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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Sep 12. 2023

당신의 '와겔지수'는?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집에 와인이 다 떨어져

(보통 술꾼들의 집에 술이 똑!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집에 왜 와인이 한 병도 없겠는가.

혼자 마시기엔 좀 부담스러운 와인만 남아있거나,

오늘 그다지 땡기지 않는 품종의 와인만 있을 때,

그럴 때가 와인이 다 떨어진 경우이다.)

집 근처 마트에서 즐겨 마시는 데일리 와인을

한 병 결제했다.


‘띠링’

[**카드(0123) 승인 박나비 xx,xxx원(일시불)

09/06 17:11 **마트 누적 3억7천5백만원]


실제 카드 사용 금액의 누적 값이 저 금액일리는

없지만, 저 금액을 본 것과 같은 충격이 온다.

아니 뭘 얼마나 샀길래 누적 금액이 이렇게 되는

걸까. 혹시 누가 내 카드를 복사해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와 같은 굉장히 합리적인 추론을

하며 카드사에서 보내 준 문자를 주욱 올려 본다.


[**카드(0123) 승인 박나비 xx,xxx원(일시불)

09/01 17:23 **마트 누적 *,***,***원]


[**카드(0123) 승인 박나비 xx,xxx원(일시불)

08/30 15:31 ***24  누적 *,***,***원]


[**카드(0123) 승인 박나비 xx,xxx원(일시불)

08/26 16:24 **식품 누적 *,***,***원]


[**카드(0123) 승인 박나비 xx,xxx원(일시불)

08/25 21:28 **마트 누적 *,***,***원]


[**카드(0123) 승인 박나비 xx,xxx원(일시불)

08/23 17:51 ****점 누적 *,***,***원]


조용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 놓고, 결제한

와인 한 병을 들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문자에 찍혀 있는 저 누적 금액이 모두

와인으로 인한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 일정 부분

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오늘 밤 와인 맛은 좀 쓰겠다


한 병, 두 병 살 때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한 달에 한 번 카드사 어플로 청구서를 볼 때면

확 와닿는다.

이번 달도 이렇게나 국가 경제에 크게 보탬이

되었구나. 개인이 이 정도로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경우는 일부 재벌들 말고 없겠는데?

아, 그럼 내가 재벌인가?

쓰는 건 재벌인데, 버는 건…

이쯤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작고 소중한 내 통장 잔고의 숫자들.

이번달엔 내가 꼭 너희를 지켜 주마! 하고.

뭐, 이젠 통장의 숫자들도 믿지 않을 다짐이지만,

매달 카드 대금 청구서가 들어오면 반복되는

다짐이다.

와인 무서운 줄 알고, 좀 아껴 쓸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늦은 오후 마트에서 와인 한 병을

결제하며 시작된 상념을 주제로 글을 시작해 본다.


‘와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딛으려는

당신을 위한 고품격 와인 스토리’라고 쓰고,

‘와인 한 스푼에 수다 세 스푼의 믹스커피 같은

와인 이야기’라고 읽는 일상와인 스토리,

제8화 시작.




제8화. 당신의 와겔지수는?


사실 이번 화의 주제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 좋아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와인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사람들도

좋아할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의 즐겁고 건강한 그리고 무엇보다

합리적인 와인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다.


당신과 나, 우리는 세전 연봉, 세후 월급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카후 잔금에 매여 사는

지극히 보통 사람들이니까.


싱글일 때는 쓰는 재미에 살았다.

거의 매일,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급여 조건이 꽤 좋은 대기업에 다녔지만

씀씀이를 감당 못해 리볼빙이라는 기능도

이때 처음 이용해 보았다.

(카드 결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 금액은

다음 달로 넘기는 정말이지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물론 사용자에게는 부정적, 아니 절망적으로

획기적이고, 카드사에게는 긍정적을 넘어서

환상적으로 획기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고리의 이자는 차치하고라도 카드 대금도 일종의

빚인데, 그 빚을 미루는 습관을 들인다면 당신의

경제관념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무너지고,

그걸 깨닫는 시점에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을 경우가 많다. 신용카드 사용자가 절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결제 기능이다.


요즘 카드사에서 리볼빙을 한 번 사용해 보면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준다는 등의 문자도 보내고

 각종 이벤트 프로모션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고작 커피 쿠폰 하나에 흔들려서야

어디 우리가 합법적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당당한 어른이라고 하겠는가.


절대 저따위 사술에 흔들리지 말자.

