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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Sep 20. 2024

하와이안 피자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너에게

하와이안 피자가 뭐 어때서.

오늘은 '선택'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해.

지난번엔 '친절'이더니 이젠 '선택'이라니.

뭐 다음엔 '봉사' 나 '안전' 이런 거 아니냐고?

솔깃한데?


그래도 지난번처럼 조금만 친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봐준다면 앞으로 선택의 갈림길에서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 거야.  

그러니 한 번 읽어봐 주면 좋겠어.

어차피 너도 방황 중이잖아.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야.

점심 메뉴 선택부터 기획서 폰트 선택까지.

우리 앞엔 항상 선택의 갈림길이 놓여 있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너는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있더라.


뭐가 옳고 뭐가 틀린 거지?

뭐가 더 옳은 거지?

어느 게 맞지?

이게 맞나?

이건가?

이거?

?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면,


!

아휴!

아니잖아!

이게 아니었네!

저걸 했었어야지!

저게 더 맞는 거였어!

저게 맞고 이건 틀린 거였어!


'왜 내가 한 선택은 항상 정답을 비켜가는 걸까?'

'어쩜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는 거지?'

선택이 끝나고 나면

늘 후회와 아쉬움만 한가득 남는 것 같던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그리고 왜

너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옳고 그름을 찾게 됐을까.


과연 네 앞에 놓인 갈림길에
정답이란 게 있긴 한 걸까?



예전에 회사에서 야근을 하는데,

한창 바쁜 시즌이라 저녁 먹을 시간도 아까운 거야.

자정 전에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판국이라

저녁은 먹어야겠고, 나가서 먹기엔 시간이 없으니

피자를 시키기로 했어.


막내가 피자를 주문하기 전에

원하는 메뉴를 물어보았지만

일하느라 바쁜 선배들은

아무도 대꾸를 안 해주더라.

나는 입모양으로 '너 먹고 싶은 거 시켜'라고 해줬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피자 냄새가 사무실에 퍼지기 시작하니까

다들 본능적으로 회의실로 모여들기 시작했어.

그리고 들어오는 순서대로

다들 놀란척하며 한 마디씩 해.


- 아휴 나비님 직접 세팅까지 하시고!

- 저희 부르시지..

- 오늘 피자는 유독 맛있겠는데요!


아이디어도 안 떠오르고 일하기도 싫어서

피자가 도착했을 때 번개처럼 책상을 박차고 나와

막내랑 회의실에서 피자를 세팅하고 있었거든.


다들 테이블 위에 세팅되어 있는 피자를 살펴보더니

세 판의 피자 중 제일 안쪽에 놓인 피자를 보고

다시 한 마디씩 하더라.


- 아.. 나는 이 피자는 진짜 이해가 안 돼.

- 저건 선 넘었지.

- 아, 우리 막내 실망인걸.


제일 안쪽에 놓인 피자는,

파인애플이 토핑으로 잔뜩 올라간

‘하와이안 피자’였거든.


다들 실망한 표정으로 한 마디씩 거들자

막내가 민망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거야.

마침 피클 포장을 뜯다가 엄지손가락에 묻은

피클 국물을 쪽쪽 빨아먹고 있는데

막내와 눈이 마주쳤어.

아, 그 표정을 보니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더라고.


- 응, 하와이안 피자는 내가 시켰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피자거든.

다음에도 메뉴 안정해 주면

다음엔 세 판 다 하와이안으로 시킬 거야.


그날 하와이안 피자는 두 사람만 먹었어.

막내는 정말 하와이안 피자가 먹고 싶어서 시킨 거였더라.

물론, 나도 하와이안 피자를 잘 먹긴 하는데

나는 다른 피자도 잘 먹거든.

근데 저렇게 말하고 나니

다른 피자엔 손을 못 뻗겠는 거 있지.

막내가 파인애플 토핑을 추가까지 해서인지

상큼한 파인애플 향이

새벽에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도 나는 것 같더라.

아무튼 잘 먹었어.


- 세팅은 막내랑 내가 했으니 뒷정리는 너네가 해라.

막내야 가자~


자기는 다 먹었는데도 선배들이 먹고 있으니

눈치를 보며 앉아있는 막내의 팔을 잡아끌고

회의실을 나왔어.


- 막내야 잘했어.

다음에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시켜.

저것들이 시킬 땐 아무 말도 없다가

꼭 음식 오면 저 지랄들이야.

저것들이 일할 때도 그래.

회의할 땐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시안 만들어서 보여주잖아?

그땐 다들 아주 전문가 납셨어.

막내야 너는 저런 거 배우면 안 된다.


