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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Feb 14. 2021

어떻게 게임은 스포츠가 됐는가?

#하는 게임이 아닌, 보는 게임의 시대

기성세대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과거 사례가 한 가지 있다. 글로벌 게임사인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시기였다. 지난 2003년 프로게이머 임요환(SlayerS_BoxeR) 공중파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굴욕을 당했다. 스타크래프트 대회 결승전이 부산 광안리에서 개최돼 10만 명의 젊은 층이 운집하기까지 했음에도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편견은 짙었다.


진행자 : 임요환 선수도 사이버머니가 1억 넘게 있으신가요?
임요환 : 저는 연봉이 1억이 넘습니다.
진행자 : PK(Player Killer, 게임 상에서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를 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상대를 죽이고 싶으신가요?
임요환 : PK요? 페널티킥이요?
진행자 : 게임을 많이 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시나요?
임요환 : 성적이 잘 나오죠.


지금 생각하면 혀를 차게 만드는 일화이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고, 글로벌 게임사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LOL)’ 프로게이머 이상혁(Faker)국내의 유명 예능프로그램에 종종 출연하여 시청자의 관심을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연예인들은 그를 팬이라고 칭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이상혁 선수의 위상은 해외에서 더욱 높은데, 그는 유력 외신이 주목하는 국내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다. 미국 스포츠 전문 언론인 ESPN은 지난 2016년 이상혁 선수를 농구의 르브론 제임스, 축구의 리오넬 메시와 비교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ESPN이 게재한 이상혁 선수 기사 갈무리


국내 게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디어랩사인 인크로스의 ‘2019 온라인 게임 이용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전체 게임 이용률은 지난 2019년 65.7%였다. 앞선 결과에는 모바일 디바이스의 보급이 주요한 요인이 됐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남성은 60.8%였으며, 여성은 57.2%였다. 남녀 구분 없이 게임을 향유하고 있고, 이는 콘텐츠로써 게임을 바라보게 하는 대중적인 인식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남성 위주의 게임 문화가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부정적인 인식을 탈바꿈하는 일에 있어 대중성은 중요한 무기가 된다. 더 이상 게임은 특정한 집단이나 소수가 즐기는 콘텐츠가 아니다.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게임(LOL, 클래시로얄, 하스스톤 등 여섯 종목)은 인기에 힘입어 시범종목에 선정됐으며, 오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게임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이를 즐기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당연한 인간의 생리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의 경기를 관람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미국메이저리그(MLB)의 경기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신이 즐기는 콘텐츠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관람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온라인에서 소비자의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 시청 시간과 e스포츠(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컴퓨터 게임 대회나 리그) 경기를 즐기는 시청 시간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디어랩사 나스미디어의 ‘글로벌 게임 이용 및 게임 영상 시청 현황’을 따르면, 지난 2019년 국내 소비자는 e스포츠 토너먼트 경기를 온라인으로 일주일 평균 2.04시간 시청했다. 같은 기간 전통적인 스포츠(야구, 축구 등) 경기를 평균 2.50시간 시청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주요 국가(프랑스, 독일, 인도, 이탈리아, 일본, 싱가포르, 한국, 영국, 미국)의 소비자는 온라인으로 e스포츠 토너먼트 경기를 일주일 평균 1.72시간 시청했고,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는 일주일 평균 2.37시간 시청했다.


좀 더 앞선 조사 결과를 톺아보면 흥미롭다. 성별로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연령별로는 35세 이하에서 온라인으로 전통적인 스포츠와 e스포츠 토너먼트 경기를 시청하는 평균 시간의 차이가 좁혀졌다. 이를 통하여 향후 전통적인 스포츠를 관람하는 소비자의 비중이 감소하고, e스포츠를 즐기는 소비자의 비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스포츠 산업의 헤게모니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데프트' 김혁규 선수(위), '마타' 조세형 선수(아래). 한국e스포츠협회 대학생 기자단 당시 촬영 사진.


과거 한국e스포츠협회 대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관계자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뇌리에 박힌 인터뷰가 있는데, 중앙대학교 체육학과 설정덕 교수와의 대담이다. 중앙대학교는 e스포츠 특기자 전형을 개설하여, 프로게이머의 입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설 교수는 “e스포츠는 자극과 반응으로 이뤄진 스포츠다”라며 “산업적, 교육적 측면에서도 e스포츠는 무궁무진하다”라고 말했다. 확신에 찬 그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의 이야기인데, 당시 ‘e스포츠는 스포츠인가, 아닌가’는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앞선 논쟁은 끝맺음이 됐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가파른 성장을 이뤄낸 e스포츠는 전통적인 스포츠 산업에 편입되는 게 ‘득일까, 실일까’로 저울질을 하고 있다. 금융회사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e스포츠 시청자수가 오는 2022년 2억 7600만 명으로 증가하리라고 전망했는데, 이는 미국 최대 스포츠인 미국프로풋볼(NFL)을 상회하는 수치였다. e스포츠의 인기를 미루어볼 때,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하는 게 향후 산업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클 수 있다고 업계 판단이기도 다. 더 이상 게임은 소집단이 향유하는 하위문화라고 한정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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