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싫어하지는 않지만, 익숙한 장소를 떠나 경험하게 되는 심적인 부담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가 컸다. 휴가에 맞춰 여행을 가야 할 때면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였다. 일정을 짜는 게 귀찮기도 했고, 낯선 장소에서 맞닥뜨리는 돌발 상황을 이겨내는 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취재기자 생활을 하며 국내외의 이곳저곳을 홀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맡은 업무가 있었기에 괜찮았다. 일을 마치고, 회식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자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나섰다. 낯선 장소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느낄 새도 없었다. 그러다 기자 생활이 고되 첫 직장에서 박차고 나왔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여 뭐든지 하고 싶었다. 그렇게 오직 나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됐다.
나에게 익숙한 장소인 인천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 떠나게 된 나의 첫 여행지는 부산이었다. 취재를 위해 여러 차례 부산을 방문했지만, 사직야구장 근처를 벗어난 기억이 없었다. 무작정 서울역으로 가서 KTX를 탔다. 아무런 준비 없이 부산역에 내렸고, 곧장 감천문화마을로 향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택시를 탈까도 고민했지만, 시간도 많았고 부산의 일상이 보고 싶어 버스를 탔다. 시간과 공간이 평안하게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나만 한가하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나름 괜찮았다. 굽은 길을 휘청거리며 오르는 버스에서 내려 색색의 지붕이 매력적인 마을의 풍경이 비쳤다. 잡념이 흩어졌고 오랜만에 나를 위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차디 찬 현실이 귀띔도 없이 다시금 찾아오겠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용기도 들었다. 그렇게 마냥 걸었고, 정처 없이 떠돌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들어섰다. 인적이 뜸했지만 낡은 책 냄새가 반겨줬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별난 걸 하지 않았다. 낯선 곳의 일상에 묻히고 싶었다. 커피 한 잔 사들고 흰여울길의 저마다 특색을 뽐내는 골목길을 눈에 담았고, 서면에 찾아 마냥 걸었다. 1박 2일의 여행은 예상치 못하게 2박 3일이 됐다. 광안리의 밤바다를 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인천에서 줄곧 바다를 봐왔지만, 그날 바다의 윤슬은 조금 더 은은했다.
사실 여행은 핑계였다. 오랜만에 나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부산의 일상과 풍경은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담아내는 액자가 됐다. 허완 작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토록 내가 시간을 원했던 이유는 무엇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나 홀로 여행을 떠난 뒤, 두 번째 도전을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혼자 떠났던 여행의 기억은 현실을 견디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가끔씩 도린곁에 있는 카페를 찾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온전하게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위해서이다. 이때만큼은 뭔가를 하겠다고 애쓰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