- 네! 근데 나비님도 하와이안 피자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줄 몰랐어요!

우리 피자짝꿍이에요! 피자 시키면 하와이안 피자는

우리 둘이 다 먹을 수 있어요!


- 어? 어... 그래! 하와이안 피자! 크로스!!


- 크로스!! 그래도 뒷정리를 도와드리긴 해야 될 것 같은데.. 저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 너는 크게 될 거야. 아주 크게 될 상이다.

올라가 피자짝꿍~


그렇게 나는 졸지에 막내의 피자짝꿍이 되었고

그 뒤로도 한 번씩 야근을 하면서 피자를 시킬 때면

해맑게 마주 웃으며 하와이안 피자만 조지곤 했어.


그래서 막내는 다른 친구들보다 유독 기억에 남아.

피자를 먹을 때마다 '하와이안 피자'를 앞에 두고

'크로스!'를 외치는데 안 그러면 이상한 거겠지.

   


네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잖아?

그러면 마치 피자를 주문하는데

'하와이안 피자'를 시킨 것처럼

네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한 마디씩 하게 될 거야.    


엥?

아니지.

저게 맞지.

아니 이걸 했어?

아휴 저걸 했어야지.

그거 말고 저게 맞는건데.


이런 반응을 몇 번 겪다 보면

이제 다음 갈림길에서부터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거지.

'옳고 그름'의 사이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정답을 잘만 고르는데

나만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거 같을 거야.


흔들려야 청춘이라는데
아직 청춘이라서 그런 걸까?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
지금보다 나이를 더 먹으면,
그땐 흔들리지 않고 정답만을 찾게 될까?
정말 그런 날이 올까?


미안한데,

내 생각에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아.

물론 나도 아직 한창 청춘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감이 좀 와.


아무리 경력이 쌓이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정답만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갈림길들 중 대부분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선택의 문제거든.


흔들리지 않는 순간이란 없어.

살다 보면 누군가 너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해줄 때가 있을 거고

정답은 이거라고 말해줄 때도 있을 거야.


절대로 새겨듣진 말도록 해.

조언이나 충고를 하는 사람도,

정답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매 순간 흔들리는 사람이야.

특히 회사에서 이런 경우는

네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게

본인에게 직,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라서

그러는게 대부분이거든.


정답은 없어.

네가 선택한 길만 유독 험한 가시밭길인 것 같아?

그래서 후회가 돼?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엔 잘 닦인 포장도로에

예쁜 꽃들이 길 주위에 만발할 거 같지?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닐 수도 있어.

그 길엔 늪지대에 악어떼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거야.

누가 알겠어?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하면

당당하게 하와이안 피자를 시켜.

처음엔 다들,

'하와이안 피자는 피자가 아니지'

'콤비네이션 피자를 시켰어야지'

'슈림프 피자가 진리지'

같은 말들로 너의 선택을 흔들겠지만,

왜? 뭐?

하와이안 피자가 뭐 어때서?


그러니,

남들 말에 흔들리지 말고

너의 선택을 의심하지 말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 가.

그러다 보면

그게 너만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날이 올 거야.


하와이안 피자 홀릭 김개똥.


멋진데?



남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친절하게 들어주고 그냥 흘려버려.

좀 더 네 판단을 존중하고,

좀 더 네 마음에 귀를 기울여.


기억해.

맞는 선택만 한 것 같은 사람도

느긋하게 유유자적 걷고 있는 것 같은 사람도

실은 모두 흔들리면서 걷고 있어.

악어떼가 잔뜩 몰려있는 늪지대를 건너는 사람,

죽창하나 들고 초원에서 사자 떼에게 쫓기는 사람,

모두가 저마다의 선택에서 흔들리면서 걷고 있어.

괜히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늪지대를 건너는 사람의 받침돌이 되어주거나

사자 떼에게 대신 물어뜯겨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지 마.


네 앞에 놓인 갈림길에 옳고 그름이란 없어.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을 걷다가 만나게 되는 인연들이
네 인생이고
그 길을 걷다가 겪게 되는 사건들이
네 인생이야.


그러니,

네 인생의 설계를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기지 마.

한 번 뿐이잖아.

네가 선택하고, 네가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은.



이 글은,

원석에서 철을 찾는 여정이었던 '돌'같은 10대,

남들의 말과 태도에 쉽게 타오르고

또 금방 식어버렸던 '쇠'같은 20대,

절대 굽히지 않는 신념의 화신이 되어

남들을 태우고 식혔던 '불'같은 30대를 보내고

40대 중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방황 중인 청춘이

이제사 방황을 시작하는 청춘에게 보내는 연서.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셀프레터.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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