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방황하고 고민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우리 모두를 위해
본격 심리안정 에세이임에도,
본격 언제 들어가는지 아무도 모르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있는 박나비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는 잘 지냅니다.
언젠가 제가 어떤 글에서 언급했듯, 살아 있으면 잘 살고 있는 겁니다.
살아만 있으면,
언제 한 번 만나 와인 한 병 까며 네 사연 내 사연, 미주알고주알, 시시콜콜 읊어대며
박장대소, 눈물찔끔, 역지사지, 니맘내맘을 시전 하며 서로의 안부를 챙길 수 있으니까요.
지난번 살짝 언급했듯, 드디어 제 신상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대로 한 편씩 쓰기만 하면 되는데요.
하아, 인생사 어느 하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없습니다.
이곳저곳 부르는대는 없는데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은 왜 이리 많은지.
결국 글쓰기는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우선순위 저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 뭡니까.
다행히 오늘은 조금 짬이 나서 팔을 저 밑바닥까지 쑤셔 넣어 불쌍한 글쓰기를 끄집어 올려봅니다.
우선순위란 늪과 같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머리끄덩이 꼭 부여잡고 있지 않으면 다시 저 밑바닥으로 내려갈 건 당연지사겠지요.
그러니 오늘은 끄집어 올린 팔에 힘 꽉 주고 한 편 끄적여 보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아유레디?
그레이색이야!
남자는 태어나면 머저리처럼 세 번만 울어야 되고, 여자는 시집가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도합 육 년을 바보로 살아야 했던 구닥다리 시절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닙니다.
요즘이야 무슨 흥선대원군 시절 얘기를 하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하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심심찮게 해댔지요.
그러다 보니 AI가 학습을 하고 로봇이 춤을 추는 시대를 살고있지만서도, 얼치기 유교문화의 잔재가 아직 뼛속 저 깊이 DNA에라도 남아있는 건지 우린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느 분 말마따나,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일자리를 달라고 폭동을 일으키는 마당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갖은 자격증과 점수를 다 갖춰놓고도 취업이 안 되는 건 본인이 모자라서 그런 거라며 머리를 쥐어뜯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책을 해대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하라는 대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까지 잘 가서!
마침내 그곳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저는 제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대학을 다니는 내내 주구장창 고민만 해댔죠.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이 안 나오더군요.
물론 고민을 한답시고 술병만 비워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가라는 대로 군대도 다녀오고, 뭘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느라 열심히 술병을 비워댔더니 어느덧 졸업반이더라구요.
결국 남들처럼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들이밀었죠.
금융권에 지원할 때는 타고난 파이낸셜리스트처럼, 광고회사에 지원할 때는 기똥찬 크리에이티브로 가득 찬 것처럼 스토리를 꾸며가며 말이죠.
그렇게 어느 대기업에 입사를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늘 허공만 바라보았습니다.
이게 맞는 걸까.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었던 걸까.
이런 고민만 하다 굳게 마음먹고 회사를 그만뒀지만, 그다음 스텝은 다시 클래식하게 돌아가더군요.
네, 경쟁사로 이직했지요.
갈 곳이 그런데밖에 없더라구요.
사실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기도 했고, 연기를 배워보고 싶기도 했고, 사업을 해보고 싶기도 했는데요.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근데요, 있잖아요.
이건 당연한 거예요.
틀 안에서 틀에 맞춰 커왔으니까요. 정해진 질문만 해야 되고, 정해진 길로만 가야 되는 환경에서 커왔으니까요. 그 틀 안에서는 힘들어도 참아야 되고, 궁금해도 참아야 되고, 남들과 다른 질문은 하면 안 되다 보니 뒤늦게 이십춘기, 삼십춘기, 사십춘기들을 겪게 되는 거죠.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내 인생 진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너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앞에 찍힌 발자국에 그대로 내 발을 집어넣는 법 밖에 모르게 된 거죠.
그 발자국 크기가 내 발과 맞는지도 모르고, 더 중요한 건 그 발자국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길을 잃는 건 흔한 일이에요.
길을 잃었다고 내 삶이 끝나는 건 절대로 아니죠.
길을 잃으면 다른 길로 가면 돼요. 그 길에서 우리는 또 새로운 기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너무 힘들면 잃어버린 그 길 위에 잠시 주저앉아도 괜찮아요.
주저앉아 한 번 울어도 보고, 한숨도 쉬어보고, 지도도 봤다가 화장실도 한 번 가구요.
그러다 이제 너무 주저앉아있었다 싶으면 그때 일어나면 됩니다.
스윽 멋쩍은 듯 코 한 번 훔쳐주고, 먼지 묻은 엉덩이 한 번 탈탈 털어주고.
그렇게 일어나서 한 손바닥에 침 뱉어서 다른 손바닥으로 탁 하고 쳐보는 거죠.
그럼 방향이 정해질 테고, 자 그럼 이제 휘적휘적 그 방향으로 가보는 겁니다.
쉽지요?
인생이 천년쯤 사는 거라면 백 년 정도는 남들 사는 대로 살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인생은 우리에게 그렇게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살아갈 시간도, 사랑할 시간도, 고민할 시간도, 멍 때릴 시간도.
모든 시간들이 그래서 너무 소중합니다. 쓸모없는 시간이란 없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있는 한 말이죠.
그러니 지금 힘들면, 비상등을 켜고 잠시 멈추세요.
지금 아니다 싶으면, 비상등을 켜고 경로를 바꾸세요.
그냥 그 길을 계속 걸어가며 아무도 모르게 혼자 아파하고, 누구도 모르게 혼자 감당하지 마세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하는 머저리처럼,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보내야 하는 바보처럼 혼자 자책하고 있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비상등을 켜고 저에게 달려와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당신의 이야기도,
당신의 짐도.
그럼,
아유레디?
그레이색이야!
*사진출처: 내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