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_자멸로 이끄는
“그러니까 여기 이 대본대로 연.. 기를 하란 말씀이신 거죠?”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완벽하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텍스트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실수가 나오기 쉽고 실수가 나오기 시작하면.. 진정성이 떨어질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이 내용을 가이드로 삼으시고 큰 줄기만 맞춰 나가시면 됩니다. 자잘한 말들이나 행동들까지 다 똑같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걸 정확하게 다 외우실 수도 없습니다. 이건 그러니까.. 한번 들어가서 경험해보시면 지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실 겁니다.”
정사각형의 원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남자와 인사팀장이 오늘 하게 될 컨설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방금 전 남자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서류의 제일 첫 장 가운데에는 작은 글씨로 타이틀이 인쇄되어 있었다.
16. P-10728-괭이상어-13
[P-10728-괭이상어-13]
남자는 인사팀장의 말에 작게 한숨을 쉬며 테이블 위의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 한 장, 한 장.. 서류를 넘기는 남자의 표정이 심상찮다. 마지막 장까지 다 넘겨 본 남자가 역시나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인사팀장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재차 뭐라 말을 하려던 찰나 인사팀장이 남자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보였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지요. 뭘 말씀하실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궁금하시리란 것도 잘 알고 있고요. 저희 컨설팅의 방식이.. 조금 특이한 건 맞습니다.”
조금 특이하다고?
아니 이게 지금 조금 특이하다는 말로 설명이 되는 얘긴가?
하아... 아무래도 잘 못 온 것 같은데..
아직 인사팀장의 말이 다 끝나지 않았기에 터져 나오는 불만을 속으로 집어삼키며 남자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런 남자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사팀장은 자연스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희 컨설팅은.. 말하자면 일종의 상황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개인과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것 같습니다.”
“개인과외.. 라니요? 이건 마치 배우 역할을 하라는...”
일단 불만은 속으로 삼키고 인사팀장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으려 했던 남자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결국 불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맞습니다. 배우역할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인사팀장이 불만과 의아함이 반씩 섞인 남자의 말을 중간에 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인사팀장의 말에 오히려 당황스러운 건 남자였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떡하지..
하지만 지금 와서 못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야, 내가 무슨 배우도 아니고..
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컨설팅이라고..
남자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마침 인사팀장과 눈이 마주친 남자가 입을 떼려는 순간 인사팀장의 손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흰 봉투.
테이블 위 서류 옆으로 흰 봉투 하나가 놓였다. 인사팀장의 오른손이 남자의 앞으로 봉투를 조금 더 밀더니 이내 봉투에서 멀어졌다.
“어제 말씀드린 대체 컨설턴트 지급 보수입니다. 원래 일회성 시용의 형태라 어제는 전담 컨설턴트 보수의 절반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오늘 아침 대표님께서 전담 컨설턴트 보수 그대로 지급해 드리라고 직접 말씀 주셔서 그렇게 책정했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아...”
인사팀장의 말에 남자는 어제 인사팀장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흘깃 봉투를 곁눈질 한 남자가 손을 흰 봉투 위로 뻗었다. 봉투 위로 손끝만 올려보았지만 벌써 두툼한 감촉이 느껴졌다. 남자의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제 분명 전속 컨설턴트 비용 절반이 200만 원이라고 했었지..
그럼 이게 400만 원..
남자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컨설팅 한 번, 한두 시간을 일하고 받는 금액으론 지나치게 많은 돈이다. 한 달에 두 번만 일을 한다고 쳐도.. 아니 만약 주에 한 번이라든지, 그 이상이 된다면...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남자의 목젖이 크게 울렁이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인사팀장이 테이블 위 서류를 집어 들어 남자에게 내밀었다.
“일단 한 번 해보시죠. 한번 해보시고 아니다 싶으시면 전속 계약을 안 하시면 됩니다. 시작 전에 몇 가지 드릴 말씀도 있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이제 가이드 스터디 시간도 빠듯합니다.”
남자는 자신의 손끝이 아직도 봉투에 붙어있는 것을 깨닫고는 화급히 손끝을 떼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서류를 내밀고 있는 인사팀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 인사팀장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남자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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