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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Feb 07. 2021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누구에게나 인간관계를 정리할 시기는 온다

지난달 생일에 카카오톡으로 메시지가 하나 왔다. 과거 대학교 재학 무렵, 대외활동에서 인연을 맺은 형이었다. 학점이 좋지 않아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써내려고 군 전역 후 취업을 위해 대외활동에 열중하던 시기가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다. 그중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도 몇몇 있지만, 대다수는 소위 인스턴트 인간관계의 표본이었다.


생일에 맞춰 4년 만에 연락을 먼저 해온 형은 서로의 취미가 비슷하여 대외활동이 끝나도 종종 만나던 사이였다. 어느샌가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끊겼지만 말이다. “잘 지내냐”는 심상한 대화로 시작한 우리는 결국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만들었다. 잊지 않고 연락을 해줬다는 고마움이 앞섰다. 긴 공백을 깨뜨리는 메시지 하나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에 걱정들로 채워졌다. 서로의 상황이 바뀌어 어색함이 휩싸인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기우였다. 시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옛이야기를 주고받았고, 현실의 어려움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형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오히려 용기를 내어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한 죄책감을 느꼈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나도 그중 하나이다. 명절 때마다 안부 인사를 보내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나에게는 곤혹스러운 연례행사이다. 꾸준하게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부담감을 갖는 성격이다. 어떻게 기자 생활을 버텼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순이라고 생각되기까지 하니 말이다. 이따금 술자리에서 광대를 자처하는데, 이는 주변 사람에게 내면을 숨기는 기제가 됐다. 그들은 나를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으로 인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셜미디어에 게재되는 수많은 콘텐츠 중에 인간관계를 다룬 글이 많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은 태생부터 어려운 일이다. 앞선 글의 대부분은 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조언이다. 굳이 힘든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를 첨언한다. 공감되는 말이기는 한데 어떻게 칼로 무를 썰 듯 쉽게 관계를 끊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 죽는 그날까지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을 것이다.


이것 하나는 확신하며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정리할 나름의 타이밍을 맞이한다. 나에게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때가 첫 번째 타이밍이었다. 지금 두 번째 시기를 만난 듯싶다. 외부적 요인이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든 끊어내기 위해 분투 중이다. 이런 때에 안부를 묻고 만남을 기약하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 엄혹한 시기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이 되고 싶다. 무거운 인간관계도 나쁘지만 상처 받지 않으려 나의 주변을 애써 끊어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시기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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