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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Sep 11. 2023

굿바이 ‘SUMMER’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분명 자기 전 살짝 더운 느낌이 들어 선풍기

타이머를 맞춰 두고 잠이 들었는데

(꼭 타이머를 맞춰 둬야 한다. 한국인 상상 속

사망 원인 상위권에 있는 무서운 살인 도구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 보면 얇은 여름 이불을 온몸에

돌돌 말고 웅크리고 있다.

아,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있구나.

벌써 그런 계절이구나.


지금 우리는 여름의 끝과 가을의 초입,

그 경계에 서있다.

끝 모르고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엄청난 무더위를

선사하던 2023년의 여름이 이렇게 지나간다니

왠지 모르게 아쉽다.

항상 이런 식이다.

지나고 나면 아쉽고, 끝나고 나면 그립다.


그렇게 아쉽고 그리운 마음으로,

지나가는 여름의 끝자락을 부여잡으며

7화를 시작해 본다.


와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딛으려는

당신을 위한 고품격 와인 스토리’ 라고 쓰고,

‘와인 한 스푼에 수다 세 스푼의 믹스커피 같은

와인 이야기’ 라고 읽는 일상와인 스토리,

제7화 시작.




제7화. 굿바이 ‘SUMMER’


둘 다 영어인데, 왜 하나는 한글이고 다른 하나는

영어로 썼냐고 굳이 물어보신다면,

끝까지 읽어 보시라 답하겠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였다고

생각하시라. 여기서 뭔가 음이 떠오른다면…

당신 정말 올드하다. 어휴.)


이번 여름은 특히 더웠던 것 같다.

(매 여름 이 말을 하는 것도 참.)

38, 39도를 넘나드는 한낮의 기온도 기온이지만,

그 불쾌하고도 꿉꿉한 습도는 정말이지 매년 여름을

한국에서 보내는 토종 한국인에게도 당최 적응이

안 된다.

마치 찜질방 사우나실에 들어와 있는 듯 숨 막히는

습기와 온도가 환상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며

불쾌지수를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이럴 때 생각나는, 딱 좋은 와인이 있다.  

무더위가 절정에 오른 한 여름의 어느 날,

오전까지 빈둥거리며 나른한 온몸을 이완시켜

주었다가 점심때쯤 느긋하게 마트로 향해 본다.

역시 마트는 좋다.

시원해서 좋고, 좋아하는 와인이 있어 좋고,

필요한 재료들이 다 모여 있어 좋다.

물론 나갈 때 영수증과 다음 달 카드 값은 싫다.

좋고 싫음이 이렇게 분명할 수가.

역시 배운 사람이다.


와인 코너에서 한참을 머문다.

세일을 하는 와인들은 뭐가 있는지,

새로 들어온 건 없는지.

모든 와인을 유심히 그리고 꼼꼼히 살핀다.

우리의 참된 기쁨 중 하나가 좋아하는 와인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 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일하는 와인들 위주로만

살펴봐서는 안된다.

세일을 하지 않는 와인들도 평소 가격이 얼마인지를

주루룩 훑어보는 습관을 기르자.

그래야 세일할 때 이게 어느 정도 세일이 들어간

건지도 알 수 있고,

혹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건지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당신과 나, 우리는 오늘도 스마트 컨슈머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뿌듯한 일이다.


무척이나 더운 여름,

그것도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한 낮인 만큼

오늘은 화이트와인 선반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렇게 선반에 놓인 와인들과의 힘겨운 눈싸움이

시작되고, 서로 지지 않으려 팽팽한 긴장감이

와인 코너를 감돈다.

어떻게 든 너희들 중 하나를 내 오늘 데려가리라.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갑자기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 아니요. 그냥 조금 보고 있는데,

여쭤볼 게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급 긴장감이 풀리며,

와인코너의 주인(어쩔 땐 직원)분께 공손히 대답을

드리고, 분주히 눈을 굴려본다.

그렇지! 이거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손을 뻗어 당첨된 오늘의 와인을 집으며,

아직 옆에 서 계시는 주인님께 아니, 사장님께

오늘은 뻘쭘한 구경꾼이 아닌 당당한 구매자가 되어

한껏 발랄하게 요청드린다.


”사장님! 이거 배껍질로 싸 주세요! “


하얀색 그물모양의 망으로 곱게 싸인 와인 한 병을

소중하게 받아 들고, 무인 계산대로 향한다.

혹시 직원분이 계시는 계산 창구가 비어 있으면

그쪽을 이용하도록 하자.

어차피 무인 계산대로 가더라도 직원분이 필요하다.

나와 당신, 우리는 무척 동안이기 때문에

와인 같은 주류를 살 때는 무인 계산대에서도

항상 검문을 받기 때문이다.

너무 동안이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불편이다. 감수하도록 하자.


계산까지 끝나고 나면, 저번에 알려준 대로

영수증의 숫자는 최대한 보지 말고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곱게 찢어

마트 쓰레기통에 살포시 넣어두고 오자.

