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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늘 Aug 01. 2021

[출간 전 연재] 날마다 출판

작은 출판사 대표의 1년 생존기

출판사 창업 후 1년 생존기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1주년을 맞은 지난 6월, 제가 애정하는 출판사 교유당에 원고를 보냈습니다(오는 9월, 에세이 브랜드 '싱긋'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생애 첫 단행본 출간이자, 첫 창업 경험을 정리한 결과물이기에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한 기록입니다. 무엇보다 이 원고가 아니었다면 저의 창업이 제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 작디작은 출판사가 전체 지형에서 어떤 가치를 드러내는지, 앞으로 누구를 향하여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을 거예요. 얼마나 읽히는지에 상관없이 지난 1년을 정리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제 인생의 큰 성과인 도서입니다. 원고를 쓰면서 부유하던 온갖 상념을 걷어내고 450매로 정제한 원고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가졌던 확신은, '내가 책을 정말로 좋아하는구나'라는 것과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 성실하고 다정한 출판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력했다는 건 분명해요. 제 지난 1년의 몸부림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거든요.

다른 많은 작가님들처럼, 저 역시 '나 따위가 어떻게 출판에 관한 책을 쓸 수 있나' 저어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대단한 출판 전문가도 아니고, 엄청난 성과를 거둔 기업인도 아니니까 말이에요. 원고를 모두 완성한 후에도 성과를 내고 난 후에 다시 출간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출판 선배 한 분의 격려가 엄청난 힘이 되었습니다.

"제 주제에 책을 낸다니 너무 꼴값인 것 같아요"라고 민망해했더니,

"열심히 하는 게 뭐가 꼴값이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꼴값이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점잖은 척 아무것도 안 하는 꼴값을 피하기 위해 출간 전 연재라는 것도 해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의미는 개인적인 의미고, 책에 도움이 되는 건 다 해보고 싶어요. 제가 내야 하는 책도 눈알이 빠지게 만들고, 남의 출판사에서 나오는 내 책도 잘 되어야 의미가 더 크지 않겠어요?

미리 함께 읽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고마운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그럼 한 번, 들려드려 보겠습니다.





[프롤로그] 이 굴레와 족쇄를 기꺼이 감내하려는 당신들에게


원래 프롤로그의 제목은 ‘대자유를 찾아서’였다. 오래전, 내가 나온 대학의 소설 창작 수업에서 소설가인 교수와 소설가 지망생인 학생이 나눴다고 전해지는 대화로 서두를 시작한 글이었다. 그냥 지우기는 아쉬우니 다시 적어보자면 이렇다. 막 입학한 신입생들의 창작 수업에 들어간 소설가 교수가 “자넨 왜 이곳에 왔나?” 하고 묻자 지목당한 신입생이 “대자유유.”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뭐라고?” 다시 묻는 소설가의 물음에 신입생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대자유유. 대자유를 찾으러 왔슈.”

나도 여차저차 대자유를 찾기 위해 출판을 시작했노라고, 잔뜩 멋을 부린 출사표를 밝힐 요량이었다. ‘모든 자유가 그렇듯이, 두려워서 너무 달콤했다.’와 같이 강렬한 문장도 마지막에 배치해둔 참이었다. 그러나 원고를 모두 완성하고 난 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면서, 출판은 대자유일 수가 없다는 생각에 프롤로그를 모두 지워버렸다. 출판은 굴레고 족쇄다. 어쩌다 책이라는 덫에 빠져서 출판이라는 굴레에 빠진 우리에게, 출판사를 차려 명의자가 되었다는 것은 빠져나갈 수 없는 족쇄를 찼다는 말에 불과하다. 아마 이 글을 읽기 전 섣불리 작은 출판사의 대표가 되신 분 중 다수는 이달엔 어디서 돈을 구해야 하나 고민하고 계실 것이다. 돈보다는 가치를 보고 일한다는 번지르르한 말을 내뱉을 때마다 실은 그게 아니어서 속이 화끈거리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그렇다. 일단 책을 내놨다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독자들이 줄을 서서 책을 사갈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에게 고기도 사고 성대한 저자 강연회도 열고 얼마 안 가 차도 뽑고 들어온 떼돈으로 잘하면 사옥도 지을 줄 알았는데, 저절로 팔리는 책 덕분에 여유롭게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아이들과 좋은 데도 놀러 다니고 경치 좋은 곳에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제법 쓸 줄 알았는데, 지난 1년 동안 내가 한 일을 두 가지로 압축해보자면 딱 이렇다. 죽어라고 일한 거. 이번 달에 또 앵꼬 나면 어쩌나 걱정한 거. 그러니 미리 말씀드리지만 돈 벌려고 출판사 대표를 시작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일단 그 마음을 집어삼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여유롭게 내 생활 누리며 출판사 대표라는 낭만적인 직함을 유지하고 싶은 분들께도 당부드리지만 출판사 대표는 한 조직의 장(長)이 아니다. 스스로 찬 족쇄의 결과로 끊임없이 책을 만들고 팔아야 하는 노예다. 내 비루한 실력 때문에 이런 자조적인 상황 진단을 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어려웠구나, 싶은 생각에 가련한 나를 한 번 꼭 안아주고픈 마음이 드실 것이다.