어느 대학교수 말에 따르면 이미 우린 그전에

천 번을 흔들려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 흔들리지 말자.

흔들리는 건 장범준 님의 노래에 나오는 꽃들이면

족하다. (일상에 스며든 잔잔한 와인 이야기뿐

아니라 당신의 건전한 가계 경제를 위한

금융 상식까지 알려드리는 여기는 바로?

언제나 당신 곁에, 고품격 와인스토리

일상 와인 캠페인입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마치 리볼빙을 이용하다

파산 몇 번 해 본 사람인 줄 오해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결말까지 밝혀 둔다.

싱글일 때 1년 정도 리볼빙을 이용했고,

연말 성과급이 나왔을 때 그 돈으로 잔여 금액을

모조리 다 갚아버리고 두 번 다시 이용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 해는 유독 춥고, 배고팠던 기억이…


와인을 마시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와인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가격대의

와인을 척척 구매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많은지를 확인하며 놀라게 된다.

내 한 달치 와인 값으로 한 병의 와인을 사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몇 달 치 와인 값에 해당하는 와인에

대한 후기들도 넘쳐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절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제 상황에 맞게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즐기는 것이 왜 나쁘겠는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잘못된 와인 구매 습관을 가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와인을 마신다고 하면,

‘오~ 고급 취향이야.’, ‘돈 많나 봐?’와 같은

힘이 나는 피드백을 주는 고마운 분들이

주변에 적잖이 계신다. 한 달간 서로 주류를 소비한

비용을 계산해 보면 별 차이도 없을,

아니 어쩌면 내가 훨씬 적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직 그런 사람들이 많다.


와인은 참 재밌는 술이며, 동시에 무서운 술이다.

집에 와인이 있는데도 와인 코너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슬며시 손에 한 병이 들려 있다.

할인 행사를 할 때에는(매월, 매년 할인 행사를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마치 지금 할인하는

저 와인들을 이번 기회에 사지 못하면 살아생전

다시는 먹지 못할 것 같은 엄청난 조급함이

밀려온다.


셀러에 와인이 그득 쌓여 있는데도 살짝 열어보고는

 ‘음, 마실 게 없네.’ 혹은 ‘이걸 먹기엔 좀 아까운데’

와 같은, 와인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이 들으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오해할 말들을 태연스레

내뱉으며 근처 편의점이나 마트로 오늘 마실 와인을

사러 나간다.


그렇게 만 원, 이만 원, 삼만 원…와인들을 한 병씩

구매할 때마다, 카드 회사는 차곡차곡 100원의

에누리도 없이 정확하게 금액을 더해서 쌓아 놓는다.

그리고 결제일이 다가오면 그렇게 쌓아 둔

카드 대금이 3억 7천5백만 원이라며,

결제일에 통장 잔고가 비어 있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언제 봐도 놀라운 금액이다.


경제 용어 중 ‘엥겔지수’라는 것이 있다.

총지출에서 식료품비 지출이 차지 하는 비율이다.

이 비율 자체보다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통계국장이셨던 엥겔 선생님께서

이 숫자를 이렇게 해석하셨다는 것이 중요하다.


엥겔지수가 높을수록,

즉 나의 총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나의 소득은 빈곤한 편이라고.

물론, 엥겔 선생님께서 이렇게 특정해서

지적해주지 않으셔도, 나는 내 소득이 무척이나

빈곤하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친절도 하시지.


‘아닌데? 나는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든든한

타입이라 소득은 낮지만 엥겔지수도 낮은데?’,

‘나도 아닌데? 나는 소득도 높지만, 하루 세끼

한우 안심 아니면 소화가 안 되는 특이 체질이라

엥겔지수도 높은데?’라고 반론을 할 거라면,

우선 경제학자가 되자. 경제학자가 되어 학계로

진출해 논문을 쓰던지, 학회를 개최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도록 하자.

여기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여기는 우리가 도란도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고품격 와인 살롱, 일상 와인 스토리니까.

(뭔가 화가 거듭될수록 수식어가 느는 것 같지만,

느낌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거다.)


그럼 당신과 나,

우리도 우리만의 지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의문형 문장이지만 권유형이나 명령형의 느낌으로

읽는 것이 좋겠다.

이게 다 당신의 즐거운 와인생활을 위해서다.

좋게 말로 할 때 순순히 따르도록 하자.


와인의 엥겔지수이니, ‘와겔지수’라고 하면 어떨까?

