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아이 둘 키우는 기혼 여성의 커리어에 대하여
저는 올해 6월, 멀리깊이라는 출판사를 창업했습니다.
스물다섯,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출판사에 취직을 했고 어학 분야에서 2년 7개월 일을 한 후에
인문 분야 책을 내고 싶어서 이직을 했어요. 그렇게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한 후
근속 10년을 4개월 남기고 작년 12월 퇴사를 했습니다.
왜 출판사를 차렸는지 말씀드리려면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이미 제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다니던 직장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좋아하던 저에게
큰 위기가 세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첫 아이를 출산하기 전이었고, 두 번째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였고,
세 번째는 둘째 아이에게 언어발달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어요.
세 번 모두, 기혼 여성이었기에 겪었던 문제였습니다.
첫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겪었던 갈등은 무난하게 넘어갔습니다.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마냥, 아이를 낳게 된다면 적어도 3년은 엄마가 안정적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임신한 직후부터 출산에 임박하기까지 몸이 무거워질수록 말도 안 되게 예민해지고 비이성적이 되어서 주변 동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부터가 문제이긴 했습니다. 저의 상사는 출산 경험이 있는 다른 직원에게 '원래 임신하면 그렇게 힘든 것이냐'를 물어보기도 했다더라고요. 한 번은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서, 도대체 '이 집은 왜 이렇게 더럽고 직원들이 게으르냐, 정말 짜증 나서 못 참겠다'라고 하도 투덜대서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동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본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 혼자 생각했어요. '아, 내가 이상하구나. 멈춰야겠다.'
마냥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던 그 시기에 마음을 고쳐먹게 된 것은 남편의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지혜 씨, 저도 지혜 씨가 아이를 안정적으로 봐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지혜 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잘하고 있어서,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지혜 씨가 너무 아까워서요."
(이 말을 쓰고 있는 와중에 다시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저 말이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이 깊은 애정과 신뢰가 많은 문제들을 견디게 했어요. 저는 출산을 했고, 10개월 만에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했습니다. 이를 악 물고 일했어요. 아이가 없는 직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편집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급여를 조정하고 2시간씩 일찍 퇴근했지만,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출간 일정을 잡았고, 그걸 지켜내는 게 저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자부심이었어요.
'애 없는 직원들보다 더 잘할 거야'라는 강박 덕분에 아마 함께 일하는 직원 모두에게 저는 큰 부담이었을 거예요. 아무도 뭐라지 않았는데, 저 혼자 엄청난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거든요. '너네 애 없는 애들보다 내가 백 배는 잘할 거야!' 같은 사무실에 이런 생각을 하는 애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엄청 스트레스받을 것 같으시죠?
둘째 출산 직후부터가 정말 문제였습니다.
와, 둘은 하나와 천지차이더라고요. 첫째 때는 애 재우고 새벽 두세 시까지 일해도 아침이면 눈이 번떡 번떡 떠졌는데, 둘째 때는 이미 체력부터가 받쳐주질 않더라고요. 그 사이에 회사에서는 팀장 수준의 역할을 해냈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일은 두 배로 늘었는데 제가 해낼 수 있는 일의 양은 절반으로 준 느낌이었어요. 어딜 가도 일이 밀려 있어서, 잘 웃고 때로 매우 관대하던 저의 성격도 바뀌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때 가장 힘들었던 게 그거였어요. 내가 전처럼 일을 잘 해내고 있지 못하구나, 하는 자각. 내가 더는 좋은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하다 못해 어린이집 선생님들께도 매번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비가 오는데 우산 없이 등원시키기도 하고, 날이 추운데 얇은 옷을 입혀 보내거나, 준비물을 못 챙기기는 다반사였고요. 한 번은 원장 선생님께서 "아침에 일기예보 좀 보셔"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냥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 키울까. 하는 생각이 하루 걸러 하루씩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가 안 됐습니다. '지혜 씨가 너무 아까워서, 일을 그만두라고 할 수 없어요.' 저에게 보내준 남편의 신뢰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둘째 아이에게 언어지연이 오고, 일주일에 세 번은 언어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남편과 번갈아가며 휴직을 한 번씩 더 쓰고 나서야(저는 세 번째 휴직이었고, 남편은 첫 번째 휴직이었어요. 그러니까 부부가 총 네 번의 휴직을 한 셈이지요) 저는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회사에서 10년 근속을 네 달 앞둔 시기였어요.
부끄럽지만, 10년 근속을 하면 그래서 포상금도 받고 모두 앞에서 포상의 변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주어진다면,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를 종종 생각하던 시점이었습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어요(또 눈물이 나네영. 정말 주책이야 ㅜㅜ)
휴직을 하고 바로 코로나19라는 복병이 들이닥쳤습니다. 10년 근속 포상을 받으면 주어지는 한 달 유급 휴가 기간을 이용해 아이와 뉴욕을 다녀오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과 집에서 꼼짝없이 지내야 했어요. 처음 한두 달은 같이 베이킹도 하고, '우리 가족 사생대회'도 열고, 둘째 아이 한글 공부도 하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집에서 알콩달콩 살림하는 재미도 좋더라고요. 그런데 세 달 네 달이 되자, 점점 두려워졌어요. 이렇게 정말 내 커리어가 끝나고 마는 것일까. 이걸로 내 편집자 인생은 끝이 되는 건가.