이 책은 일단 시작했다 하면 그지(왠지 너무 분명해서 ‘거지’라고 적고 싶지가 않다)가 될 확률이 높은 대표적 사양산업에 뛰어들어 1년을 버텨낸 기록이다. 힘들었고, 힘들었고, 음… 힘들었다. 얼핏 봐도 힘들겠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왜 이렇게 힘든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찬 족쇄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낄 것도 분명하다. 살면서 이 이상의 의미를 구현해낸 적이 있었던가, 남편 만나고 아이들 낳은 것을 제외하면 이토록 행복감에 넘치는 일을 해본 기억이 없다.


나는 2007년 11월, 당시 100명가량의 직원이 근무하던 첫 회사 어학팀에 편집자로 입사해 2년 7개월을 근무했고, 퇴사하는 주의 일요일까지 노예처럼 일하다가 2010년 4월 1일 비슷한 규모의 두 번째 출판사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10년을 일하면서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 인문교양서를 만들었다. 필요하면 어학서도 만들고 아동학습서도 만들고 과학일반 도서도 만들었다. 다시 말해, 돈이 된다 싶은 책은 모두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발 빠른 기획자가 해야 하는 역할들을 학습하기도 했고, 전문 분야에 대해 아는 지식이 없는 채로 담당도서를 편집하려면 어떤 방식의 학습을 해야 하고 어떻게 저자와 소통해야 하는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효율적인 정보의 징검다리가 되려면 무엇을 채워놔야 하는지를 익혔다. 어떤 책에 대해서는 속절없이 무능했고, 어떤 책에서는 저자도 인정할 정도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사이 시장은 점점 악화했다. 사는 사람이 줄어드는 시장에서 팔려는 사람은 넘쳐나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만든 책이 독자에게 읽히기 위한 것인지, 서점에 밀어내서 당장의 매출을 끌어당기기 위한 것인지 목적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주간회의 때마다, 월례회의 때마다, 모든 기획회의와 편집회의에서 결론은 모두 매출로 이어졌다. 매출을 맞춰야 하니 종수를 채워라, 일하던 직원이 나가면 남은 직원이 메꾸고, 사람을 뽑았으면 그만큼 책도 더 내라. 온통 매출이었다.

2020년 3월 퇴사할 때엔 그야말로 책 만드는 일에 대한 환멸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이 키우는 문제와 이런저런 회사 내 갈등이 문제였으나 내면에는 매출 목표를 채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찍어낸 책이 독자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에 대한 엄청난 좌절감과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회의감은 왜 책이 이대로 죽도록 손 놓고 보고만 있는가 하는 원망으로 이어졌고, 마치 내가 책을 사랑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누군가인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을 비난하고 다녔다.