물론, 이것도 당신의 의견을 물어보는 의문형

문장으로 보이겠지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종결형 문장으로 받아들이자.

(제발! 더 좋은 새로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가 방금 만들기로 합의한(순순히 인정하자)

‘와겔지수’가 엥겔지수와 다른 점은,

당신의 총지출에서 나누지 말고, 당신의 식료품비의

지출에서 나누어 계산하는 것이다.

매우 중요하다.

별표 표시해 두고 절대로 헛갈리지 않도록 하자.


총지출에서 나누면 당신의 즐거운 와인 생활이

조금 위태로워질 수가 있다.

‘이번 달 와겔지수가 10% 수준이니, 아직 괜찮군.

좀 더 와인을 사재껴도 괜찮겠는걸’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아직 이해를 못 한 것 같은…아니라고?

그럼 여기서 문제.


문제) 영희의 이번 달 총지출이 100만 원이라고

한다. 그중 식료품 지출은 40만 원이다.

영희의 이번 달 와인 구매 비용이 10만 원일 때,

총지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와

식료품 지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각각의 와겔지수를 구하시오. (3점)    


풀이) 총지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

10만 원/100만 원 이 되므로,

이 경우 와겔지수는 10%이다.

식료품 지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에는

10만 원/40만 원 이므로,

이 경우의 와겔지수는 25%이다.


이제 확실히 이해를 했으리라 믿는다.

이처럼 총지출을 베이스로 계산을 하면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식료품지출을 베이스로 계산을 하자는 것이다.

이번 달 당신의 와겔지수가 당신이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선을 넘는다면,

이 달 와인 구매는 당분간 쉴 것을 권장드린다.


그럼, 이 글을 읽고 마음속으로 정한

당신만의 와겔지수는?  


아니, 그 정도로 잡을 거면 이 글을 쓴 의미가…

하아, 지금 당장 핸드폰을 꺼내 당신의 통장 잔고와

카드 사용 금액을 확인해 보고,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계산을 해보시길.


그럼 오늘도 당신의 즐겁고 건전한 와인생활을

기원드리며 이만 총총.



* 그런 차원에서 이번 화에서는 마트별 최저가

와인을 소개드립니다.

대형 마트에서는 각각 자신들만의 최저가 와인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도스코파스’, ‘G7’, ‘L와인’ 등입니다.

가격은 4천 원대~7천 원대 정도입니다.

(G7의 경우 가격이 올라 9천 원대인데,

그 가격이면 만원 언저리의 고려할만한

다른 와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G7은 행사가로 6천 원 이하일 경우에

구매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마트에 가보시면 저 4종 이외에도 비슷한 가격대의

와인들이 몇 개 더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셔도 무방합니다.

드셔 보시고 가장 입맛에 맞으시는 와인을

와겔지수가 턱밑까지 찼을 때의 주력 와인으로

선정하시면 됩니다.


몇 천 원대의 저렴한 가격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쁠 것이라는 편견은 좋지 않습니다.

특히 이마트에서 49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한 도스코파스 같은 경우는

일 년에 100만 병 이상이 판매되며 와인을 마셔 본

적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와인의 세계로 이끈

혁혁한 공을 세운 와인입니다.

현지에서 주로 만 원대에 판매되는 괜찮은 와인들을

추려 후보군을 만들었고, 한국의 유명한

소믈리에분들께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여

최종 선정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건 보통의 수입사들이

초기 수입 시 와이너리에 개런티 하는 물량이

수천 병 단위라면 이마트는 무려 100만 병을

개런티 함으로써, 현지보다 국내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입니다.


물론 4900원의 와인에서 대단한 풍미와

복잡 미묘한 향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주로 칠레와 스페인의 와이너리에서 제조되는

이 와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속성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왁자지껄 소맥을

말아먹는 자리에서는 오히려 이런 와인이

더 제격입니다.


와인은 항상 고급 와인잔에 담아 클래식을 들으며

천천히 음미를 하며 마셔야만 하는 술이 아닙니다.

그렇게 먹어서 맛있는 와인과 맛있을 때가 있고,

친구들과 바닥에 퍼질러 앉아 와인잔도 없어

그 대신 물컵에 콸콸 부어 쨍하고 마셔도 맛있는

와인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마시는 당신을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당신의 속상한 마음이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도록

찰진 욕을 대신해줄 전문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듣고 있나, 트렁크에 항상 야구베트를 넣어 다니는

사회인야구단 소속 M! 부탁하마!)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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