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꽃처럼

엄마의 부탁

by 박오늘

엄마와 나는 말하자면 좋아하지만 불편한 관계다. 청소년기의 대부분은 엄마를 증오하며 보냈고(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당시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에 저항했고, 엄마는 그 많은 저항과 분노의 대상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였을 뿐이다.), 스무살 이후에는 엄마로부터 계속해서 도망치다가 '이십 대의 절벽(모두의 이십 대에는 절벽이 있다)'에서 뚝 떨어졌을 때 엄마가 번쩍 손을 내밀어 나를 힘차게 끌어올리는 것을 본 뒤에야 비로소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내가 아주 어렸던 때에, 엄마는 언제나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던 엄마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외할머니를 원망했다. 그러나 엄마는, 신세한탄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라면서 본 엄마는 언제나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때로는 대리점 점원이었고, 때로는 방문 판매원이었다가, 때로는 신발가게의 주인이기도 했다.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이수한 이후에 고등학교 과정도 패스해내고는 결국, 지방 소도시의 작은 학교이기는 했어도 어엿하게 신학대학교 과정과 대학원 과정을 수료해냈다. 당시에 나는, 엄마가 종교에 열중하는 이유는 엄마가 오르고자 하는 사회적 성공에 대한 열망을 종교가 대신 채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는데, 동일한 기간 동안 나는, 엄마가 믿는 하나님이 내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죄책감의 무게에 신물이 나 있었다. 그리고 이 간극(왜 너는 엄마가 믿는 것을 엄마와 동일한 수준으로 신실하게 믿지 못하는 거니?)은 오랜 동안 엄마와 나 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였는데, 불현듯 발생한 한 가지 사건 덕분에 엄마는 나를 나는 엄마를 이해하게끔 되었다. 그리고 직후 나는 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두 달 전 어느 월요일, 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무슨 세미나를 들은 엄마가 집에 내려가기 전에 나와 동생이랑 밥이나 먹었으면 한다고 혹 일이 끝나면 나올 수 있는지를 물으셨다. 마침 남편이 아이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일정이 없었던 나는 엄마와의 약속장소에 나갔고, '이렇게 크고 나서는 셋이 밥을 먹는 게 처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음대를 나와서 대학원 공부까지를 마친 동생은(논문 통과가 됐나 모르겠다) 다시 진로를 바꿔 취업 시험을 준비중이었고, 엄마는 좀처럼 낯선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날따라 입에 익지 않은 동남아 음식들을 '맛있다, 맛있다' 하며 드시고 계셨다.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와 나는 만나면 티격태격 다투다가 다시 안 만날 사람처럼 헤어졌다가는 전화로 사과하고 다시 만나기를 되풀이하던 사이였는데, 이날따라 이상하게 서로 같이 앉아 있는 게 편안하고 기분 좋았다.

식사를 얼추 마칠 즈음,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책 한 권씩을 주시더니(동생은 책 두께를 보자마자 '나 안 읽어'라고 한 입에 선을 그었다ㅋㅋ 아, 나 이 *끼 명쾌해서 너무 좋아), 오늘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를 조곤조곤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한 송이 꽃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피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엄마는 이제껏 하나님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엄마를 창조한 거라고 생각했어.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감사하고 즐거워하라고 나를 만든 거라고. 그런데, 오늘 세미나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활짝 피어난 꽃, 탐스럽고 풍성하게 만개한 꽃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하고. 아, 내가 인생을 활짝 핀 꽃처럼 살았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고. 그래서 너한테 얘기해주고 싶었어. 활짝 핀 꽃처럼, 풍성하고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 그게 진짜 인생의 의미인 것 같아."


나는 남은 동남아 음식을 먹으며 엄마의 이야기를 끄덕끄덕 무덤덤하게 들었다. 엄마가 주는 두꺼운 책을 받아들고는 '오늘따라 엄마 참 이상하네' 하는 생각도 하면서 '안녕,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꼭 끌어안고는 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날 출근길이 되자 엄마의 그 말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활짝 핀 꽃처럼, 풍성하고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 딸아, 만개한 꽃처럼 충분하게 피어오르는 인생을 살아.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썼다. 오늘 생각난 일은 오늘 시작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 무슨 일이든 신나게 하려고 노력하는 나,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언젠가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 그 오랜 꿈이 서서히 시들해져 어떤 밤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에 두렵고 초라해지는 나. 그런 내가 인생을 활짝 꽃 피우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 고민 끝에 나는 이 곳에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 글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가 첫 소설 시간에 교수님 한 분은 이런 말을 했다. 원래 남자랑 잔 얘기 같은 진짜 나의 얘기는 엄마에게는 할 수 없지 않냐고. 남자랑 잔 얘기는 아니겠으나, 적어도 내 인생의 오늘을 가장 활짝 피게 만드는 노력의 일환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엄마도 내 글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모든 오늘을 피어오르는 날로 살자고 생각하면서. 활짝 핀 꽃처럼. 충분하고 아름답게.


언제라도 최선을 다했던 엄마.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