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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Jan 31. 2021

콘텐츠는 사드세요, 제발

#구독 경제가 바꾼 콘텐츠 산업

지난 2001년 국내에 출간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담겼다. “산업 시대는 소유의 시대였다. 이제 소유와 함께 시작됐던 자본주의의 여정은 끝이 났다.” 지금으로부터 스무 해도 전에 리프킨은 ‘공유 경제’를 기반으로 한 문화 자본주의를 예견했다.


<소유의 종말>의 원제는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인데 온라인 공간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게 당연시된다는 현실이 핵심이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공유 경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재화를 소비자에게 연결하여 판매하는 행위에서 비롯됐다. 에어비엔비와 우버로 대표되는 해외의 벤처 기업은 공유 경제의 트렌드에 안착하며 성공했다.


콘텐츠 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과 OTT(Over The Top) 서비스, 구독 경제가 리프킨이 상상한 미래에서 구현됐다. 현재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가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다. 무엇보다 구독 경제가 일상화되면서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는 행위에 비판적인 시각이 사라지고 있다. 공룡 콘텐츠 기업인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자본을 아끼지 않는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하니 콘텐츠의 질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국내 OTT 서비스 이용률은 지난 2018년 42.7%를 기록한 뒤 재작년 52.0%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콘텐츠 생산자 입장에서는 레거시 미디어뿐 아니라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을 갖게 됐다. 물론 OTT 서비스가 콘텐츠 소비의 주요 창구로 자리 잡으며 생산자와 새로운 갑을 관계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현재 생산자가 정당한 콘텐츠 가격을 OTT에서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향후 고민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OTT 서비스로 인하여 P2P 사이트로 콘텐츠를 불법 다운로드하여 소비하는 행태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생산자가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여 콘텐츠 산업의 선순환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드라마·영화로 대표되는 영상 콘텐츠뿐 아니라 출판업도 웹소설과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유료로 소비자에게 유통되고 있다. 앞선 콘텐츠를 네이버와 카카오가 자신의 핵심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콘텐츠 생산자를 가리키며 “예술은 배고픈 직업이야”라고 혀를 찼던 일도 점차 사라지게 되길 기대한다. 아직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구독 경제가 과도기라고 생각하지만 생산자와 유통사,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 산업 문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국내 소비자는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는 데에 인색하다”라는 인식도 점차 사그라지리라 생각한다.


한편, 콘텐츠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문화는 소비자에게도 중요하다. 콘텐츠를 구매하여 소비하는 행위는 수준 높은 콘텐츠로 소비자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아직도 다수의 콘텐츠가 주요 수입원을 ‘광고’로 확보하고 있다. 앞선 구도를 깨뜨리지 못한다면 자본에 잠식돼 소비자를 위한 콘텐츠가 생산되는 길이 막히게 된다. 문제의식은 뉴스 콘텐츠를 통해 깊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많은 문화 콘텐츠가 유료화에 성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만큼은 소비자가 돈을 내고 읽고 보는데 부정적이다. 이는 언론사의 문제이기도 하며, 대형 포털사이트와의 첫 단추를 잘못 꿴 현실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과거 포털사이트가 성장하는 데 있어 뉴스의 역할이 컸다. 포털사이트가 검색 엔진에서 콘텐츠 유통사로 변모했는데, 뉴스가 게재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포털사이트는 뉴스를 무료로 소비자에게 유통했고, 언론사는 많은 소비자가 상주하는 포털사이트의 힘을 이용해 트래픽(조회 수)을 높였다. 트래픽은 광고 단가를 높이는 주요 지표이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포털사이트와 언론의 위치였다.



달콤한 밀월이 끝나고, 언론사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광고만으로 언론사의 수익 모델을 유지하는 데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20 신문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지난 2014년 이래로 꾸준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대형 언론사의 현실을 미루어볼 때, 영세 미디어가 마주한 위기는 더욱 엄혹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뉴스는 포털사이트에서 무료로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언론사가 매출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기 위해 뉴스의 콘텐츠 유료화를 시작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작년 10월에 발표된 미디어렙사 인크로스의 인사이트 리포트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언론 매체라고 인식하는 소비자의 비율은 64.2%에 달했다. 또한,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비율은 39.1%였으며, 신문은 1.8%에 그쳤다. 젊은 층으로 한정했을 때, 포털사이트로 뉴스를 소비하는 비율은 더욱 높다. 20대는 77.7%, 30대는 66.0%, 40대는 44.9%였다.


포털사이트는 시장에서 뉴스 소비의 무료 플랫폼으로 확고하게 존재하고 있다. 포털사이트는 뉴스 소비를 위한 유료 플랫폼으로의 전면적인 전환에는 미온적일 것이고, 언론사는 뉴스를 유료로 제공할 공간을 자체적으로 마련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디지털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언론은 현실에 안주하며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작업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소비자의 외면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하지만 앞선 현실은 소비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수준 낮은 뉴스의 유통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지켜볼 만한 대목은 있다. 몇몇의 언론·미디어는 젊은 층을 겨냥하여 뉴스·지식 콘텐츠를 구독 경제 모델로 전달하고 있다. 트렌드에 발맞춰 당면한 문제를 깨뜨리겠다는 의지다. 이 같은 움직임 핵심은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데 있었다.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전문가와 현직자의 목소리로 듣고 이를 재가공하여 유통하여 판매한다.


결론적으로 뉴스·지식 콘텐츠가 유료로 유통되고 소비자가 정당한 가격으로 구매하는 게 당연하게 인식되는 시대가 오길 희망한다. 유통된 콘텐츠를 구매하여 소비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하다. 언론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제고해야 하고, 서비스의 질도 높여야 한다. 언제나 변화에 둔감했던 언론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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