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비 Sep 15. 2023

그러니, 즐겁게 살 일입니다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화면에 ‘제10화’라고 타이핑을 한 뒤

깜빡이는 커서를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결국 오긴 오는구나. 10화가.


처음엔 ‘한 두 편만 재미로 써보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그렇게 2화가 3화가 되고, 다시 4화로,

5화로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새 10화를 쓰기 위해

앉아있다.

경이로운 일이다.


채권자들 친구들의 권유로 1화를 쓰기 시작한 이후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내 글을 재밌어해 주고,

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내 글을

응원해(응원… 맞지?) 준다.

물론 자상하고 세심한 나는 그들의 의견을 하나도

빠짐없이 충분히 들어 본 후,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다음 화를 쓰는 것으로 그들의 응원에 충실히

보답하는 중이다.

정말이지 따뜻하고 두터운 우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그들이 1화 때부터 초지일관 나에게

얘기한 공통된 요청 사항이 하나 있다.

(의견 합치가 어려운 이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놀라운 장면이다.)

그리고 그걸 나는 이렇게 부른다.


'박나비 십화 부채론'


"열 편만 써라."

"그냥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10화까지만 써."

"쓰다가 재미없다고 집어던지지 말고, 열 개만

매일 써서 보내."

…등등.


1화 때부터 친구들의 이 말들이 머릿속에 박혀,

어느 순간부터 나는 10화는 무조건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었고, 마치 10화까지의 고료를

미리 받아 다 써버려서 이제는 물릴 수도 없는

사람처럼 거의 매일 한 편씩 글을 썼다.

정말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렇게 4화까지 썼을 때,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링크를 보내주며

반드시 10편은 써야 한다고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하던 S와, 그 말을 살짝 뭉개고 있었더니

브런치 앱은 깔았냐며 앱 링크와 작가 신청을 하는

법까지 상세하게 알려주던 R…

니들 브런치에서 나왔니?


이들의 정성 어린 세뇌와 한결같은 독촉이 있었기에

이 글이 10화까지 쓰여지고 있는 것이리라.

이 글을 빌려 무한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게 다 네들 때문 덕분이다.   


기념비적인 10화의 내용은 뭘로 하면 좋을까.

뭔가 대단한 걸 하고 싶지만 그럴 능력도 또 그럴

소재도 딱히 없으므로 그냥 늘상 하던 대로 하겠다.


‘와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딛으려는

당신을 위한 고품격 와인 스토리’라고 쓰고,

‘와인 한 스푼에 수다 세 스푼의 믹스커피 같은

와인 이야기’라고 읽는 일상와인 스토리,

제10화, 시작.




제10화. 그러니, 즐겁게 살 일입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다 와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내가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뭐 어느 쪽이든 딱히 상관은 없다.)    

와인을 즐기지 않던 친구들도 와인을 좋아하려

기꺼이 노력해 주고, 와인에 대한 내 개똥철학을

재밌게 들어주는 걸 보면 난 확실히 운이 좋다.


뭐 그런 걸로 운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당신도 와인을 즐기다 보면 이게 얼마나 부러운

상황인 건지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아마 나에게 친구 좀 빌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하하.

따라 웃을 일이 아니다. 농담 같지만 진담이다.


와인이 많이 대중화되었다고는 하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는 즐기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힘들게 수소문해서 찾아보면

다니는 회사 대표님 이거나 (이 경우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별로 친하지 않은 혹은 친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는 없는 게 더

낫다.)


그래서 와인 커뮤니티에 가보면 이런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다들 와인은 누구랑 마시나요?’

‘다른 분들은 주변에 와인 즐기는 친구들이 많으신 가요?’

‘오늘도 혼와 합니다. 외롭네요.’


와인의 속성은 술이다.

제 아무리 거창한 수식어로 포장을 하더라도

와인 역시 술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때때로 혼자 마실 수는 있지만,

늘 혼자만 마실 수는 없다.

(우린 그걸 알코올중독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마셔봐야 맛을 알고 자주 마셔봐야 내 주종이

되는 건데, 이런 면에서 와인은 진입 장벽이 조금

높은 편이다. 와인 한 번 마셔 볼까 하고 진입했다가

한 두 번 집에서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에서다.


그러고 보면 즐겁고 행복한 와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가 함께 즐길 동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모 만화의 주인공처럼 그냥 ‘너 내 동료가 돼라’ 고

한 마디 하면 짜잔 하고 와인 병들고 뛰쳐나와

나의 와인 동반자가 되어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래서 와인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와인 모임 글이 상당히 많이 올라온다.

