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무요 Jul 17. 2022

14. 크라우드 펀딩과 패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크라우드 펀딩, 대중 투자.


자신이 믿는 창작자, 기관, 스타트업 등의 개인과 조직에 직접 자금을 조달해줄 수 있는 방식이다. 펀딩이라는 메커니즘 특성상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초기 단계 벤처 기업이나 비영리 조직, 소규모 창작 그룹 등이 성장하는데 특히 도움이 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사업과 상품을 찾아 엔젤 투자자의 역할을 도맡을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소비자 설문 결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었다.’는 응답이 71.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산업일보)


http://www.kidd.co.kr/news/208897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펀딩 자체는 자금 조달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는 선의로 건네는 기부일 수도 있고, 엔젤 투자자로 참여해서 사업 초기에 지분을 확보할 수도 있으며,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로 보상을 받는 방식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마지막 경우로 가장 널리 인식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작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미리 해당 아이디어와 일련의 계획을 공개하고, 모금 이후 계획을 이행해서 최종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전달하는, 사실상 선주문 방식 정도로 정착했다. 물론 펀딩 플랫폼들은 '투자 상품'에 대한 주의를 고지하고자 애쓰는 모양이지만, 이미 정착해버린 인식이 그렇다.


사실 패션계에서만큼은 이 같은 선주문 방식이 낯설지 않다. 옷은 본래 선주문식 맞춤 제작이 대량 생산의 역사 이전에 있어왔고, 지금도 존재하며, 펀딩은 대량 생산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지금 시대에 맞추어 탈바꿈해 재도입된 유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특히 패션업계에서, 크라우드 펀딩은 왜 각광받고 있을까.


필자가 정확한 통계를 낸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요인은 자금 조달이지 않을까. 결국 문제는 돈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분명 자금력이 부족한 대다수의 초기 창작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다. 펀딩은 이들에게 생산 이전에 미리 자신들을 홍보하고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의미를 넘어서 생산 하기 이전에 미리 정확한 수요 예측 또한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소비가 전부가 아닌 지금 시대와 맞물려 이러한 방식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펀딩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은 손쉽게 본인이 지지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창작자를 찾을 수 있고, 창작자 역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와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자와 소비자 간의 빠른 피드백으로 이어진다. 지속적으로 요구 및 개선 사항에 대해 양방향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더 나은 제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은 크라우드 펀딩이 이루어 낸 또 다른 선순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금력이 충분한 대기업들 역시 크라우드 펀딩에 진출하고 있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부족한 자금에 대한 대안이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유인 요소는 재고 관리에서 찾을 수 있다. 패션 업계는 특히 재고 자산 관리가 가장 중요한 영역이기에 - 특히 최근 코로나19, 전쟁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하는 경우 - 재고를 줄이는 것은 사업적 관점에서 패션 업계의 최우선 임무라고도 볼 수 있다.


재고는 모든 제조업의 숙제이지만, 수명이 짧은 의류의 특성상 재고는 특히 치명적이다. 한 철만 지나도 유행이 바뀌는 순간 소비자들이 사라지는 탓에 재고의 가치는 폭락할 수밖에 없고, 대부분 헐값에 팔리거나 아예 폐기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브랜드 가치를 위해 고의로 폐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재고는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재고 처리를 위한 할인은 브랜드 이미지에도 치명적일 수 있기에 재고를 줄이는 것은 역시 패션 기업들의 0순위 임무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재고를 발생시키지 않는 크라우드 펀딩은 자본의 규모와 무관하게 매력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이쯤 살펴보면 가치 소비가 각광받고,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요즘 시대에 크라우드 펀딩은 어쩌면 달리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새로운 주류 생산 방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빠른 시장성 검증, 피드백 확보, 재고 관리 용이와 같은 이점들은 자본의 규모에 관계없이 공급자에게 절실한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역시 패션업계를 구원할 최적의 생산 방식인가. 예단할 수는 없지만, 크라우드 펀딩은 종잡을 수 없는 수요 예측, 모두에게 해로운 재고 관리 등 머리 아픈 일들은 건너뛰고 상품 기획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생산, 판매 단계를 넘어 제품 기획 및 디자인 단계에서도 펀딩 플랫폼의 구조는 의의가 있다. 물론 펀딩 플랫폼들의 공이라고 하기에는 여기까지 변화해온 소비자들의 덕이겠지만, 그럼에도 이들 플랫폼이 제품이 담고 있는 의미, 신념, 철학 등에 소비자들이 쉽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상품을 살펴보고 구매-후원을 하기에 앞서 위와 같은 내용들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소비자로 국한되지 않고 소속감을 가지며 나아가 창작자의 감정을 함께할 수도 있다. (펀딩의 성공 여부는 창작자에게도, 후원자에게도 중요하지 않은가.) 이러한 경험들은 분명 오프라인, 온라인에 상관없이 매장에서 제품을 둘러보고 구매하면서는 쉽게 얻기 힘든 것들이다.


