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앞에 20명 정도가 모여있다.
크레딧 스위스에서 보낸 기업인 봉사자들
추운 가을 아침 9시 반부터 반강제로 끌려 나온 그들의 표정은
뭐라 해야 하나...
메디슨 스퀘어 파크 Corporate 봉사 프로그램은
기업에서 기부금 내고 봉사자도 보내는 시스템으로
2 시간당 $3,000-$10,000 (팬데믹 이전)
그룹 사진, 인스타그램 포스트, 쉑쉑 런치 포함 등 패키지가 커질수록 비싸졌다
센트럴 파크 컨져번씨에서 시작된 비영리 운영 모델로
뉴욕시에서 비영리 단체와 사기업이 공존하는 방법 중 하나
비영리 운영자 입장에선
자본과 노동을 둘 다 얻는 이상적인 프로그램이긴 하다만
공원 매니저 입장에선
화요일 아침부터 바깥에 끌려 나온 직장인 어른들을
초딩 마냥 달래 가며 공원일 시키는 게 도통 쉬운 게 아니었다 ㅠㅠ
5년 공원 짬밥 나의 상사 티파니는 봉사자들 일 시키는데 도가 텄었다
"내가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공짜 노동이잖아요" 라며...
심지어 귀찮아하는 사람들일수록 구석구석 데리고 다니며 고역을 시켰다
오늘 그룹.. 20명을 스캔해 보니
준비된 복장으로 나온 사람은 단 두 명뿐…
할 일이 태산인데 왜 낙엽을 치워야 하나.. 똥 씹은 표정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리고
선글라스 끼고 커피 들고 공원에 산보 나온 줄 아는 사람 한 명
그나마 부서 상사가 같이 나오면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데
오늘은 혼자 20명을 낙엽 속에서 굴려야 한다
한 명씩 다 직접 낙엽 갈퀴 (rake)와 봉지를 쥐게 하고
낙엽이 제일 많이 쌓인 브로드웨이 & 26번가 화단으로 데려갔다
“이 화단 닉네임은 Rat City (쥐 도시)예요"
"ewww"
몇 명은 웃고 대부분 찡그리며 날 바라봤다
일단 관심 끄는 데는 성공...
“걱정 마세요. 2000년대 초반 얘기예요.^^
이젠 여기서 쥐가 가장 덜 나와요"
나는 갈퀴로 낙엽을 모으고 봉지에 담는 걸 시범 보이며
“여러분 절대 손으로 낙엽을 쓸어 담지 마세요. 안전 수칙입니다.
뉴욕 공원 화단에선 뭐가 나올지 몰라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흩어져 산더미처럼 깔린 낙엽을 치우기 시작했다.
각자의 스타일로..
역할분담을 해서 낙엽을 모으고, 담고를 빠르게 하는 그룹
반면 혼자서 에어팟을 끼고 묵묵히 하는 사람
나는 봉사자들을 도우며 전반적으로 지켜보았다
낙엽을 긁어모아 봉투에 담는 건 안전하고 쉬운 노동에 속하지만
겹겹이 쌓인 낙엽 사이에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각종 쓰레기
쥐약 먹고 죽은 청솔모
뼈만 남은 쥐
까지는 사실 괜찮은 편
"파크 매니저! 여기.. 이것 좀.. 반짝이는 게 있어요 “
반짝이는 거?
알콩달콩 낙엽을 치우던 봉사자 두 명
가까이 가보니
낙엽사이에 뭔가 딱딱해 보이는 게 보인다
쓰레기 집게로 살짝 뒤쳐보니
잇몸까지 붙어있는 아랫니 윗니 틀니 풀세트가
낙엽 사이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충격적인 비주얼이었지만
구역질 나는 것은 아니었다.
“와일드하네요...^^;"
두 사람은 계속 eww 거리며 더럽다고 칭얼뎄고...
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집게로 틀니세트를 집어 쓰레기통에 가볍게 던졌다
“또 낙엽사이에서 어떤 보물이 나올까요? 호호 "
직접 틀니를 본 두 명을 제외하곤 다들 빵 터졌다.
신입인 나에게 평소 로렌스 아저씨는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Never ever 절대 맨손으로 겹겹이 쌓인 것을 잡거나 누르면 안돼요.
꼭!!! 장갑을 끼고, 도구를 사용하세요.
낙엽, 종잇더미, 그 사이에 뭐가 있을지 몰라요
맨하탄 공원 믿지 마세요.. 바늘이라도 있어서 푹 찔리면.. you are done!
인생 끝일 수도 있어요. 끝! “
뉴욕 공원에서 주삿바늘 발견은 생각보다 흔했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는 평균 주 2-3개 정도
공원과의 지침에 따라 매주 Blood Borne Pathogen (혈행성 병원균) 리포트를 보냈다.
바늘을 수거통에 넣을 때까지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화단에서 내 발에 뭐가 차여서 내려다보니
손잡이 같은 것이었다... 그걸 잡아 쑥 빼니
15cm 정도의 양날 칼이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곧장 로렌스에게 보여줬다.
"아마 홈리스가 신변 보호하려고 숨겨놓은 거네요. 자정 이후론 이 공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맨하탄 공원 믿지 마세요"
정말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부유한 메디슨 스퀘어지만
어둠이진 맨하탄의 공원은 안전하지만은 않았다.
로렌스는 칼날 부분을 신문지로 여러 겹 두껍게 감싸고
테이프를 여러 번 돌돌 말아 붙이고는
박스에 집어넣어
"sharp object"이라고 육면에 크게 쓴 다음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를 수거, 처리하는 다음 사람들이 다치치 않기 위함이라고 했다.
내가 봉사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헐... 더 얘기해 줘요!!!"
원래 친하게 알고 지낸 사람이냥
아침엔 다들 지옥 끌려가는 표정이었는데..
참나 ㅎㅎ
시계탑을 올려다보니 벌써 12시가 훌쩍 넘었다.
몇 봉사자들은 아침 추위에 입고 있던 파타고니아 재킷을 다 벤치에 벗어던져놓고
티셔츠만 입고 일하고 있었다.
모아서 단체 사진 찍는데
아침에 표정이랑 180도 다르게 웃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와.. 나 2시간 동안 폰 안 본 건 처음이야!"
다들 신이 나있었다.
끝났다고 하니 아쉬워하며 내가 기구 가져다 놓고 정리하는 것까지
도와주고 그들은 쉑쉑 버거를 먹으러 갔다.
봄가을로 일주일에 세네 번
공원 벤치 페인팅 보수, 낙엽 치우기, 식물 심기 등.. 다양했던 프로그램
한 해당 500명 정도의 봉사자들과 일했다.
날씨의 변수도 있고 때로 고되었어도 주기적으로 나와서 일하는 봉사자들이 꽤나 많았다.
집, 직장을 오가며 유일하게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난 공원일을하며 오피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청량한 성취감 같은것을 느꼈던것 같다.. 약간의 힐링과 함께.
주저앉아 식물을 심다가
잠시 허리 피면 보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아 맞다, 여기 뉴욕이었지.
그 짧은 순간마저 즐거웠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