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결심하던 날
록스타 본 조비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 본 조비와 본 조비가 아닌 남자(함께 직장에 다니던 선배가 '허세 쩌는 얘기 해줄까?' 하면서 해줬던 얘긴데 나중에 찾아보니 본 조비의 음반 광고 중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음악이 있다. 본 조비와 본 조비가 아닌 음악'이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와전된 것 같다.). 많은 기혼자들이 결혼 8년차의 나의 고백에 경악을 금치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말하건데, 내 세계에 있어 남자는 두 종류다. 박쿵현과 박쿵현이 아닌 남자(실제로는 너무 멋진 이름이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박쿵현이라고 하자. 심쿵남이니까? ㅋㅋ).
쿵현 씨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매우 어두운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보내고' 있었는데, 하루하루 그저 오늘의 불행을 버텨내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20대의 태반을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며 보냈다. 당시 내가 왜 그런 부당한 폭력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순응하기만 했던가, 여전히 곱씹는 날들이 많은데, 그때엔 모든 문제는 '내게' 있고, 상대는 '나 때문에' 화가 난 것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만한 '마땅한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라는 대로 돈을 주거나 때리면 맞는, 그런 '대가'를 치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 내가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었고, 단순하게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탈출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너무 구질구질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전적으로 받았는데, 그 전까지는 내가 어떤 문제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 주변에 전혀 알리지 못했다(너무 참담하고 부끄러웠으니까). 그리고 내게 내민 그 강한 손들을 맞잡으면서 나는 내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고 소중한 친구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혹, 지금 그 부당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 모든 악의적이고 일방적인 폭력과 비난은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모든 도움에 손을 내밀어서 탈출하라고. 당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당신은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고 사랑받고 있는 존재다.).
그 터널을 통과하고 만난 것이 쿵현 씨였다. 결혼에 대한 어떤 기대, 사랑과 신뢰에 대한 어떤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쿵현 씨는 도둑처럼 나타났는데, 우리가 처음 만난 날에 느꼈던 마치 구원과도 같은 안도감은 말로는 설명해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굳이 묘사하자면 떠오르는 표현은, 아마도 내가 죽는 순간에 떠오를 한 장면이 있다면 그건, 쿵현 씨를 처음 만난 레스토랑에서 그 사람이 나를 보며 웃었던 웃음일 것이라는 정도이다. 평생에 쿵현 씨처럼 따뜻하고 충만한 존재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인데, 이토록 장담하는 이유는, 쿵현 씨같은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쿵현 씨가 다시 태어나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쿵현 씨가 다시 태어난다고 한들 내가 그 나이 먹고서 어리고 환생한 쿵현 씨를 어떻게 할 도리는 없으니까. 쿵현 씨는 내 생애 이 사람이 마지막이다. 그래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사랑해주고 아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애니웨이.
처음 만난 날부터 서로 미친 듯이 좋아하기 시작해서, 사실 어느 때가 딱히 결혼을 결심하게 된 순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든 상관없이, 나는 결국 이 사람을 지켜내야만 되겠다고 책임감을 느끼게 된 순간은 분명하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에는 '모든 연인은 영원한 산책자이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너무 예전에 읽은 소설이라 표현은 분명하진 않지만, 여하튼 저런 뉘앙스이다.), 우리는 처음 만날 날부터 연인이었기 때문에, 줄곧 한없는 산책자였다(어느 순간 내가 걷기를 게을리하고 차로 움직이자고 하는 날이 많아졌던 것은,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이 길어진 때문이지 내 사랑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ㅋㅋ). 그날도 정말 한없이 한강을 걸었는데, 왜 내 기억으로는 그 발광하는 도심 한가운데 그렇게 별이 많았다고 느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진짜 사랑에 뽕처럼 취했던 건가, 쿵현 씨가 말하는 내내 나는 별이 떠 있다고 느꼈다). 그 별 아래서, 쿵현 씨는 대학 때 했던 아르바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는데, 돌아가신 아버님이 오랜 기간 병상에 계셨고 어머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쿵현 씨는 가난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가난을 대하는 쿵현 씨의 태도는 내가 이전에 봐오던 것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었다. 거기에는 수치심이나 혐오감, 경멸 같은 것이 없었는데, 쿵현 씨는 돈이 없어서 무언가를 못하고, 그래서 자꾸 가려는 길이 차단되고, 돌아가려면 남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야만 하는 결핍의 상황을 그냥 교통신호처럼 받아들여온 사람인 듯 보였다. 오히려 결핍 때문에 더 단단해진 사람처럼 보였달까? 그는 남보다 더 오래 걷거나 서 있어온 탓에 몇 배는 더 강하고 참을성 있고 타인에게 관대했다. 당시 쿵현 씨가 내게 들려준 일이 그가 결핍을 대하는 방식을 잘 말해줬다.
