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야구에 빠져서 살던 내가 스포츠 기자로 일을 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덕업일치’에 성공한 상황이었다. 당시 나와 삶을 공유한 지인들에게 종종 들은 말이 있는데,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돼 좋겠다”라는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자신이 꿈꾸던 분야에 몸담으면 곤욕스러운 일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였으리라 지금은 회상한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야구에 관한 도서를 탐닉하고, 세 시간이 넘는 야구 경기를 보는 게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다. 중요한 시합이 있는 날이면, 여느 팬과 다르지 않게 예매 전쟁이 뛰어들었다. 야구장에서 먹는 맥주는 언제나 청량했고, 그곳에서 친구들과 별 것 아닌 일에 희희낙락하던 시간은 좋았다. 그러다 덜컥 스포츠 기자가 됐다. 쾌적한 기자실에서 야구를 관람하고 멀리서 바라봤던 선수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가 됐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취미가 생업이 된 상황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편이 없어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일이 돼 버리니 취미로써 향유할 수 없었다.
덕업일치가 반작용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쉬는 날이면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눈과 귀를 닫았다. 스포츠 기자를 그만두고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도 야구를 즐기지 못한다. 심신을 괴롭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른이 된 내게 누군가 가장 후회하는 걸 한 가지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스포츠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말이다. 절망스럽게도 나는 순수하게 즐기던 취미를 잃게 됐다.
최근 지인 한 명이 고민을 털어놨다. “지금 하는 일이 전혀 즐겁지 않아, 일이 힘들지는 않은데 성취감을 얻지 못해 걱정이야.” 다소 규칙적이고 수동적인 행정 업무를 직장에서 하고 있는 그는 일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업무와 성격의 불일치로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대학교 재학 무렵, 대외활동에서 그와 처음 만났다. 옆에서 지켜본 그는 어떤 일이든 주체적으로 임하는 성격이 매력적이었다. 지금까지도 대외활동에 참여한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데, 그의 적극성이 한몫을 했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해봐, 라고 무한하게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머릿속으로 되뇌던 말은 건네진 못했다. “직업으로 꼭 성취감을 얻어야 할까, 얼마든지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야.” 이내 공기 속으로 흩어지고 말 흔한 조언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현실적인 이야기였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던 뒤에서 돕겠다고 다짐했지만, 상처를 받지 않길 바랐다.
나는 취미를 연애에 빗대 생각하기도 한다. 이따금 우리는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한 이성친구와 사귀게 되면 행복한 연애가 가능하리라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곤 한다. 그러나 남녀관계는 현실이기에 실연의 순간을 피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교우관계와 연애를 둘 다 놓치고 만다. 더 이상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잃고 싶지 않다.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주인공은 슬픈 눈으로 술을 홀짝이며 이런 말을 한다. 좋아하는 것의 순서를 바꿀 수 없을 때 어른이 됐음을 절감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