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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Mar 28. 2021

레거시 미디어의 종언 : 역주행

#소비자의 영향력이 높아진 시대

과거 콘텐츠가 당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특정한 이유로 인기를 얻는 현상을 ‘역주행’이라고 말한다. 최근 우리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을 통해 역주행이 미디어 산업에서 발휘하는 파급력을 목도하고 있다.


유튜브의 한 크리에이터가 브레이브걸스의 직캠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 게재했고, 이것이 화제가 됐다. 국내의 유명 커뮤니티는 브레이브걸스의 이야기를 밈(meme)으로 활용했고, 온라인에서의 인기를 레거시 미디어가 이어받았다. 현재 우리가 체감하는 브레이브걸스의 화제성은 디지털 공간에서 소비자가 만들어낸 트렌드라고 할 수 있어 사회적 의미가 더욱 크다.


브레이브걸스와 비교되는 그룹이 하나 있다. 바로 이엑스아이디(EXID)이다. 이들은 브레이브걸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 전, 역주행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EXID는 브레이브걸스와 유사한 내러티브로 인기를 끌었다. 긴 무명생활, 해체까지 고민했던 사연, 노래 ‘위아래’가 유튜브 직캠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은 이야기까지.


반면 두 그룹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이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화제성이 레거시 미디어로 이어지기까지의 기간이다. EXID의 경우, 지난 2014년 10월 파주에서 찍힌 위문공연 영상이 유튜브에서 게재됐다. 이후 음원 플랫폼에서 상위권을 장악하고,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데까지 3개월이 걸렸다. 브레이브걸스는 앞선 EXID가 걸었던 길을 단 3주 만에 주파했다.


역주행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최근 어렵지 않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압도적인 콘텐츠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는 유튜브의 존재이다. 플랫폼으로써 유튜브는 레거시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확연하게 감소시켰다. 일반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보장된 공간이라 콘텐츠의 유의미성만 확보된다면, 레거시 미디어와의 경쟁이 가능해졌다.



또한, 알고리즘이라고 불리는 필터 버블 현상은 그 사회적 문제를 차치하고, 한 가지 이슈를 트렌드로 키우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알고리즘은 콘텐츠가 시간의 영향을 받고 사장되는 걸 막는다. 이로 인하여 여론을 움직이는 확고한 자리를 유지했던 레거시 미디어는 소비자가 만드는 트렌드를 받아 확산시키는 위치로 점차 전락하고 있다.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은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이 과거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한편, 유튜브뿐 아니라 국내 커뮤니티의 영향력도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에 불을 지핀 요인이었다.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이 촉발된 계기는 분명 유명 유튜버의 직캠 영상이었지만, 이를 인터넷 놀이 문화인 밈으로 재생산하여 파급력을 높인 건 커뮤니티였다.


지난 2020년 기준 국내 사이트의 트래픽 순위를 살펴보면, 디씨인사이드(6위), 루리웹(15위), 에코리아(17위), 인벤(24위)이 ‘톱 30’에 이름을 올리며 커뮤니티 플랫폼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디씨인사이드는 네이버와 구글, 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와 비교할 정도로 높은 이용률을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종종 커뮤니티 사이트가 내포하는 사회적 문제는 존재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 없다. 커뮤니티가 만드는 문화는 인터넷의 여러 곳에 미치고, 이중 대중성을 갖춘 밈은 커뮤니티를 이용하지 않는 일반에게도 닿는다.


모바일이 일상화되기 전, PC로 인터넷의 문화를 소비하던 시기에는 커뮤니티의 콘텐츠가 다소 폐쇄성을 보였다. 하지만 모바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어짐에 따라 커뮤니티의 문화는 경계가 모호해졌고 좋든 싫든 일반에 영향을 주게 됐다. 현재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트렌드를 만드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역주행은 여타의 미디어 트렌드와는 다르게 소비자가 주도하는 현상이라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ID와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은 레거시 미디어가 아닌 소비자가 이슈를 발견하여 트렌드로까지 키웠다는 점에서 진정한 대중문화라고 할 만한다. 이에 덧붙여 EXID와 비교하여 브레이브걸스가 인터넷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진출한 기간이 압도적으로 단축됐다는 건 소비자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가파르게 성장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한편, 레트로와 역주행이라는 문화가 소비자에게 인식되자 레거시 미디어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이를 공략하는 콘텐츠를 유통하고, 제품을 출시하는 모습을 이따금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역주행은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문화 현상이다. 문화 기득권을 놓지 못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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