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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Sep 07. 2024

엄마가 카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엄마 목소리가 유난히 밝고 유쾌하다.

전화가 울린다.

엄마다.

이제 일 끝나고 집에 가시는 길이란다.


엄마는 요양보호사다.

평일 오전 4시간.

여든이 넘은 할머니를 돌봐드린다.

반찬도 만들어드리고,

청소도 해드린단다.

요양보호사가 반찬도 해야 되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엄마가 해주는 반찬을 너무 좋아하신단다.

그전 요양보호사님은 자기 집도 반찬은 사 먹는다며

못해준다고 그만뒀단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참 깐깐해서

한 두 달도 안되어 몇 명이나 그만두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되려 할머니가 전전긍긍하신단다.

혹시라도 엄마가 안 오실까 봐.

요양센터에서도 엄마를 붙잡는단다.

엄마 같은 요양보호사가 없다고.

엄마가 쓰신 요양일지를

센터에서 베스트일지로 선정했단다.

다른 요양사분들에게 이렇게 쓰면 최고라고 했단다.

상품권도 받았다며 부산에 오면 커피를 사준단다.

전화기 속 엄마의 목소리는  밝고 유쾌하다.


올해 대학생이 된 큰 조카가 너무 안 먹어서

걱정이란다.

밖에도 잘 안 나가고 먹는 것도 영 시원찮아서

걱정이란다.

나는 예순이 넘는 엄마가

여든이 넘는 할머니집에 가서 일하는 게 걱정인데,

엄마는 아들 딸 걱정도 모자라 손주들 걱정까지

이고 지고 안고 업고 걱정이 아주 한 가득이다.

너무 걱정 말라고, 다른 별일은 없으시냐 물으니

너는 요즘 별일 없냐며 되물으신다.

잘 있다고,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전화기 속 내 목소리도 밝고 유쾌하다.


엄마네 집 10분 거리에 누나가 산다.

누나는 요즘 자주 보느냐 물었다.

걔는 엄마가 연락을 안 하면 끄척도 없다며,

도통 연락도 없고 집에서 나오질 않는단다.

밥 사준다고 나오라 그래도 귀찮다고 안 나오고

커피 사준다고 나오라 그래도 바쁘다고 안 나온단다.

말 나온 김에 오늘 밑반찬 몇 가지 갖다 주러

가봐야겠다 하신다.


누나는 글 쓰는 사람이니까 생활 패턴도 다르고,

마감 다가오면 정신 하나도 없는 것 같더라며

대신 변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속으로 욕도 몇 마디 했다.

엄마 심심한데 한 번씩 카페라도 같이 가드리지,

뭐가 그리 바쁘다고 한 번을 같이 안 가고.

엄마가 카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몇 년 전,

엄마가 아직 서울 우리 집에서 손녀딸 봐주실 적에,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무 자격증이나 하나 골라

공부한단 핑계로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도망쳤다.


4월이었나, 5월이었나.

날이 아주 좋았던 날.

그날도 도서관에 앉아 가만히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도서관 앞이란다.

그날도 엄마의 목소리는 밝고 유쾌했다.


도서관 4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입구에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돌아서 활짝 웃는 엄마의 얼굴에 땀이 흐른다.

자전거로 20여분,

중간에 고개를 넘어야 되는 길을

산책 삼아 걸어왔단다.

손녀딸 학교 보내고

심심해서 산책 삼아 걸어와봤단다.


더우니까 우리 커피 마시러 가자했다.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엄마는 바닐라 라테.


카페가 참 좋단다.

공부는 잘되냐 물으신다.

아직 시험 기간도 많이 남아서 쉬엄쉬엄하고 있다 했다.

우리 아들도 나이 먹으니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가 보네 하신다.

그냥 씨익 웃었다.

엄마 목소리도 내 목소리도 밝고 유쾌했다.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엄마를 불러냈다.

심심한데 나오시라고.

동네에 대여섯 군데 있는 스타벅스를 순회했다.

메뉴는 매일 물어보나 마나다.

엄마는 내가 처음에 주문해 준 그 달달한 게 제일 좋으시단다.


손녀딸이 평소보다 늦게 하교하는 어느 날,

오늘은 차를 타고 동네밖 카페로 가보자 했다.

엄마는 너무 좋아하며 조수석에 얼른 타셨다.


그날은 남한산성에 있는 카페로 갔다.

동화책에 나오는 집 같으시단다.

날씨가 너무 좋아 주문을 하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 엄마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질 않는다.

아주 많은 얘기를 했던 건 같은데.

엄마가 참 많이 웃었고,

엄마가 참 많이 좋아하셨다.

엄마는 카페를 좋아하셨고,

엄마는 드라이브를 좋아하셨다.


그 해,

봄과 여름이 맞닿은 그 두세 달.

나는 엄마랑 카페를 참 많이도 다녔다.

한 번은 팔당에 있는 스타벅스에 와보시고는

뭐가 이리 좋냐며 어린애처럼 좋아하셨다.


엄마는 카페를 좋아하셨고,

엄마는 드라이브를 좋아하셨다.  



전화기 너머로 다시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산 날씨가 어제는 어땠고,

오늘은 어떻단다.

전화기 속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고 유쾌하다.

  

아빠한테 오늘은 나가서 점심 사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자고 하시라 했다.

니 아빠가 그럴 사람이냐고 푸념하신다.

평생 밖에서 커피 한 잔 못 사드실 양반이란다.

그분 아들로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했다.

엄마가 깔깔 웃는다.


연락도 없고, 시간도 없는 누나와

나가서 돈 쓰는 걸 제일 싫어하는 아빠 흉을

같이 보고 있는데 엄마가 툭 내 마음을 건드린다.

아들이랑 카페 다닐 때가 제일 좋았단다.

그때 너무 행복했단다.

엄마 목소리가 유난히 밝고 유쾌하다.


다음에 부산 가면

같이 밖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자 했다.

너무 좋다고 웃으신다.

나도 좋다고 마주 웃었다.


전화를 끊었다.

오늘 엄마 목소리는 유난히 밝고 유쾌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안 좋다.

저녁에 누나에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다.

엄마가 카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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