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일기 #26. 마지막 인사

갑질일기, 잠시 쉼표

by heavenlyPD

PD들에게 말했다.

미국 출장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계획한 고백은 아니었다.

저녁을 먹으며

빌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Second PD의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작가님은

그 XX의 모든 갑질을 겪으시면서도

왜 이 일을 계속하세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좋은 팀워크가

버팀목이 되어줬죠"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이젠 그만하려고요"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배제된 이야기부터

이 일을 가볍게 대하는

대표님의 태도까지

그간의 일을 차분히 털어놓았다.


그 빌런을 견디게 해 주던 버팀목이

의미를 잃은 순간,

더는 그 빌런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마웠다고.

프리랜서인 나를

팀의 일원으로 대해줘서.


이야기 중간중간,

두어 번쯤 울컥했다.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울었다면,

오래도록 이불킥 했을 테니.


저녁 내내

두 사람은 나를 설득했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그만두는 결정에

그 빌런도,

대표님의 태도도

분명히 한몫했지만,


결국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가장 좋았던 건,

후회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에 있어서도,

팀과의 관계에서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미국 출장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해야 할 일들은

매일 쏟아지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기분이 좋다.

마지막이기 때문일까.


그 빌런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나

대표님에게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보여주겠다는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다만, 나중에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이보다 더 열심일 수 없었다"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두고두고 회자될

최고의 영상을 만들고 싶다.


마지막 뒷모습까지

당당하고 싶다.


그들에게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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