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다. 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고, 타인의 말에 순응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몇 해 전 한 언론 기관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7.3%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거절 못하는 성격(39.8%), ▲직접 하는 게 편해서(19%), ▲관계를 위해(9.8%), ▲복잡한 것이 싫어서(9.4%), ▲이미지 관리(8.7%), ▲기타(13.3%) 등을 이유로 꼽았다.
최근 착한 사람 콤플렉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프로젝트 팀에 참여하여 여러 업무를 복합적으로 맡고 있는데, 이따금 사업의 방향성이 바뀌어 처리해야 할 일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고, 자연스럽게 내게로 들이닥쳤다. 그렇게 한두 번 업무를 떠맡으니, 상사는 부담 없이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불렀다.
처음에는 스스로 현실적인 이유라고 포장했다. 내가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자는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눈을 떠보니 한계를 넘어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게 지속적으로 일을 넘긴 상사는 다른 의미로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사람에게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느니, 한 사람에게만 나쁜 사람이 되길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내가 악역이 돼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교우관계에서도 계속된다. 우리 주변에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가 한 명쯤은 있는데, 종종 친구에게 위로받기 위해 자신의 힘듦을 쉽게 꺼낸다. 이것 하나는 꼭 명심해야 한다.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친구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힘듦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과연 이 친구는 의도치 않게 받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누구한테 해소해야 하는 걸까. 오랫동안 교우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면, 친구에게 더욱 엄격한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다.
유명 작사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이나 씨는 온라인 방송에 출연하여 “착하다는 말은 폭력적인 단어일지 모른다”라며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지 말길”을 당부했다. ‘얘는 착해’라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부탁을 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산재하고 있는데, 이 지뢰밭을 헤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게 모두의 목표가 되고 있다. 종종 주객이 전도된 상황도 맞이하게 된다. 녹록지 않아 거절해야 할 때, 오히려 전전긍긍하고 미안함을 표현해야 되는 일을 마주치는 데에회의를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사회가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는 건 다행스럽다. 최근 많은 조직에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기성세대가 혼란을 느끼고 있다. 과거에 아무렇지 않게 통용됐던 게 지금은 틀린 사실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다름이 아니고 불합리함을 고쳐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층은 스스로 ‘나쁜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데, 사실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다.
지금부터라도 ‘착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쉽게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이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면죄부를 쥐어주고, 어떤 이에게는 폭력을 일삼기 때문이다. 착함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이데올로기가 깨지기를 소망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발전하는 사회가 아닌, 이기적인 개인들이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며 발전하는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