회사를 나온 직후엔 아이들과 좀 한가롭게 쉬면서, 그동안 못 했던 것 하며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해보려고 했다. 일찌감치 뉴욕행 티켓도 끊어둔 차였다. 아이와 가서, 미술관과 공원과 브로드웨이와 온갖 카페들을 돌아다닐 참이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들이닥쳤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동이 트기도 했고, 여러 강연이나 기사를 찾아보며 ‘이분은 나중에 이런 글을 쓰시면 좋겠다.’ 혼자 생각했다.


한 권 책에는 한 개의 정교한 세계가 있다. 차례라는 지도를 통해 우리는 그 세계가 지닌 외연의 체계성을 확인할 수 있고, 문장을 따라가며 그 세계의 온갖 사물과 풍경, 정취를 경험할 수 있다. 종이라는 한계야말로 책이 지닌 가장 역동적인 가능성이다. 한 줄 세계의 위치를, 손으로 가리켜 짚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기록과 기억의 행위인가. 따라서 책은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장 체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매체인 동시에 듣고자 하는 욕망을 가장 제약 없이 충족시키는 수단이다. 인간은 보고 듣고 말하고 난 뒤에는 그걸 어딘가에 정리해야 하는 존재다. 그 정리의 결과이자, 가장 확실한 전달수단이라는 것이 책의 진가다. 진심으로 조언하고 현명하게 제안하고 대책 없이 웃게 만들며 종국엔 철학 하게 하는 그 많은 책은 작게는 마음을 위로하고 크게는 현실이라는 시궁창을 탈출할 원동력을 제공한다. 그런 귀한 책을 만들면서 나는 왜 그토록 깊은 허무에 빠졌던 걸까. 하루 이틀 쉬는 날이 길어지면서, 나는 책이라는 의미구조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 넌 우리가 만든 걸 읽으면 돼. 더는 네가 필요 없으니까.’ 내가 처한 상황이 내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책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장강명 작가는 그의 책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존 스튜어트 밀 선생님도 그의 책 《자유론》에서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his own mode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책을 만들지 못해서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고 느끼고 있다면, 나는 최선으로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내 방식대로’ 살아가려면 적어도 책을 만드는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했다.  


창업을 하고 보니, 매출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작은 출판사가 큰 출판사에 비해 이 매출을 창출하는 데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큰 출판사에서는 도저히 못 하는 일들을 작은 출판사는 해낼 수 있다. 내가 만드는 책의 목록을 오롯이 내가 결정할 수 있고, 작은 출판사에 원고를 맡긴 신의 있는 저자들과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으며, 내가 지향하는 바 책이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의미를 얼마든지 구현해낼 수 있다. 다시 말해, 남이 내라는 책 말고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나를 신뢰하는 저자들과,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대형출판사처럼 큰 매출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획과 편집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안정적인 월급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러다 독자를 제대로 설득하는 책 한 권이 터지면, 그야말로 출판인생이 역전된다. 아마 많은 수가 이 출판인생 역전을 위해 작은 출판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지’가 된다.

이 풍전등화의 세계에서 단 하나 기댈 수 있는 지표는, 독자는 현명하다는 것이다. 책을 만들어보면 안다. 시의적절하고, 알차고, 유용하고, 감동적인 책은 팔린다. 엄청나게 팔리지는 않지만 안 팔릴 수도 없다. 그리고 이런 책은 이미 기획 단계에서 갈린다. 후술하겠지만, 작은 출판사의 유일한 무기는 기획력이다. 기획 감각을 가진 분들은 독자들에게 돈쭐이 날 것이고, 아니라면 미안하지만 ‘그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획이라는 무기를 중심으로 작은 출판사의 성장 동력을 살펴본다. 적은 분량의 에세이이기 때문에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단순한 실무 전달보다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내용을 기술하려 애썼다. 선후배 출판인들이 저술한 책과 인터뷰도 다수 참고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영업·관리 부분에 관해서는 오랜 기간 내가 속한 회사의 부서장으로 계셨던 대표님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강했다. 그리고 멀리깊이의 1년 성과도 가감 없이 표로 싣는다. 보시고 과연 뛰어들 만한 시장인지를, 직접 판단하셨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뛰어들겠다 마음먹는 용자들께는 기꺼이 지지와 연대의 따봉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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