10년 만에 출판계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일 년쯤 놀아도 네 경력이면 어디든 다시 들어간다, 응원을 해줬지만, 믿을 수 없는 얘기였어요. 뭘 근거로 절 뽑을까요? 하다못해 정시 출퇴근도 어려운 처지인데 말이에요. 몇 군데 구인 공고가 올라온 곳에 관해 주변 편집자들에 묻기도 하고 일주일에 세 번은 아이 언어치료를 다녀야 하는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찾아보기도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사이 책 읽는 일은 왜 그렇게 달던지요. 책이 너무 좋은데, 책만 보면 또 두려워지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 책이 나오고 있는데, 굳이 이 회사들에서 날 왜 필요로 할까. 설령 지금 다시 들어간다고 한들, 내가 이 좋은 책들에 버금가는 책을 낼 수 있을까. 하루하루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아, 경력단절이 이런 건가 봐..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때, 한 개 아이템이 생각났습니다. 어학으로 편집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기획했던 책이었어요. 그 전 해애 이사를 해서 집들이로 회사 동료들을 초대했었는데, 서재에 꽂혀 있던 그 책을 보고 촉이 좋은 저희 상사가 "야, 이거 다시 내자" 하셨던 바로 그 아이템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다시 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문득 이 궁지에서 살아나갈 방법이 그 책 말고는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책을 어떻게 내지..? 혼자서 클라우드 펀딩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친한 디자이너에게 전화도 해봤어요. 혹시 내가 이런 책을 작업하게 되면 도와줄래요? 물었더니 '당연히 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얼마 받을 건데?' 물었더니 '뭘 받아요'라는 대답이 오더라고요. 당연히 드릴 테지만, 얼마나 그 대답이 고맙던지요.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은 생각에 해볼 만한 일이라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며칠 고민하던 저는 출판 임프린트로 출발해 독립에 성공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첫 직장에서 진짜 산전수전을 함께 겪은 선배였습니다. 큰 왕래도 없이 지내던 제가 무턱대고 뵐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정말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약속한 날 저는 10년 전 그 책을 가방에 싸들고 내가 브랜드를 만들게 되면 내고 싶은 기획들을 몇 개 준비했습니다. 회사 이름과 목표를 함께 정리해서요.
혼자 출판을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서럽고 힘든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배 대표님은 흔쾌히 도와주겠노라 이야기하셨습니다. 창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들은 두 번째 '도와주겠노라'였어요. 제가 모르는 많은 의사결정과 결단의 순간들을 거치셨겠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한 번도 제가 기죽을 만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올해 6월, 저는 혼자 근무하는 사무실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출판사를 시작하는 제가 가진 유일한 강점은 당장에 낼 수 있는 아이템이 있고,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어요. 저는 10년 만에 10년 전 냈던 책의 저자께 연락을 드려 다시 원고를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역시나 흔쾌히 다시 원고를 주셨고, 창업 3개월 만에 4권의 도서를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막 두 권의 도서가 서점 등록된 상태이고 다음 주면 서점에서도 멀리깊이의 책들을 보실 수 있어요.
그 사이에 기획안을 들고 여러 저자 선생님들을 찾아뵀습니다. 기획안이 마음에 드신 분들은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주셨어요. 외서 한 권도 오퍼 승인이 난 상태여서 내년이면 멀리깊이의 첫 번역서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저는 이 책들 모두, 제가 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밖에 못 내는 책'이라는 표현은 어딘지 매우 오만불손하지만, 저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갖는 분야와 키워드라는 의미에서, 저는 나밖에 못 내는 책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책의 출간과 동시에, 저는 저의 창업기를 브런치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었지만, 너무 정신이 없는 와중이라 진지한 성찰의 글은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리하여 창업한 멀리깊이의 모토는 이렇습니다.
(주)멀리깊이는
깊게 사유하는 에세이를 만듭니다.
함께 결단하는 인문서를 만듭니다.
멀리 성장하는 어학서를 만듭니다.
독자와 함께 멀리, 깊이 가는 책
어떻게, 제 각오가 느껴지시나요? 비록 경력단절에서 출발한 슬픈 창업이긴 하지만, 저로서는 제 인생 최고의 결단이자 결과물이 멀리깊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심정으로 정성스럽게, 각자의 개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제가 없이도 늠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무언가로 키우고 싶어요.
이후, 제 창업의 다짐들과 노력들을 이곳에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커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공동체에 꼭 필요한 출판사로 만드는 것이 제 목표이고, 그 공동체에 여러분들도 계시니까요.
같이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