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은 게 아니고 속아주는 거다, 이것들아!
❉'갑질일기'는 철저히 '을'의 관점에서 쓴 기록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를 배출하는 통로 역시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으로 살아낸 이야기입니다.
을의 인생에 흔치 않은
사이다 장면을 목격한 그 순간.
솔직히 '꼴 좋다'는 생각이 바로 들진 않았다.
그보다는,
'이게 뭔 상황이지?'
어리둥절 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제야 실감이 났다.
못된 마음이지만,
'흥, 꼴 좋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친한 작가님이 말했다.
"작가님, 이제 주도권은 작가님에게 넘어간 거 같은데요?
이참에 작가료 올려 달라고 해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능한 시나리오일까?
드라마였다면
악역의 민낯이 드러나고
주인공의 진가가 증명되며
사이다 같은 엔딩을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내가 주도권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이 사회가 절대 그런 구조가 아니니까.
다만, 그 일을 당했을 때
막 따지고 화내지 않았던 것이
돌아보니 잘한 일이었다.
내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기도 했고,
다른 작가님을 데려갔다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었으니까.
나는 가장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때가 왔다.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선명해졌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내가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휘두르고 싶지 않다.
그건 내가 아니다.
비슷한 일들을 겪으며
가끔 내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왜 나는 내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늘 혼자 속앓이를 하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친한 작가님이 말했다.
"작가님, 우리 그냥 속아주는 거 어때요?
그런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죠.
그게 작가님이잖아요."
그래.
그게 나다.
속아주는 사람.
드라마였다면 통쾌하게 한 방 날리고,
"이것들아, 잘 먹고 잘 살아"
외치며 뒤돌아 섰겠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게,
제대로 한방 먹여주리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했던가?
아니다.
소리치고 강하게 나가야만
내 품위가 지켜지는 건 아니다.
승리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나를 잃지 않는데서 온다.
끝까지 나로 남는 것.
그게 진정한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