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담았던 직전 조직은 ‘잡지’, 소위 정기간행물을 유통 및 홍보마케팅을 진행했다. 나의 주요 직무는 아니었지만, 때때로 잡지사와 소통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휴·폐간을 알리는 잡자사의 소식들이 잦아졌다. 담당자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꽤나 난처했는데,잡지의 시대가 저무는 것 같아 마음 한켠 씁쓸했다. 매거진 매체에 근무했던 경험도 있었기에 더욱 입이 썼다.
지난 1월 발표된 '2020 잡지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잡지사의 연간 매출액은 2012년 1조 8626억 원에서 2019년 7775억 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에 따라 종사자의 수도 감소했는데, 특히 연간 매출액이 1억 원 미만인 소규모 잡지사는 전체 시장의 44.9%로 절반에 육박했다. 이는 잡지라는 오프라인 콘텐츠의 관심이 떨어짐에 따라 연관하여 감소한 광고 수익이 원인이다.
출판물에 대한 소비자의 외면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잡지사가 생존하기 위한 길은 무엇일까.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 잡지 매체에 근무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콘텐츠 산업에서 오프라인 시장은 레드 오션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고, 온라인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내가 일했던 잡지사는 어느 조직보다 이에 적극적이었다. 뉴미디어 플랫폼에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이를 위한 타 조직과의 협업에도 나섰다.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콘텐츠 제작 인력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실 잡지는 종합 콘텐츠이기 때문에 플랫폼을 이동한다고 해도 내용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트렌드의 소비 변화에 발맞춰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지만 말이다. 온라인 콘텐츠 유통, 접근성이 용이한 전자 잡지로의 변화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론적인 방안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조직도 있다. 잡지의 팬덤을 공고화하는 방안이다. 단순히 무분별하게 판매 부수를 늘리는 것이 아닌 정기구독자를 확보하고 이들을 위한 잡지를 발간하는 일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기간행물등록현황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잡지 시장의 매출은 급격하게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등록 매체는 700여 곳이 증가했다.
보통 잡지가 일반에게 연상되는 이미지는 흥미 위주의 휘발성 콘텐츠를 담은 발행물이다. 하지만 MZ세대가 주축 소비자가 됨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품으로써 잡지를 바라보게 됐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이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아닌 문학, 연애, 취미, 지역, 채식주의, 여성 등 특정 가치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잡지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매거진 B> 홈페이지 갈무리
이는 MZ세대의 소비를 자극하고 팬덤을 이끌어낸다. 종합지가 아닌 전문지의 시대가 되고 있는데, <매거진 B>가 대표적이다. 과거 일했던 조직에서는 <매거진 B>와 협업하여 전문적으로 유통했는데, 기관의 소비보다 개인 독자의 수요가 월등했다. 이들이 보이는 <매거진 B>의 충성심은 상당히 컸다. 두 권 이상을 구독하여 한 권은 소장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비율도 높았다.
한편, <매거진 B>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잡지인데, 이제는 잡지라고 부르기도 어려워졌다. 정기간행물이었던 <매거진 B>는 비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출판물이 됐다. 잡지의 큰 단점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떨어진다는 데 있다. 하지만 <매거진 B>는 비정기적 발간을 선택하면서 단행본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물론 <매거진 B>는 정기간행물로 발간하던 시절에도 각각의 잡지가 단행본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었다.
축구 전문 잡지인 <포포투>도 정기간행을 포기하고, <포포투+>라는 이름의 비정기적 단행본을 발간하고 있다. 여타의 부문보다 스포츠·엔터테인먼트는 시시각각 정보의 가치가 바뀐다. 어제의 일이 진부한 내용이 되기 일쑤다. 앞서 언급했지만, 잡지는 과월호가 되는 순간 그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와 달리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자가 원하는 정보가 담긴 단행본은 소장하길 원하는 상품으로써 매대에 올라간다.
출판 산업이 사양에 접어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출판물을 구매해본 사람이라면 어떠한 것보다 매력적인 소장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온라인 도서 플랫폼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출판 산업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확고한 수요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잡지를 비롯한 출판 업계는 규모의 경제가 아닌 타깃을 위한 맞춤별 콘텐츠를 기획하는 방향으로 운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