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려 있을 수 있겠어?

1. 아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by 박구사


재석이 형이 매달려있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젠 도저히 못 버티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할 일이 많다. 우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튼다. 장갑 낀 손으로 모자를 눌러쓴다. 쪼그려 앉아서 무릎 보호대를 감는다. 가방에 작은 덤벨들을 담아 앞으로 메고 큰 덤벨은 양손에 든다. 준비를 끝내면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체육관에 가기 힘든 날은 이런 것들을 준비해서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대략 20kg 정도를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는데 심폐지구력과 코어 및 하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하고 나면 숨차고 허리 아프고 다리가 후들거리니까 거기가 운동이 되나 보다 하는 거지.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계단 오르기는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이 꼭대기층이라 시작했다. 계단 끝에 집이 있으니 운동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씻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이 집의 장점은 그 밖에도 많은데 일단 층간 소음과 벌레가 없고 환기가 잘된다. 그리고 날아가는 새들의 등을 볼 수 있다. 가끔씩 새들이 낮게 날면 새들의 등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게 너무 신기했다. 세상에, 새들의 등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집이라니. 7년 전 서울에서 살던 집은 지금 전셋집 보다도 비쌌는데 창문 밖 풍경은 비교도 안된다. 낡은 창문 밖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뒤엉킨 전선들과 고추장 색깔 벽돌로 꽉 차 있었다. 창문을 열면 멀쩡하던 가슴도 갑갑해질 지경이라 환기할 때는 차라리 현관문을 열곤 했다.


보통 한 번에 100층 정도를 오른다. 우리 집은 20층이니까 지하주차장에서 집까지 5번 오르면 된다. 내려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쉬는데 중간중간 멈출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조금 더 쉬려고 닫힘 버튼도 누르지 않는다.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딩동!' 하고 멈추면 속으로만 '아싸!' 하고 외친다. 육성으로 외쳤다가 타려던 이웃을 깜짝 놀라게 한 뒤로 조심하고 있다. 그 이웃은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물러났다. 이해해요. 나라도 문이 열렸는데 웬 땀을 뚝뚝 흘리며 덤벨을 든 사람이 아싸! 하면 타기 싫을 거예요. 이 자릴 빌려 다시 사과드립니다. 죄송해요. 덕분에 내려갈 때 사람이 타면 엘리베이터 구석에 최대한 쭈그리고 있는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시골에 있어서 계단에는 세발자전거부터 감자 박스, 고춧대, 비료포대, 신문더미 등이 층마다 벽에 기대어 쌓여있다. 그럼 반대편인 난간이 있는 쪽으로 올라가야겠다 싶겠지만 모르시는 말씀! 나는 계단을 올라갈 때 왼쪽 난간이 아니라 오른쪽 벽에 붙어서 오른다. 팔꿈치나 덤벨이 벽에 닿을 정도로 최대한 바깥으로.

난간 쪽에 붙어서 올라가면 회전 반경이 작아져서 왼쪽 발목이 아프기 쉽다. 벽에 붙어서 오르면 발목에 무리도 없고 한 층당 대여섯 걸음을 더 걸을 수 있다. 이렇게 계단 오르기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가 이걸 좋아서 하는 줄 안다. 천만의 말씀! 단단히 착각한 거다.


계단 오르기도 내가 먹고살려고 하는 하기 싫은 일 중에 하나다. 매번 하기 싫어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층수가 보이면 일부러 눈을 돌린다. 층수를 세면서 오르면 더 힘드니까. 근데 신기하게도 참고 참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고개를 들면 맨날 9층이다. 더 못할 것 같은데 절반은커녕 아직 91층이나 남아있다. 마치 월요일에 출근해서 꾹꾹 참다가 시계를 슬쩍 봤더니 아직도 9시 55분인 느낌. 그때부터는 더 하기 싫어진다. 이어폰 볼륨을 올리고 본격적으로 땀을 쏟는 것도 그때부터다.


정신없이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땀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려서 양말까지 축축해진다. 어깨와 허리가 뻐근하고 계단 경사는 괜히 점점 더 높아지는 것 같다. 그때쯤이면 매번 화가 치밀고 이런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도 하기 싫은 걸 해야 하고, 집에서도 하기 싫은 걸 해야 하다니. 누구야, 삶을 이렇게 설계한 놈이? 누군가 삶은 여행이라고 했다는데. 이제 난 못 버티겠어. 삶이 진짜 여행이라면 좀 평탄한 길도 나오고 해야지! 어떻게 참고 버틸수록 길이 가팔라지는 거야? 내 앞에 놓인 길만 그래? 이제 난 하루하루가 비탈길을 올라가는 게 아니라 절벽에 간신히 매달려있는 것 같아! '


평소보다 유난히 더 힘들던 날. 노래를 들어도 힘이 나질 않았다. 지하 1층 계단을 5번째로 밟기 전에 유튜브에서 <무한도전> 스키점프대 편을 틀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영상 속 형님들을 여전했다. 나는 못 본 사이 꽤 나이를 먹었는데.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들리자 괜히 여럿이 함께 오르는 것 같아서 힘이 났다. 손가락을 쭉 움직여 영상을 후반부쯤부터 재생시켰다. 사실 어디서 재생시켜도 상관없다. 이미 내용은 다 알고 있으니까.