역시 사람에게도, 산업에도 그리고 환경에도 좋기만 한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펀딩 플랫폼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편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자리 잡는 것은 왜일까. 제품에 대한 설명만으로 소비자를 설득하는 행위는 과연 패션업계에게 옳은지 의심이 드는 탓이다. 나아가 '충분한' 소비자가 없다면 제품도 없던 일이 되는 상황은 정말 괜찮을까. 자신의 브랜드와 제품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을 생각하며 브랜드를 운영하고, 아직 자신들이 닿지 못한 사람들에게 옷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옷에 자신들의 태도를 녹이기 위해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에게 같은 태도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역시 ‘충분히 팔 수 없다면 아쉽지만 별 수 없는’ 방식은 후원하고 싶은 투자자들에게도, 창작을 수행하는 본인들에게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넘어가기에는 내심 아쉬움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자금이 부족한,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창작자들을 위한다는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는 점도 환영하기 힘들다.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면, 그 '본래'의 의도를 선명하게 정의하기도 힘들고, 대기업은 크라우드 펀딩에 목적이 맞지 않는다는 둥 '창작자'의 범위에 대해 재단할 필요에 대해 역설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크라우드 펀딩이 지나치게 매력적인 탓인지 단순히 마케팅의 일환으로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점은 사실이다.


심지어 마케팅 수단을 넘어 일종의 취업 포트폴리오로 변질된 경우도 존재한다. 프로젝트의 끝은 투자자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안겨주는 것이기에, 패션 상품의 경우 보상이 제품으로 치환되어 프로젝트 안에 기획뿐만 아니라 생산, 마케팅, 사후 관리 등의 전체 공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만큼 경력으로 포장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것도 없다.


결국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포트폴리오로 쓰고자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식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든 본인의 결정이고 자유지만, 브랜드/창작자와 동행하는 마음으로 후원을 했을 사람에게는 달갑지 않을 테다. 진정성 있게 창작자의 이야기를 적는 칸에 포트폴리오를 위한 일회성 프로젝트 같은 문장이 들어갈 자리는 없을 테니 후원자들의 입장에서는 구분할 방법이 없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의 필연적 특징인 *군집 행동(Herding Behaviour) 또한 경계해야 할 요소 중 하나다. 누적 모집 금액이 커질수록 군집행동이 일어나 더 많은 투자자가 유입되고, 심지어 오픈 날의 성과가 펀딩의 최종 결과를 판가름할 수도 있는 점은 위험하다. 결국 소비자의 최종 판단에 다른 소비자들의 판단이 개입하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펀딩 플랫폼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다들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름’을 얻고자 브랜드의 이미지 구축에 전력을 다한다.

*군집 행동: 다른 금융 회사나 투자자의 의사 결정을 무조건 따르는 행위.


그럼에도 플랫폼에서는 달성률, 모집금액과 같은 구체적인 숫자에 소비자들이 매몰되기 쉬운 구조이기에 피차일반이라고 할 수 없다. 펀딩 플랫폼이 본래 의도와 달리 소비 과정에서 숫자로 소비자의 주체성을 앗아가는 것이다. 브랜드의 무의식적인 개입을 배제하면 눈으로 결정하든 입고 나서 결정하든 대개의 경우 소비자의 최종 결정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좌우되지만,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화면에 나타나는 숫자들 탓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펀딩 플랫폼이라고 이 개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글로 자신들의 가치를 설명하는 점 또한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어제오늘처럼 이미지만으로 소통하는 시대에서 결과물에 대한 설명을 글로 접할 수 있는 점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소비자들은 제품에 담긴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고, 제품은 결국 하나의 떠돌아다니는 이미지에 불과한 탓이다. 그럼에도 패션 디자인과 이를 수행하는 브랜드, 디자이너의 가치는 텍스트로 전달되는 내용이 전부가 아니고, 창작자 본인의 글이라고 하더라도 텍스트의 내용이 최고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눈으로 보고, 신체와 맞닿는 옷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촉각적으로 이 가치를 다룬 방법이 핵심이고, 다양한 감각을 통해 옷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소비자 본인의 해석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브랜드가 품고 있는 옷 이상의 시각 언어 - 로고, 글꼴, 웹 사이트, 매장 등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식들 - 는 소비자의 독자적인 해석과 수용을 위해 필요하다. 텍스트는 중요하지만, 복합 언어인 패션에서 단연코 전부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동일한 플랫폼과 규격이 설정된 펀딩 플랫폼에서 옷과 패션의 한계는 명확하다.

작가의 이전글 13. "Cut-Out"은 무엇을 잘랐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