대학생인 쿵현 씨는 매 학기 등록금을 그때그때 일을 해서 벌어야 했는데, 가장 큰 수입원은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청과물을 거래하는 새벽시장에서 청과 상자를 나르고 받는 일당이었다. 근데 그 일당을 계산하는 방식이 쿵현 씨로서는 딜레마였다. 일당은 (나른 상자의 개수) ÷ (일꾼 수)= ? 로 계산되었는데, 상자의 개수가 많고 일꾼 수가 적으면 손에 쥐는 금액은 많아지고 상자의 개수가 적고 일꾼 수가 많아지면 손에 쥐는 일당은 줄어드는 구조였다.
쿵현 씨는 대부분의 날들을 그곳에서 매우 즐겁게 일했다고 했다. 일하시는 분들이 모두 쿵현 씨보다는 연세가 많으셨기 때문에 기특해도 하시면서 잘 챙겨주셨다고(그렇게 말하는 쿵현 씨 차분한 옆얼굴이 나는 참 좋았다). 그러다 어느 때에, 청과시장이 급속하게 나빠지기 시작하면서(미국발 금융위기 같은 거대 소용돌이와 태풍같은 지엽적 소용돌이가 맞물려서 생긴 갑작스런 위기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이유는 사실 좀 헷갈린다.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컸던 것 같다.) 들어오는 청과 상자의 개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했다. 매일 일당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냥 학생이지만 저 분들은 모두 가장이지 않은가' 하는 죄책감이 쿵현 씨 마음을 짓눌렀다고 했다. 나는 그냥 내 등록금 벌기 위해 나오는 거지만, 저 분들은 자식 입에 들어갈 끼니를 벌어내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럼 쿵현 씨 등록금은요?"라고 물었더니, "전 얼마든지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잖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
그때였다.
'아, 나는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언제고, 이 착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기 편안하고 안락한 밥벌이를 포기할 때, 내가 이 사람이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기댈 곳이 되어주어야겠구나. 내가 이 사람의 사회안전망이 되어야겠구나.'
내가 가장 초라하고 형편없던 순간에 나의 구원이 되어주었던 사람. 그래서 그가 밀리고 떨어져서 엉덩이 댈 곳조차 없는 곳에 처해 있을 때 그가 내게 준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고픈 사람. 사실, 결혼을 작정하고 8년차가 된 오늘까지도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사회안전망은 쿵현 씨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우리 가족의 가장 튼실한 안전망은 쿵현 씨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먼 미래를 노리고 있다. 먼 미래에,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어서, 쿵현 씨가 뭘 더 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편안하고 안전하구나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장사를 해야 하나, 기술을 배워야 하나, 아침에 깰 때도 생각하고 밤에 잘 때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미래에 누군가가 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는 것, 그게 내가 쿵현 씨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는 가능하면 연명치료란 연명치료는 다 받고 싶다. 쿵현 씨랑 살 수 있는 모든 순간만큼 다 살고 싶다. 그게 벽에 똥칠을 하는 순간일지라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