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랐다. 캔버스 앞에 섰을 때, 나는 단지 붓을 들고 있었을 뿐, 그릴 대상은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가장 친숙한 것부터 시작했다. 나의 집, 나의 공간, 나의 일상. 벽, 창문, 문, 그리고 방 안의 물건들.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집을 그렸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내가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도, 그저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는 동안,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을 움직였다. 행복했다.
그러던 중, 나는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소재를 발견했다. 의자였다.
내 집에는 의자가 많다. 카페를 한다며 무리하게 사둔 디자이너 제품의 의자들. 나는 이 의자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자 자체가 이뻐서 그렸다. 의자를 그려가며, 의자의 본질을 생각했다. 의자는 의자다.
아무리 비싸고 예뻐도 앉지 않으면 의자가 아니다.
매일 의자를 그렸다.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표현으로 의자 자체를 그렸다.
그 의자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손님이 앉았던 의자, 사랑했던 사람이 앉았던 의자, 친구들이 함께 웃으며 앉았던 의자.
지금은 나만이 앉는 작업실의 의자.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생활 패턴을 만들었다. 외로워야 작업량이 늘어난다. 외로워야 생각이 명료해진다.
외로워도 참는다. 외롭다 보면 고독이 찾아온다. 항상 의자는 남아있다.
나는 매일 그린다. 아무 생각 없이,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의자를 그린다. 의자는 언제나 의자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매일 의자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