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rgiving yet noble: 나의 첫 공원 제설 작업
고요하고 어둑한 아침 6시
눈 오는 새벽 따듯한 이불속을 나와
제설작업하러 출근하는 기분은 좀처럼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하고 소복한 눈길
발을 질-질-- 끌어가며 출근했다
새벽부터 공공 제설작업 하는 사람들이 New York's Strongest
뉴욕의 최강자 라던데
난 최약자 하고 싶다 ㅠㅠ 토끼에게 잡아먹혀도 좋아
6:50 am 공원 도착
하얀 눈이 깔린 메디슨 스퀘어는
참으로 예뻤다
추위엔 탈수 증상을 느끼기 어려워 카페인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하여
베이글을 먹고 커피 찔끔 마시고는
배치된 24번가 공원 입구에서 삽질을 시작했다
길을 따라서 일자로 쭈욱-- 눈을 밀고
삽을 킥해서 눈을 퍼 올려 화단에 집어넣고
뒤돌아 보니 내가 온 길을 얕게 메꿔놓은 얄미운 눈
반복
또 반복
날이 밝고는
눈길 위에서 폰 보는 출근자들 사이 지그재그 삽질을 하며
우리는 기다림의 미학 없는 이 도시에서
서로를 피해 각자의 할 일을, 갈길을 가기 바빴다
아주 간혹 가다 몇 사람은 멈추어
눈을 마주치며
“Thank you”
여유롭고 따듯한 한마디를 받으며
나도 잠시 눈 구경을 했다.
그리고 다시 삽질 무한 반복
겹겹이 입어 땀이 나는지 덥기도 하고, 옷 무게에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고
반면 찬 눈을 맞고 있는 얼굴과 손은 무감각해졌다
겨울 야외 노동이 쉽지가 않다
나보다 체구가 작은 정원사 1 저스틴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는데 입이 얼었다는 녀석의 말 속도가
속사포 랩보다 빨랐다
그래 너도 얼마나 힘들겠니 ㅠㅠㅎ
반면 뉴올리언스 출신 정원사 2 데니는 휘파람을 불며
삽을 타고 공원을 날아다녔다
"28년 인생 첫눈이라고요!! 너무 아름다워요!! 너무 아름다워요!!”
너무 감당이 되지 않았다.. 에너지가 투 머취 였다 -_-;
그리고
난...
난 이 추위에서 뭐 하는 걸까?
난 왜 이런 일을 자처하고 있는 걸까?
건축사에서 일했던 시간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시간
편안한 공간에서의 즐거웠던 기억들이 눈앞에 아른 거리며
이 추운 날 삽질을 하고 있는..
‘탁‘
나의 어깨를
뒤돌아 보니 부서장 루카스
"Are you okay?..
스키 멜빵바지에 반팔을 입고선 그 무거운 쇠 삽을 들고 있다
캘리포니아 출신 사람들은 추운 거 못 견딘다고 하던데...
뉴욕 공원 제설작업 12년 차 루카스
남가주의 딸이 뉴욕의 strongest다
"스텝들 일일이 체크하고 다니는 중이에요.
괜찮아요?"
".....
반면 대한의 딸은
입도, 뇌도 얼어붙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ㅠ_ㅠ
공백을 메꿔준 무전
"Attention 공원 스텝들, 길 건너 11 Madison 레스토랑에서 코코아를 나눠주고 있어요. “
루카스와 레스토랑 입구에 가니 여자 직원 셋이서
고급스러운 은색의 디스펜서에서 코코아를 내려
함박웃음을 띄고 신나하며 코코아가 담긴 종이컵을 나눠주고 있었다
아 맞다.. 눈 오는 날은 원래 신나는 날이었지
“음… rich 한 텍스쳐… 고급스러운 코코아예요. 역시, 일레븐 메디슨! “
오... 기대에 부풀어
한입 들이켰는데..
켁!!@
삼키기 힘들 정도로 찐득하고 쓰기만 했다
난 그대로 종이컵을 내려놓고
"후아... 제설작업이 쉽지가 않네요"
루카스는 코코아를 계속 마시며
“그래요? 이 정도면 쉬운 편인데?
내일은 더군다나 기온이 올라서 a piece of cake (식은 죽 먹기) 일거예요. “
지금까지 눈이 내리면 그냥 눈이 내리는구나
아름답다 하고 살았다
몰랐다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눈이 온 거리를 치워왔다는 것을
그리고 치우는 사람들에겐 치우기 쉬운 눈, 어려운 눈이라는 게 있었다
오후 내내 삽과 snow thrower (날림식 제설기)를 번갈아 가며 사용한
나의 손은 얼었는지 굳었는지 잘 펴지지 않았고
여덟 시간 정도 부츠를 신고 삽질하고 돌아다닌 발과 다리는 이미 무감각해졌다
네시 즈음
공원에 파란 어둠이 깔리며
램프가 켜지고 주변 빌딩 창문에서 노란빛이 퍼져 나왔다
푸른 설경 사이사이 짙은 색 코트의 퇴근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적 달력에서 보던
외국 이미지 같았다… 매우 아름다웠다
부서장은 아침 제설 팀을 보내며
“내일은 기온이 올라 전반적으로 녹을게 예상되니
소금은 뿌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그녀는 로렌스 아저씨의 오후팀을 조인해
밤 9시 반까지 제설작업을 이어했다
대단한 여자였다.
하루 종일 삽질을 하고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족욕이었다
아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따듯한 물에 발을 담갔더라?
지독하게 눈만 치운 날
주먹을 살짝 쥐어보았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그냥 아프기만 했다
하지만
언젠간 그리워할 수 있는 날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뉴욕이라는 종착지, I have arrived.
Each step is a destination
이 모든 발걸음이 나의 목적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
.
.
.
다음날
해가 강하게 쬐었다
개울가에 온 것처럼 눈이 녹으며 물 흐르는 소리가 공원 여기저기서 들렸다.
부서장의 예측대로 작업은 수월히 끝났다.
나의 이 첫 제설작업은 그냥 눈만 삽으로 퍼담으면 됐던 단순 노동에 불과한 케이스
난 공원에서 일하는 동안 맘 편히 겨울을 보낸 적이 없다
눈이 올까?
어떤 눈이 내릴까?
스테핑 계획과 전략을 짜고
기상청 그래프를 들어다 보며 전전긍긍했다.
6 에이커 공원
7명의 팀원 (all men)
5년의 시간
폭설 속에서 하드캐리 하다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 버리고 싶은 적
보도블록에 두껍게 얼어붙은 빙판길을 깨다가 몸 사리며 어기적 거리는 직원들을 깨부술뻔한 적
낮잠 자겠다고 제설용 소금 트럭 위에 누우며 진담인 장난을 치는 지경까지 갔다
제설작업은 매번 나의 인내심을 벼랑 끝으로 몰아 넣고는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테스트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처럼
지독했다
하지만 고귀한 시간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젠 공원의 무게를 내려놓았고
기상 이변은 갈수록 심각해져 뉴욕에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도 있었지만
또 눈이 내리면 그 걸 아름답게만은 바라보지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