영수증을 버릴 때 오늘도 와인 한 병을 샀다는

죄책감을 함께 버리는 연습도 꾸준히 하시길.

(즐겁고 건강한 와인생활에 대한 꿀팁을 대방출하는

여기는 어디?

고품격 와인스토리, 일상와인 캠페인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파티원 1인으로 구성된)

와인 원정대의 험난한 여정 대부분은 지난 셈이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들이,

끝났다고 생각들 때가 제일 고비이 듯,

와인 원정대에게도 이때가 가장 고비다.


그래서 바로 이때 듣는 음악이 있다.

한 여름 땀을 바짝 흘리며 화이트 와인 한 병을

구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항상 이 노래를

들으며 마지막으로 힘을 내본다.


히사이시조, ‘SUMMER’.

1999년 개봉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주제가

이기도 한 이 음악은...정말 좋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초반 10여 초간의 도입 반주에서부터 이미 마음은

두근대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기 시작하면

잠시 조용히 눈을 감고 연주를 감상해 본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작고 평화로운 어촌 마을,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것도 같고,

기분 좋은 바닷물의 짠내가 나는 것도 같다.


그래, 이게 여름이다.


이렇게 여름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집에 돌아오면

재빨리 해야 할 일 하나와 느긋하게 하면 되는 일

세 가지가 있다.


재빨리 할 일은

사 온 와인을 냉동실로 옮기는 것이다.

화이트와인의 생명은 시원함이다.

한 잔 마시는 동안 식는 것도 아까워 얼음통에

담가 두고 먹는 것이 화이트 와인 아니던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급속 냉동이다.

일분 일초가 급하다.

신발을 벗었으면 바로 냉장고로 향할 일이다.


들고 온 와인을 냉동실에 잘 넣어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좀 늑장을 부려도 된다.


먼저 샤워를 하자.

아무리 히사이시조의 ’SUMMER'를 들으며

왔더라도, 온몸에 흐르는 땀은 어쩔 수 없다.

급하게 대충대충 빨리 할 필요 없다.

어차피 냉동실에 들어간 와인이 시원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자, 샤워를 하자. 느긋하게, 그리고 시원하게.


샤워가 끝나고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휘두르며

나오는 내 모습이 아무리 멋질 것 같아도

그냥 얌전히 나오자.

그런 내 모습을 봐줄 이도 없거니와 화면에서 보던

이들의 모습이나 내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게 분명하므로 쓸데없이 샤워 다 하고

나왔는데 다시 땀이 날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말기로 하자.

그냥 얌전히 선풍기 앞에서 머리나 말리는 게

좋겠다.


시원한 반바지와 헐렁한 민소매티로 구성된

오늘의 추천 의상을 입고 다시 냉장고 앞으로

가본다. 이때 호기심에서라도 절대 냉동실을

열어서는 안 된다.

한 줌의 냉기도 헛되이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명심하자.


냉장실을 열어 오늘 사온 멋진 내 화이트 와인과

어울릴만한(우린 이걸 페어링, 또는 마리아주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어디서? 4화에서.)

음식을 만들어보자.

만든다는 거창한 표현보단 준비라는 표현이 맞겠다.


이 여름에 어울리는 초록초록한 샐러드와

그 위에 빨간 토마토를 썰어 올린다.

소스는 취향껏, 오늘 나의 선택은 발사믹 소스.

냉장고에 모짜렐라 치즈가 있다면 더없이 좋다.

이렇게 나만의 카프레제 샐러드가 완성된다.


그런데 샐러드 하나만으론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사람이 토끼도 아닌데 어떻게 저것만 먹고

배가 부를 수 있으랴.

전화기를 든다. 배달 앱을 켜고, 치킨 집을 찾는다.

오늘만은 괜찮다.

이 날씨에, 이 와인에, 이 샐러드지 않은가.

치킨을 주문하고, 잠시 숨을 고른다.


이제 잠시 후면 현관벨이 울리고,

식탁은 잃어버린 가장 큰 조각을 찾은 퍼즐처럼

완벽해질 것이다.


이때다.

냉동실에서 와인을 꺼내 오자.

물론 그전에 잔부터 준비해 두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이제 시작이다.

이 여름,

나만을 위한 한낮의 만찬을 맘껏 즐길 시간이다.

그럼, 멋진 당신을 위해!

그리고 멋진 나를 위해!

cheers!



* 우리가 와인 코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이트 와인에는 상큼한 산미가 특징인

소비뇽블랑, 조금 더 바디감(무게감)이 있는

샤르도네, 탄산이 함유된 스파클링 와인,

이렇게 세 종류의 와인이 있습니다.

(모스카토, 리슬링 등 좀 더 있지만 오늘은 이렇게

3종만 보기로 해요.)

그중 이번 여름을 함께 보낸

정말이지 가성비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 하나를

소개해드립니다.

바로 독일의 ‘헨켈 트로켄’ 입니다.


흔히들 탄산이 함유된 와인을 샴페인으로

통칭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잘못된 표현입니다.

