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방영했던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본 인상 깊은 한 장면이 생각이 난다.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서울대까지 졸업한 이장우(이재욱 분)가 고향으로 내려와 공무원을 하며 반복된 일상을 보내는 모습에, 지은실(양혜지 분)은 답답함을 느끼며 핀잔을 한다.
이에 대해 이장우는 오랜 짝사랑 대상인 지은실에게 이런 답을 한다. “너한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어, 그런데 나는 그런 일상을 행복이라고 느껴. 누군가는 서울대를 나와 우주에 가는 게 꿈일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서울대에 나와서 평범하게 일상을 쌓고, 차곡차곡 매일을 사는 게 꿈이거든. 성실하고 평범하게 사는 게 행복해. 나는 그것을 아는 편이야.”
<JTBC 봐야지> 유튜브 갈무리
내가 어떻게 해야지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확실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면 마냥 부럽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한 명은 최근 재테크에 열중하는 이유를 모임 자리에서 꺼낸 적이 있다. 그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삶이 행복한지 확신은 없지만, 추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직장이나, 경제력이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말했다. 서른이 훌쩍 넘어 로스쿨에 진학하거나, 귀농에 도전하고 싶을 때, 다니고 있는 직장을 미련 없이 떠나기 위한 그만의 사전 작업이었다.
하루의 대다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2030'세대에게 꿈같은 시나리오는 맡은 직무를 통하여 자아실현을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아, 퇴근 후와 주말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주체가 이들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취미가 일이 돼 고생한 적이 있다. 유일했던 여가와 일의 경계(境界)가 흐릿해졌고, 어느새 범람했다. 결국 삶의 행복을 채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직장을 퇴사하고 나서야 다시금 행복을 찾게 됐다.
기자 생활을 그만둔 뒤, 나에게 찾아온 행복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글을 쓰는 작업이 취미가 돼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쓰고 싶으면 쓰고, 쓰기 싫으면 읽으면 됐다. 둘째는 글을 읽을 때, 경계(警戒) 하지 않아도 됐다.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며 훑는 게 스트레스였고, 다른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탐독하며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찾을 시간이 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내용의 글을 읽으면 감탄하며 되뇔 여유가 있다.
사실 행복을 찾는 일은 단숨에 이뤄지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누군가에는 행운처럼 쉽게 이뤄지지만, 많은 사람은 하루하루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나의 삶이 행복할지 모른다고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행복과 삶의 가치를 찾는 일에 몰두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맞이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말이다.
한국사 강사인 최태성 작가는 자신의 저서 <역사의 쓸모>에서 이회영 선생의 일화를 전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화두를 던졌다. 우리에게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회영 선생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벌 가문이지만, 신분을 버리고, 재산을 바치고, 인생을 독립운동에 쏟았다. 서른의 이회영 선생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한 번의 젊음을 어찌할 것인가.” 그는 죽는 순간까지 독립운동에 매달렸고, 예순여섯에 나이에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버티지 못하며 순국했다. 이회영 선생은 과거 서른에 자신에게 했던 질문을 말이 아닌 일생으로 답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회영 선생은 하루하루를 켜켜이 쌓아가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