸 글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나는 종종 술자리에서 지인에게 기자를 영업직으로 표현했다. 글로 평가받는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행 작가가 여행을 떠나지 않고 글을 쓸 수 없듯이, 연애를 해보지 않은 작가가 누구나 공감하는 로맨스 소설을 집필하지 못하듯 말이다.
과거 취재했던 기자회견 현장
파스타를 예로 들면 핵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는 일상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마치 숨 쉬듯이 파스타와 마주한다. 파스타는 그들에게 습관일 것이고, 단순히 음식이라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다. 이탈리아 그 자체를 상징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파스타를 주문하지만, 그곳의 파스타가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통 이탈리아 파스타는 소스가 아닌 면이 핵심이라고 한다. 잘 익은 면을 소스에 묻혀 먹는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파스타에서 소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파스타가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물론 이탈리아에서 곧바로 넘어오지는 않았겠지만, 본연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국내의 파스타는 면이 아닌 소스를 먹는다고 할 정도로 자박자박하다. 소위 뚝배기 파스타라고 불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식 비평 프로그램에 출연한 요리 전문가의 말이 문뜩 떠오른다. 그는 파스타가 가장 맛있을 때를 그 면을 삶는 도중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줄기 빼서 입으로 쑥 넣는 그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파스타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우리나라의 파스타가 아닌, 이탈리아 정통 파스타 같은 것 말이다.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는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라고 말했다. 독자를 위한 글을 쓸 때 핵심인 명사가 확실하다면, 이를 꾸미는 형용사가 없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지금까지 나는 독자가 아닌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자신만을 위안하는 글을 셀 수 없이 써왔는지도 모른다. 목적을 잃고, 수단이 되어버린 글을 써온 나날을 반성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도 써보고 싶은 글이 정말 많다. 글을 쓴다는 단순한 행위에 그치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주말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