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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Jan 17. 2021

왜 우리는 ‘짧음’에 끌릴까

#숏-폼 콘텐츠와 불안한 시대상

과거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던 시절, 어떻게든 독자에게 쓴 글을 각인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타이틀에 신조어를 섞어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했고, 인터뷰이의 말에서 최대한 자극적인 문구를 인용하는 ‘제목 장사’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은 어렵다.

  

포털사이트에서 기사를 클릭한 독자는 제목, 첫 문장, 첫 문단을 눈으로 살피면서 이 글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파악한다. 가치 판단에 소요되는 시간은 단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냉정하리만치 짧은 시간이지만 독자를 탓할 수는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콘텐츠 생산자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운 좋게 독자의 첫 번째 평가를 통과해도 끝난 것은 아니다. 분량이 긴 기사는 독자의 외면을 받는다. 소위 ‘스압(스크롤 압박)’을 이기지 못한 독자는 댓글로 기자를 핀잔한다. “세 줄 요약 좀….” 


최근 콘텐츠 소비자의 호흡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으며, 간결한 콘텐츠를 찾는 소비층이 증가하고 있다. 앞선 트렌트는 젊은 소비층이 주도하고 있다. 숏-폼 콘텐츠가 주류가 됐는데, 이는 말 그대로 짧은 콘텐츠를 의미한다. ‘틱톡’은 숏-폼 콘텐츠에 최적화된 동영상 플랫폼이며, 15초~1분 분량의 콘텐츠를 서비스한다. 국내의 틱톡 이용자는 400만 명이 넘고, 이중 40%는 10대가 차지하고 있다. 짧은 콘텐츠이기 때문에 사족이 담길 수 없다. 간결한 콘텐츠로 Z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유튜브도 15초 분량의 동영상을 게재할 수 있는 ‘유튜브 쇼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틱톡'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플랫폼이 변화하자 콘텐츠 기획·제작도 숏-폼 열풍을 피할 수 없었다. 웹드라마가 대표적이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드라마는 한 편 당 60분 내외로 롱-폼 형식을 오랜 시간 유지했다. 그러나 TV 시청률이 급감하고, 그 자리를 모바일이 차지하면서 자연스레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웹드라마가 젊은 층의 시선을 잡았다. 특히 숏-폼 콘텐츠 제작사인 '플레이리스트'가 선보인 웹드라마의 성공이 눈부셨다. 한 편이 15분 남짓인 웹드라마는 러닝타임뿐 아니라 Z세대의 현실적인 관심사인 고교·대학생활과 연애, 취업을 담아내며 공감을 이끌었다. 즉, 웹드라마는 광범위한 소비층을 겨냥하지 않고, 타깃을 위한 핵심 스토리텔링만을 유통하며 강점이 생겼다. 


도서·출판 산업이 숏-폼의 파고를 몸을 맡기고 있다. 특히 웹소설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지난 2017년 2700억 원 규모에서 작년 6000억 원 규모로 증가했다. 사실 웹소설의 내용이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콘텐츠로 읽히지는 않는다. 지금의 ‘3040’ 세대가 ‘XY’ 세대 일컬어질 때, 판타지·무협·로맨스 소설이 출판물로 유통 큰 인기를 끌었다. 대체적으로 앞선 콘텐츠가 디지털 플랫폼에 맞춤하여 형식이 변화한 것뿐이다. 스낵 콘텐츠로분량이 짧게 줄어들고, 모바일 기기로 이동을 하면서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전통적인 출판물도 숏-폼의 형식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실적 고민과 위로, 힐링을 주제로 하는 에세이 열풍이 눈길을 잡았다. 일련의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짧은 글에 있다. 전체적인 출판물의 분량도 줄어들고, 파트별 내용도 짧다. 짧은 글의 모음으로 구성하여, 독자가 띄엄띄엄 도서를 읽어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이는 부담을 느끼는 젊은 소비층에게도 인기가 있는 이유다.


보수적인 신문도 판형(크기)을 줄이는 방식으로 숏-폼에 참여하고 있다. 판형이 기존 대판(39cm*54cm)보다 작은 베를리너판(32.3cm*47cm)으로 바뀌고 있다. 앞선 움직임 중앙일보가 먼저 시작했고, 몇몇의 중앙지와 지역지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중이다. 신문의 크기를 줄인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끼지 않을 수 있지만, 언론의 경직성을 생각해보면 큰 변화라고 할 만하다.


'뉴닉'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왜 미디어·콘텐츠 산업이 숏-폼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는 것일까. 결국 핵심적인 콘텐츠 소비자인 MZ세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미디어·콘텐츠 산업은 이들을 잡기 위해 변화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젊은 소비자가 숏-폼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미래의 불안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작년 발표된 나스미디어의 정기보고서에 따르면 20대는 자기계발(68.3%)에 가장 큰 관심을 드러냈다. 사회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한 가지에 장기간 투자하기란 위험 부담이 따른다. 한편, MZ세대가 자기계발을 위해 이용하는 지식 콘텐츠 구독 플랫폼인 ‘폴인’, ‘퍼블리’, ‘북저널리즘’, ‘뉴닉’ 등의 서비스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시간 소비에 민감한 젊은 소비층을 위해 이들은 긴 글에 앞서 세 줄 요약, 핵심정리를 필수적으로 게재한다. 이는 최대한 간결하고 요약된 콘텐츠를 찾는데 익숙한 MZ세대를 잡기 위한 공략법이다. 또한, 콘텐츠의 분량을 줄일 수 없는 현실적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숏-폼 콘텐츠에 담기는 내용은 어떠할까. 콘텐츠(소설/드라마/만화)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소비자의 소망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주류문화·하위문화 나눌 것 없이 국내와 일본의 차이는 분명했다. 국내의 콘텐츠에는 ‘회귀’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의 비중이 높았다. 즉, 치열한 현실을 도피하는 데 있어 과거의 향수가 지배적으로 작용했다. 이에 반하여 일본의 미디어 업계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이세계로의 환생’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 이는 일본의 MZ세대에게 현실은 물론이고 과거마저도 도피처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할 것이다. 일본의 젊은 층은 기존 사회가 아닌 다른 세계를 이상향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한국도 점점 '이세계로의 환생'을 주제로 하는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다. 우리는 불안한 시대상을 콘텐츠의 형식과 내의 변화에서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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