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감자 Sep 25. 2024

앞집과 옆집

일상다반사 ep.6

얼마 전, 아들 녀석의 중등 테니스부 입학문제로 이사를 하게 됐다.


이사한 아파트는 오래된 구축의 계단식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가운데 있고 엘리베이터를 나오면 좌, 우로 대문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가 계단식 아파트.


저녁을 먹다가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앞집 아저씨를 처음 봤네. 인상이 좋으셔."


아내와 아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가 무슨 말실수를 한 걸까?

아내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와 괴물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옆집이겠지.."


아들은 마치 외계인을 본 것 마냥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엄마의 말을 거든다.


"아빠, 우리 집에 앞집이 어디 있어? 술 많이 마셨어? 왜 그래, 정신 차려, 아빠."


우리는 한동안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쿠퍼가 된 느낌이었다. 이 차가운 공기를 돌려놓아야 하기에 쿠퍼가 먼저 용기를 낸다.


"우리 집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상대집이 앞에 있잖아. 그러니까 앞집이 맞지?"


밀림의 사자가 사슴을 잡는 맹렬한 기세로 사자가, 아니 아내가 맞받아친다.


"아파트가 일렬로 되어 있는데 앞집이 어딨어? 앞집은 맞은편 아파트가 앞집이지. 정신 차려, 여보."


주인공을 괴롭히는 덩치 큰 일진의 옆에서 야비하게 웃고 있는 그런 녀석들의 표정을 하고 있는 아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빠, 아빠는 왜 항상 아빠를 중심으로 생각해? 이건 아파트를 중심으로 생각해야지. 건 이기적인 거잖아. 옆집이야, 옆집이라고!"


머리가 어질 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십여 년을 함께 살아온 한 여자와 나의 피를 물려받은 내 핏줄이 나와는 완전 다르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데다가, 나를 철저하게 매도하고 있다. 이건 중립이 없다. 이기던가 지는 싸움이다. 이런 대결에는 쪽수가 승패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미 2:1로 지고 있다.


들이 했던 말도 깊게 각하게 된다. 내가 항상 나를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거 같은 찝찝한 마음으로 살아온 가 30년이 넘었는데 이런 내게 세상의 중심을 운운하다니..


항상 앞장서기보단 한 발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이었고, 나보단 가족이나 친구의 상황과 입장을 우선순위에 두고, 나의 일에는 무심하고 자식의 일에는 열중하는 그런 내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깜냥이 될까?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 아니면 내가 나 자체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만 내가 나를 잘 알 수 있도록 나를 더 살펴보는 시간을 자주 갖자는 생각으로 마무리한다.


아파트 앞집 아저씨부터 시작해서 자아성찰까지 이어지는 희한한 저녁식사였다.


그런데, 우리 집 문을 열고 나갔는데 앞에 상대집 대문이 보이면 앞집이 맞지 않나요?


작가의 이전글 서울테니스클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