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비 Sep 11. 2024

죽기 전까지 목표는 턱걸이 하나입니다.

목표란 그런겁니다.

돈을 내고 하는 운동을 그만둔 지는 꽤 되었습니다.

일 이년 꾸준히 해본 운동도 있고,

한 두 달 준비동작만 배우다 그만둔 운동도

서너 개는 됩니다.


그중 가장 아쉬운 건 수영입니다.

자유형 기본 동작만 배우고 그만두었죠.

회사 출근 전 아침반을 다녔었는데,

가장 어려운 관문에서 번번이 무너졌습니다.

네, 맞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옆 레인 상급자분들 하는 걸

곁눈질로 슬쩍슬쩍 베낀 덕분에

그럭저럭 25미터 레인 몇 바퀴는 돕니다.

하지만 서너 바퀴쯤 돌고 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과연 자유형이 맞는가 하는

근원적인 의심이 듭니다.

곁눈질로 베껴 배운,

어쩔 수 없는 태생의 한계일 테죠.


그래서 저의 수영은 딱 서너 바퀴까지입니다.

그 정도선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 저 사람 수영 좀 할 줄 아는구나 하거든요.


두어 달 전 수영장 갈 일이 있어

3년 넘게 수영을 배운 열두 살 딸에게

다른 영법을 배우려고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대가를 지불했죠.

피 같은 제 만 원을요.


하지만 그날 한 번 배워보고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부부나 가족 간에 운전연습을 하면 안 되는 거

잘 아시죠?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가족한테

뭘 배울 생각은 하지 마세요.

가족끼린 그러는 거 아닙니다.


요즘 저는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를 탄다고해서 로드바이크에 쫄쫄이를 입고

매일 수십 킬로씩을 타는 건 물론 아닙니다.

저에겐 그럴 체력도, 재력도 없습니다.

단지 도서관을 오갈 때,

마트 다녀올 때, 친구 만나러 갈 때.

이럴 때마다 공유 자전거 따릉이를 타는 겁니다.

한 여름엔 좀 힘들긴 하지만

뭐, 저는 뽈뽈 거리고 잘 돌아다닙니다.


가끔 턱걸이도 합니다.

예전엔 매일 했었는데,

요즘엔 주로 제 빨래를 돌리는 날 합니다.

턱걸이 기구에 옷들이 다 치워지는 날이

이 날이거든요.

제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니까

턱걸이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셈입니다.


턱걸이를 하기 전 목표를 잡습니다.

오늘은 한 번에 열 개를 해야지.

오늘은 다섯 개씩 끊어서 다섯 세트를 해야지.

오늘은 팔을 좀 좁게 벌려서 열다섯 개를 해야지.

오늘은, 오늘은, 오늘은.

뭔가 기록을 세울 것 같은 날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목표를 잡는 날들은

어김없이 실패입니다.

한 번에 열개는커녕

다섯 개도 하기 전에 축 늘어집니다.

다섯 개씩 다섯 세트는커녕

첫 다섯 개를 하고 나면 나머지는 포기합니다.

팔을 좁게 벌리고 시작해 봤자

절반도 못 채우고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야 하고

내려옵니다.


열개의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게 되면

머릿속엔 열개라는 숫자만 둥둥 떠다닙니다.

한 개를 하고 나면 나머지 아홉 개가 생각납니다.

두 개를 하고 나면 아직도 여덟 개가 남았다는

생각에 까마득합니다.

세 개를 하고 나면 숨이 가빠오고

네 개를 하고 나면 팔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마침내 억지로 다섯 개를 하고 나면

아니 이제 절반이라고?

아직 절반이나 더 남은 거야?

라는 생각에 몸이 축 늘어지고 맙니다.

이래서야 운동이 될 리가 없습니다.


턱걸이가 잘 되는 날은 따로 있습니다.

턱걸이가 잘 되는 날은

계획을 잘 세우는 날도 아니고,

컨디션이 좋은 날도 아닙니다.


그럼 언제냐고요?

아무 생각 없이 바(bar)를 잡고

일단 몸을 끌어올리는 날입니다.


한 개를 하고 나면 한 개만 더 하자고 생각합니다.

두 개를 하고 나면

이제 한 개만 더 하자고 생각합니다.

세 개를 하고 나면

한 개 정도는 더 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합니다.

네 개를 하고 나면

한 개만 더하면 다섯 갠데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섯 개를 하고 나면

진짜 한 개만 더하고 내려오자라고 생각합니다.

여섯 개를 하고 나면

한 개만 더하면 오늘 럭키세븐이다 생각합니다.

일곱 개를 하고 나면

머리 양 옆에서 부들거리는 두 팔에게

하나 더? 괜찮겠어?라고 물어봅니다.

여덟 개를 하고 나면

이제 내려가도 괜찮아라고 달콤한 말로 꼬셔보지만

두 팔은 기어코 천근 만근이 된 몸뚱이를

아주 힘겹게 질질 끌어올립니다.

아홉 개를 하고 나면

아홉 개가 아까워 발악을 합니다.

바를 잡고 있는 손바닥의 굳은살이 밀려 고통스럽습니다.

지금 바로 바에서 손을 떼고 싶습니다.

더 이상 풍선 하나 끌어올릴 힘도 없습니다.

다섯 개를 넘었을 때부터

이미 등은 새우처럼 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미 한 아홉 개가 아깝습니다.

어떻게든 힘을 주어 몸을 조금씩 당겨 올려봅니다.

바에 턱이 거의 닿을락 말락 할 때!

참았던 숨을 한 번에 토해내며 바닥으로 내려옵니다.


에이 정자세가 아니네,

뒤에 몇 개는 한 걸로 치면 안 되지 하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죠. 방엔 저 혼자니까요.


그렇게 저는 누가 뭐래도 턱걸이 열개를 한 사람이

되어 당당히 방을 나옵니다.

방문을 나서는데 두 팔이 참 방정맞게도 부들거립니다.


목표란 그런 겁니다.

오늘 이 만큼을 정복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복당하는 건 늘 자기 자신입니다.

거대한 목표에 깔려 바둥거리게 되는 거죠.

이래서야 뭔가 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턱걸이 목표는 늘 한 개입니다.






*사진출처:pixabay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카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