스파클링 와인 중

프랑스 북부 샴페인(샹파뉴) 지방에서 만들어져

일정 기준을 통과한 와인만이 샴페인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제조한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

명칭을 쓸 수 없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는데, 중국과 러시아입니다.

국가명만 들어도 감이 오실 겁니다.

맞습니다. 저 두 국가는 법으로도 어쩔 도리가...)


그래서 보통 별도의 다른 명칭이 없는 국가들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통칭합니다.

하지만 스파클링 와인을 표현하는 별도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지금 소개해 드리는 ‘헨켈 트로켄’ 같은

독일의 스파클링 와인은 ‘젝트’ 라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프랑스라도 샴페인(샹파뉴) 이외의

지역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은 ‘크레망’,

이탈리아는 ‘스푸만테’, 스페인은 ‘까바’ 등의

명칭을 씁니다. (조금 더 있긴 한데 우리 거기까진

가지 않기로 해요. 늘 말씀드리지만,

당신의 즐거운 와인생활에 해롭습니다.)


아무튼, 지금 소개해드리는 이 와인 ‘헨켈 트로켄’은

정말 맛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맛이야 프랑스 고급 스파클링 와인인

샴페인(대표적으로 당신이 잘 아는 돔페리뇽)이

훨씬 더 맛있을테고, 그 정도로 비싸진 않더라도

더 맛있는 스파클링 와인이 세상엔 수두룩 하겠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기준은 절대적으로 접근성과

가성비입니다. 이 접근성에, 이 가격에, 이런 와인은

 정말 이 녀석밖에 없다는데 제 손목을...

아니 없을 것 같습니다. (이놈의 손목 거는 습관을

빨리 버려야 사지멀쩡하게 늙어갈 텐데요.

저도 걱정입니다. 에휴...)


그래서 가격에 대한 부연 설명이 꼭 필요합니다.

‘헨켈 트로켄’의 가격은 만원 아래에서부터

이만 원까지 다양합니다.

행사에 카드 프로모션이 더해졌을 때

편의점에서 9천 원대에 구매하실 수 도 있고,

마트에서 2만 원에 구매하실 수도 있습니다.

꼭 할인가로 구매하시길 강력하게 권유해 드립니다.

할인이 없더라도 만원 초반까지는 괜찮습니다.

(만원 아래로 보이면 한 박스 쟁여 두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만약 2만 원에 구입을 하게 된다면,

저는 이 와인 보다 다른 와인을 추천드렸을 겁니다.


당도는 거의 없지만, 쓴 맛도 거의 없어

정말 부담 없이, 맛있게 넘어갑니다.

탄산이 조금 거칠긴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물론 음주 가능 연령 이후를 의미합니다.

음주는 건강에 해롭고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하는 행위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미성년자는 절대 호기심에서라도 주류를

구매해서는 안됩니다.)

맥주로 식도를 단련해 온 당신에게 이 정도 탄산은

애교로 다가올 겁니다.


보통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한 여름엔 시원한

맥주만 한 게 없다고 맥주로 살짝 흔들릴 때도

많은데, ‘헨켈 트로켄’ 은 그 유혹을 당당하게

뿌리치게 해 줄 만큼 뛰어난 가성비를 보여줍니다.


집에서 제대로 준비할 시간 없이 밖에서 시원하게

 지금 바로 한 잔 하고 싶을 때에는,

편의점에서 이 와인 한 병과 얼음 컵 하나만 사서

나오시면 됩니다.

스파클링 와인이기에 와인 오프너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탄산이 있기에 손으로 조심히 오픈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캠핑장에서 무려

‘돔페리뇽’을 술 취해서 오픈하다 거의 반을

땅바닥에 흘리시더군요. 뭐 술 좀 따다가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가 문제냐고요?

뭐…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종류와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일반적인 평범한 ‘돔페리뇽’이 면세점에서

거의 30만 원 정도에 판매되지만 않는다면…


얼음컵에 방금 사서 들고 나온 ‘헨켈 트로켄’을

잔이 넘치기 직전까지 가득 따르신 후,

한 번에 드셔 보시길!

그러면 더 맛있냐고요?

아니, 저는 두 번에 나눠 비우는 것까지는 해봤는데

한 번에 비우는 건 아직 못해봐서,

혹시 되는 건지 궁금해서…


아직 스파클링 와인을 접해보지 못한 당신이라면,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가성비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젝트) ‘헨켈 트로켈’을 한 번 시도해 보실 것을

강력 추천 드립니다.



** 제가 본문에서 ‘배껍질’로 표현한,

와인병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병을 감싸는

완충재 (선물용 과일 박스에 들어있는 과일을

한 개씩 감싸고 있는 그물망 형태의 하얀색

완충포장재)는 모든 와인 판매처에서 반드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없는 곳들도 많습니다.

없다고 해서 다른 곳은 다 주는데,

왜 여기만 없냐고 흥분하지 마시고

조금 힘들더라도 조심히 들고 오시면 될 일입니다.  

그럼 오늘도 당신의 즐거운 일상 와인 생활을

기원드리며 이만 총총.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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