스키점프대에 오르는 미션에서 뒤처져있던 명수 형, 준하 형이 멤버들의 도움으로 정상에 오른다. 이제 길이 형만 남은 상황. 줄 끝에 매달린 재석이 형이 점프대 중간쯤 온 길이형 쪽으로 발을 쭉 뻗는다. 닿질 않는다. 길이 형이 네댓 걸음은 더 올라와야 한다. 그렇지만 길이 형은 이미 너무 많이 미끄러졌다. 너무 많이 미끄러진 사람은 어느 순간 일어날 수 없게 된다. 길이 형은 할 수 있다고 외치는 멤버들에게 대꾸도 제대로 못할 만큼 약해져 있다. 미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길이 형은 포기하고 싶지만 손을 놓을 수도 없다. 그저 스키 점프대에 박아 넣은 아이스 픽에 간신히 매달려 바들바들 떤다.


그때 재석이 형이 묻는다. '너 매달려 있을 수 있겠어?' 길이 형은 대답을 못했지만 재석이 형은 재차 묻는다. '너 매달려 있을 수 있겠어? 확실히 이야기해봐, 너 매달려 있을 수 있지?' 길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재석이 형이 이야기한다. '조금만 매달려있어. 형이 내려갔다 올게.' 그리고 줄을 놓고 스키점프대 아래로 내려간다. 완전히 바닥까지 다시 내려온 재석이 형은 몸을 추슬러 다시 길이 형이 있는 곳까지 올라와 말한다.


'다 왔는데 포기하기 너무 아깝잖아.'


재석이 형이 밑에서 발판이 되어 길이 형을 밀어 올린다. 이제 길이 형은 줄 끝에 거의 닿을 것 같다. 그렇지만 손을 뻗어서 잡기에는 아직도 줄이 조금 모자라다. 재석이 형이 다시 줄에 매달려 줄 대신 발을 뻗고 자기 발을 잡고 올라오라고 길이 형에게 소리친다. 길이 형은 자신 없는 표정으로 그러다 형까지 미끄러진다며 손을 뻗지 못한다. 계속 주저하는 길이 형에게 재석이 형이 소리친다.


'너 왜 이렇게 사람 못 믿어!'


잠시 헉헉대는 숨소리만 들리다 결국 길이 형이 재석이 형의 발을 잡고 올라간다. 나란히 줄 끝을 잡은 두 사람은 서로를 일으켜 세우고 마침내 나란히 스키점프대 정상에 오른다.


재석이 형이 매달려있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젠 도저히 못 버티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앞에 남은 계단도 까마득했고 준비할 틈 없이 코앞에 디밀어지는 삶들도 내겐 너무 가팔랐다.


'두꺼운 고지서, 얇은 적금, 받을 날이 있을지 의심스러운 보험료, 아버지의 두 번째 수술, 끝나기 무섭게 생기는 약속들, 떠넘겨진 업무, 마시기 싫은 술, 맞장구치기 싫은 농담에 억지로 웃는 시간들.'


이런 것들이 하루하루 쌓일수록 내 삶의 비탈길은 점점 가팔라져 갔다. 비탈길이 가팔라지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웃게 하는 것들은 저 멀리 굴러내려 갔다. 그동안 아무도 내게 매달려 있을 수 있겠냐고 묻지 않았다. 다들 그냥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일까. 하긴 각자 버티는 것 빼고 뭐 뾰족한 방법이 있으랴. 주변에 물어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런 이야길 술자리에서 했다간 술맛 떨어진다는 소릴 듣기 십상이다.


'다들 힘들게 버티고 있잖아, 징징거리지 마! 바보짓하지 마! 허무맹랑한 소리 하지 마! 너 힘들 때 누가 도와줄 거 같아? 천만에, 등 뒤에 칼이나 꽂지 않으면 다행이야. 너 혼자 이겨내야지. 못버티 겠으면 비켜. 손 딱 놔. 뭐 놓으면 넌 끝장이지만.'


세상은 이런 무서운 말들로 가득했다. 맞아. 그래서 나는 <무한도전>을 사랑했다. 저런 차갑고 서글픈 말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런 말을 하곤 했으니까.


