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집 사서 대출받은 썰)
출간될 원고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나의 창업자금이 어디서 왔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듣는 사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이야기로, 압축하자면 집 산 썰이다. 창업의 '창'자도 생각하지 않던 시절, 우연히 사둔 집값이 두 배로 오른 덕분에 대출 한도가 늘어나 창업자금을 끌어올 수 있었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집이야말로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자대상이 아니라,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나다운 가치관이 반영되어야 하는 곳으로, 집이 투자대상이 되는 순간 그 삶은 지옥이 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 번, 집값 수혜를 톡톡히 보았다.
사건은 2018년 부동산 광풍이 불기 불과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장 근처 애 키우기 좋은 곳으로 고르고 골라 이사 온 단지에서, 아이 둘 알콩달콩 키우고 있던 와중이었다. 살던 동네는 1기 신도시 개발 계획이 마을 구획에서도 철저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는데, 블록 외부를 따라 아파트형 빌라 단지가 포진해 있고 그 내부에 학교와 편의시절, 단독주택들이 빼곡히 차 있는 구조였다. 시공된 지 30년이 가까운 단지였음에도 지상으로 차가 다니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고, 단지보다 더 오랜 나무들이 봄, 여름, 가을 내내 울창한 곳이었기 때문에 은퇴한 어르신들은 물론 어린아이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입주한 지 3년 차가 될 무렵 동네에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부터 성범죄 알림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딸아이 키우는 엄마에게 성범죄 알림 우편물보다 무서운 것이 어디 있을까. 몇 달 간격으로 우편물이 날아들자 주변 환경을 더 예민하게 주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놀이터에서 소주팩 옆에 두고 멍하니 애들을 쳐다보고 있는 중년 남성이 보이는가 하면, 벌건 대낮부터 헐렁한 나시 차림으로 편의점 의자에서 고주망태가 된 이들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장면도 목격되기 시작했다. 밤 시간에는 아예 야외 탁자와 의자를 접어두고 야간 음주를 금한다는 안내문까지 붙여둔 편의점 사장님이 내게 여력 되면 얼른 이사 가라는 조언을 한 적도 있었다. 아이 복지카드를 들고 와 술과 안주를 사가는 집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나는 동네 분위기 운운하며 학군이니 집값이니 떠드는 사람을 얼마나 혐오했던가. 그러나 애가 크고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류였다. 진지하게 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큰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엄마들끼리 밥을 먹기로 했는데 나올 수 있으면 나오라는 거였다. 워킹맘인 내가 아이 챙기기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준 모임이어서 나는 흔쾌히 알겠노라고 말하고 점심 자리엘 나갔다. 신나게 이것저것 시켜 먹고 있는데 한 엄마 입에서 최근 분양을 마친 단지 이야기가 나왔다. 이상하게 분양가가 싸게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혁신초등학교가 코앞이고 근처 유명한 학군에 위치한 학원 셔틀이 오고 가기 편한 위치에 있다는 것, 근 20년 동안 대규모 신축 아파트가 없었던 지역 분위기를 생각하면 저 정도 분양가에 거래된 게 이상하다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거론된 혁신초등학교로 부임하는 교장선생님이 타 지역의 유명 혁신초에 있던 분으로, 그분이 오신다면 학교의 분위기도 무척 좋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언감생심 투자는 물론이고 하다 못해 최저가 검색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다. 최저가 찾는 시간에 하고 싶은 거 하나라도 더 하자는 주의다. 그러니 학군이 어쩌니 단지 분양가가 어쩌니 하는 데 관심조차 둬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엄마가 하는 얘기는 모두 일리가 있었다. 그게 맞다면 말이다. 나는 이상하게 거기엘 가보고 싶어서 모두 안녕 안녕 먼저 들어가 보겠다 인사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운전해서 바로 고 신축단지엘 도착했다. 말 나온 혁신초등학교에서 출발해 1km 남짓한 단지 한 바퀴를 쓱 돌아봤다. 오래된 주변 단지들보다 지대도 높아 저층엘 들어간다고 해도 굳이 걸리적 거릴 것이 없어 보였다. 단지 바로 앞에 해당 단지명으로 상호명을 지은 부동산이 있어 들어갔다. 혁신초등학교 쪽으로 남은 물량이 있는지 물어보니, 마침 한 집이 집을 내놔 초등학교를 바로 마주 보고 있는 동에 물량 하나가 남아 있다고 했다. 그 집은 왜 계약을 취소했는지 물었더니, 나이 든 노모가 부산서 목사님을 하는 아들의 집을 사준 것인데, 경기도로 부임하기로 한 아들의 사역지가 변경되어 집을 내놨다고 했다. 급하게 내놓은 집이라 흔히 피라고 부르는 프리미엄이 이상하게 낮았다. 거기가 몇 동 몇 호인지를 물어 다시 차를 타고 나왔다. 단지 바깥 도로에 깜빡이를 켜 두고 한 층 한 층 손으로 가리켜 해당 호수를 봤더니 오후 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말짱하게 해가 들고 있었다. 동남향이었다.
그 길로 회사로 복귀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반차를 쓸 수 있는지 물었다. 부동산에도 내일 오후에 방문할 예정이니 그 전에라도 해당 계약건 문의를 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게 먼저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남편에게 이런저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음 날 함께 집을 보고 그 자리에서 각자의 마이너스 통장까지를 탈탈 털어 1,500만 원의 계약금을 마련했다. 하루 반 만에 집을 계약한 것이다.
계약 후 불과 일주일이 지나자 이제까지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싶게 무서운 속도로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한 달쯤 뒤 점심 모임을 했던 엄마 멤버들 고대로 다시 한번 주말 방방이 모임을 했는데, 다들 곧 배정받을 초등학교 이야기로 이야기꽃이 만발이었다. 그렇게 떠들기 좋아하는 내가 한마디도 안 하고 방실 웃으며 듣고만 있자 촉이 좋은 엄마 하나가 "아니, 자기는 왜 말이 없어?" 물어왔다. 나는 겸연쩍게 말했다. "저 이사 가요."
그랬다. 그 덕에 책 만들 돈을 땡길 수 있었다. 아마 그때 했던 선택이 아니었다면, 창업자금은 어디서 어떻게 마련했을라나 모르겠다. 써놓고 보니 갭 투자 조장하는 글이 아닌가 좀 조심스러워지기는 하지만, 갭 투자라는 걸 해볼래야 해볼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거니와 원래 사람 사는 게 그런 거 아닌가. 되려다가도 안 되고 될 생각이 없었지만 되기도 하는 그런 속성 말이다.
어쨌든 조회수 좀 올려보려고 쓴 창업자금 땡긴 썰은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창업하고 1년을 겪어보니, 돈은 얼마가 있어도 부족하다. 그러나 나에게 진짜 부족했던 건 돈이 아니라 돈이 잘 돌도록 운용하는 능력이 아니었던가 반성하게 된다. 남아 있는 잔고만 믿고 신나게 이 책 저 책 판권 사들이던 시기가 있었는데, 고렇게 사들인 판권 덕분에 책 매출이 신나게 나고 있을 와중에도 잔고가 항상 부족했다. 너 너무 판권 내지르는 것 같다 권고를 몇 번 받았음에도 말이다. 창업자금이 얼마여야 안정적인가는 그야말로 운용하기 나름이다. 얼마로 시작하든, 싸게 사서 비싸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 생리를 망각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시길. 어떻게 마무리를 하더라도 돈 얘기를 해놓고 보니 껄끄럽다. 아무래도 이 글은 조만간 삭제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