함께 와인을 마실 동료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보통은 와인에 매우 해박한 모임의 장이

와인 리스트를 작성해 참석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평소 집 근처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운

와인들이거나 혼자 마시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와인들로 주로 리스트가 구성되며,

와인 가격과 공간 대여비, 음식 가격 등을

참석 인원수로 나누어 모임 회비를 산정하게 된다.


하지만 보통 이런 모임을 주최하는 분들은 소장하고

있는 와인들이 엄청난 경우가 많아 시중가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모임 회비를 산정하거나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좋은 와인들을 보너스로

갖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분들의 모집 글이 올라오면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마감이 된다.

혼자 구매해서 마시기엔 부담스러운 와인들을

한 자리에서 비교 시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BYOB(Bring Your Own Bottle) 컨셉일 경우

금액대를 정하고 모임을 구성한다.

금액대를 정하지 않거나 금액대의 범위를 너무 넓게

가이드할 경우 (또는 국가나 품종으로만 가이드를

줄 경우도 마찬가지) 각자 들고 오는 와인들의

가격대가 너무 차이가 나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모두가 20만 원 내외의

와인을 들고 오는 모임에, 혼자 당당히 2만 원 대의

와인을 들고 참석한 초보 와인 애호가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회자되고는 한다.

그러니 이런 모임에 참석하고자 한다면 금액대를

꼭 확인할 일이다.


이렇듯 외부의 와인 모임들도 찾아보면 많지만,

사실 선뜻 참석하겠다고 손을 들기가 부담스럽긴

하다. 그래서 이런 모임 자체에 부담을 가지는

타입이라면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모임에

나갈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는 내향적 성격을

고쳐 보겠다고 해병대 캠프를 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당신이 이런 낯선 모임을 즐기고 잘 섞이는

타입이라면. 그리고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참석해도 될까 하는 것이 유일한 고민이라면.

한 번쯤 참석해 보는 것도 좋겠다.

대부분의 와인 모임들이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보다 함께 와인을 즐기려는 마음과 기본적인

매너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내가 있는

지역의 모임을 한 번 잘 찾아보자.

(모임에 오셔서 오늘 와인을 처음 마셔본다는 분도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Don’t worry.)


다만 처음부터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대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보단 적절한 금액대의 작은 모임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럭셔리한 와인들로

잠시 행복한 와인 생활을 누리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 오래오래 해먹어야 하잖아요.

즐겁고 행복한 와인 생활을 위해선 무엇보다

당신의 와인 생활이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점 꼭 명심하시길.

언제나 당신 곁에, 고품격 와인 스토리,

일상 와인 캠페인입니다.)


또 너무 고급 와인들로 이루어진 모임의 경우,

참석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전문 소믈리에급으로 와인을 즐기시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함께

귀한 와인을 음미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모임은 즐거운 와인 생활을 한참

즐기신 이후, 자발적으로 참석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실 때 그때 참석하시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외부의 모임에 한 번씩 참석해 보는 것도

즐거운 와인 생활을 유지하는 괜찮은 방법이긴

하지만, 사실 가장 좋은 건 늘 볼 수 있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남편, 부인, 여자친구, 남자친구, 학교친구, 불…

아니 동네친구…

이들이 타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들을 포섭해 개종시키자.

(‘와인을 아십니까’와 같은 오해 살 멘트는 절대

금물이다.)


빨리 개종이 안된다고 조기에 단념하거나 화를

내지 말자. 로마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이슬에서 처음처럼으로, 카스에서 테라로 바꾸는

것도 그렇게 단시일에는 안 되는 일인데,

하물며 와인으로 주종을 바꾸는 일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일이겠는가.


참을성을 가지고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상대방을

와인으로 적셔가다 보면, 어느 날 자연스레 당신과

함께 와인의 바다를 항해하는 동료들로 변해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 cheers!


그러니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다.


한 잔 하자는 말이 곧 와인을 먹자는 말과

동의어임을 당연시 여기는 친구들이 있어서고,

맛있는 와인이 있으면 함께 즐기고 싶어

당장 콜키지 프리인 식당을 알아보는 친구들이

있어서다.


괜찮은 와인을 추천하면 구해서 마셔보고 함께

즐거워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고,

일이 바빠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

본인은 못 오더라도 와인은 한 병 어떻게 든 보내는

친구들이 있어서다.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반갑고 바람직한 일이다!

이게 바로 진짜 우정이다.)


좋은 와인과 좋은 친구,

이 둘이야 말로 환상의 마리아주,

최고의 페어링이다.


이 둘을 다 갖추고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삶인지.


그러니, 즐겁게 살 일이다.



* 무사히 10화까지 나를 인도해 준

7인의 모질이들에게 이번 화를 선물로 보내며,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의 믹스 커피 같은

일상 와인 스토리’ 시즌1을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수다에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수다에 등장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9화 미드나잇 인 서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