'조금만 매달려있어, 형이 내려갔다 올게.'


재석이 형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눈보라를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묵묵히 다시 올라와 길이 형 옆에 섰다. 너무 많이 미끄러진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 없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옆에 와준 사람이 손을 내밀면 기적이 일어난다.


동생이 최종 불합격했던 봄. 동생은 수화기 너머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울었다. 춘천에서 평창까지는 120km가 떨어져 있었지만 나까지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였다. 옆에서 지켜본 동생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기에 당연히 붙을 거라고 믿었는데. 충격이었다.


우리 남매는 같은 직렬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내가 먼저 회사에 다니던 동생을 꼬셨다. 내가 얼른 합격해서 도와줄 테니 같이 해보자고. 내가 2년 앞서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동생은 내 책과 문제집, 암기노트와 볼펜까지 물려받았다. 동생은 그걸 한자도 빠지지 않고 모조리 흡수했다. 그렇지만 합격선은 불과 2년 사이 5점 이상 올라서 내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점수까지 갔다. 내가 받아본 적 없는 점수는 내가 공부한 방법으로는 닿을 수 없었다.


동생은 울고 있었지만 나는 더 조언해줄 게 없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우리는 이제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내년에는 점수가 더 오를 것이다. 긴 수험생활은 삶을 갈수록 가파르게 만들어 나중에는 벼랑이 된다. 거의 다 왔다 싶었을 때 미끄러진 동생은 다시 올라가기는커녕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려있었다.


동생을 다시 일으켜 세울 방법은 몰랐다. 그렇지만 최소한 내가 그 옆에 있어야 한다는 건 알았다. 내가 이미 합격을 했건 직장을 다니건 상관없었다. 사무실과 동생집이 한 시간 반 떨어져 있어도, 어리바리한 신입이라며 상사가 끔찍하게 괴롭혀도,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매일 실수하고 매일 내가 싫어져도. 나도 다시 수험생활로 돌아가야 했다. 동생이 지금 일어나지 못한다면, 하다못해 옆에는 있어줘야 했다. 다시 일어날 때 나를 붙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그게 1년이든 2년이든 간에.


곧바로 춘천에 동생과 살 집을 얻었다. 관사 생활하던 평창에서 춘천까지 수시로 왕복했다. 늦은 밤에는 동생의 가방을 뺏어 들고 집까지 함께 걸었다. 같이 과일을 깎아먹고, 발등에 햇살을 쬐고, 구봉산에서 야경을 봤다. 오래된 의자가 있는 카페에 앉아서 더 오래된 음악을 들었다.

동생은 다시 펜을 잡았지만 여전히 내 조언은 필요 없었다. 내가 받아본 적 없는 점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일어선 동생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부했다. 울음을 참아가며 공부하던 나와 달랐다. 동생은 도서관이든 식당이든 울음이 터지면 울면서 공부하고 밥을 먹었다. 언젠가 길에서 엉엉 울면서 노트를 보며 걷는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다면 그건 내 동생일지도 모른다. 동생은 매일 밤 자기 전에 그날 공부한 내용을 녹음했다. '여기 중요한 부분이니까 기억해. 이건 머릿속에 그림을 떠올려.' 하며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는 걸 녹음했다. 가끔씩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음은 분명히 학교종이 땡땡땡인데 가사가 특이했다. '호광성 상추 담배 우엉 차조기 금어초 피튜니아 뽕나무 샐러'. 나중에 물어보니 빛을 좋아하는 채소들의 종류라고 했다. 동생이 샤워할 때면 문 밖으로 물소리 대신 채소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동생은 눈이 글자를 보고 있지 않을 때면 항상 녹음한 걸 들었다. 시험 직전에는 귀에서 진물이 나왔다.


그리고 같은 해 겨울. 동생은 평균 100점으로 합격했다.


살면서 우리는 재석이 형이 되기도, 길이 형이 되기도 한다. 손을 내밀거나 잡기도 하고 쓰러진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거나 기대어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이 특집을 처음 봤을 때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가며 삶의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정말 몸살 나게 재석이 형처럼 되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듬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삶의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린 동생을 앞에 두고 '다들 힘든데 징징거리지 마. 나도 힘들어' 같은 소릴 하는 사람은 되기 싫었다.


그래서 손을 뻗었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형들은 모두 스키점프대에 올라가고 영상은 끝났지만 내 앞에는 가파른 계단이 남아 있었다. 내일도 모래도 언제나 그럴 것이다. 뭐 어쩌겠는가. 오르는 수밖에. 그렇지만 다리는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삶의 비탈길에 매달린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일어서는 모습은 여러 번 봐도 좋다.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힘이 난다.


그래. 나는 이 맛에 아직도 <무한도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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