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골목 단밤 전쟁

2. 아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by 박구사


집에 가는 내내 30만 원짜리 기계로 250만 원짜리 기계를 이길 방법을 떠올렸다.

아버지. 순순히 계열사를... 아니, 단밤 마차를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장사를 해본 적이 있으신지? 지금은 공노비가 되어 월급을 받고 있지만 나는 사회 첫발을 노점상부터 시작해서 오랜 시간 무언가를 팔면서 돈을 벌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월급과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것은 몇 가지 차이가 있었다.


첫째, 장사는 실력이 돈으로 바로 확인된다. 월급을 받을 때는 내 능력이 맞은편에 앉은 동기보다 더 뛰어나거나 모자라도 월급은 비슷하다. 누가 승진을 하지 않는 이상 버는 돈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장사는 실력의 차이가 바로 돈으로 비교된다. 같은 물건을 팔아도 화술과 수완에 따라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적게 벌거나 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당일 저녁 돈 통에 쌓인 돈을 세거나, 빈 통에 쌓인 먼지를 터는 것으로 확인된다.

둘째, 장사는 시간이 곧 돈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시간은 돈이지만 보통 월급쟁이는 주말에 쉰다고 월급이 깎이지 않는다. 장사는 다르다. 한 달에 22일 일하는 것보다 26일, 30일을 일하는 게 보통 매출이 더 높다. 남들이 쉬는 날의 매출이 대게 평일보다 높기 때문에 남들이 일할 때도 일하고, 쉴 때도 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장사에는 병가가 없다. 나랑 같은 상품을 파는 사람은 또 있기 마련이고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을 파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래서 그날 벌 수 있었던 돈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만 쉴 수 있다. 월급쟁이와 장사 둘 다 해본 사람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몸이나 마음이 아파도 움직이는 버릇이 든 사람은 장사꾼들이 많았다. 일단 나부터가 상처가 아물지 않았어도 몸을 움직이는 버릇을 들인 때는 노점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셋째, 장사는 진입장벽이 낮다. 가지고 있는 돈에 따라 노점상이든 매장이든 차려서 장사를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괜히 월급쟁이들이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하는 말을 달고 사는 게 아니다. 비슷한 말로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도 있다. 아무튼, 장사는 누구나 언제든 시작할 순 있지만, 위에 언급한 대로 실력이 필요하고, 쉴 틈 없이 일해야 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초보자가 쉬는 날도 반납하고 실력을 쌓으면서 버텨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장사에 쉽게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많다. 장사는 잘하기는 어렵고 오래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말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간혹, 이렇게 어려운 장사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천성이 낯을 안 가리고 넉살 좋게 말을 잘하며 유머 있고 꼼꼼하면서도 실행력을 갖춘 사람. <무한도전>에서 꼽아보자면 홍철이 형이다.


<무한도전> 초창기 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홍철이 형이었다. 물론 나중에 재석이 형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바뀌기는 했지만. 사실 홍철이 형은 <무한도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규격 외의 새로운 캐릭터였다. 케이블 방송에서 '닥터 노'로 활동했던 시절부터 빠른 말과 특이한 손동작, 생김새까지 뭐하나 기존에 방송인들과 닮은 점이 없었다. 군대에서 처음 홍철이 형이 티브이에 나왔을 때 내무반의 모든 사람이 넋을 놓고 봤었다. 여자 아이돌이 아니면 단숨에 채널을 돌리던 군인들도 이 새로운 캐릭터에 관심을 보일 정도로 신선했다.


나는 그 특이한 캐릭터에서 무언가 냄새를 맡았다. 뭔가 특이한 이력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홍철이 형은 대학생 신분으로 홍철 투어라는 걸출한 회사를 운영했었고 의류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었다. 도저히 지치지 않는 것 같은 특유의 에너지로 무박 2일 중국 짝퉁 시장 도깨비 투어 같은 특이한 패키지를 이끌었고, 반짝이가 가득 붙어서 입으면 움직이는 미러볼이 되는 옷을 파는 수완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좀 괴상하고 하찮아 보여도 거기에 특유의 에너지와 재미를 더해서 즐겁게 장사하는 일류 장사꾼의 마인드가 엿보였다. 바로 직감했다.


'이 사람이 내 롤모델이다.'


당시 나는 노점을 차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역을 앞두고 당장 내 병원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등록금이나 아끼자는 생각으로 대학은 시원하게 자퇴한 상태였다. 어차피 장사하기로 한 이상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홍철이 형은 딱 맞는 타이밍에 찾아온 롤모델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우스워 보이는 일을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모두 즐거울 수 있게 장사하는 태도와 센스는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내무반과 말년 휴가 나오는 버스 안에서 틈틈이 홍철이 형을 떠올리며 말투와 행동을 연구했고 제대한 바로 다음 날부터 노점을 시작했다. 재래시장 골목 횡단보도 옆에 자리를 잡고 단밤을 팔았다. 시장에는 이미 다른 간식거리를 파는 장사꾼이 많았고, 성공하려면 차별화가 필요했다. 궁리 끝에 나름 유니폼을 만들었다. 통이 넓은 군복 바지에 흰색 수건을 머리에 두건처럼 썼다. 목에 헤드셋을 끼고 틈틈이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골목 끝 분수대에 앉아있던 사람이 놀라서 물에 빠질 정도(실제 있었던 일)로 목청도 컸다.


"자아, 단밤 사세요! 한 봉지 삼천 원, 두 봉지 오천 원입니다!"


나는 장사를 하면서 주요 타깃을 여성으로 잡았다.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신호가 바뀌어 건너오는 손님 중에 여성분들이 보이면 단밤을 건네며 홍철 형님 흉내를 냈었다. 속사포처럼 단밤이 피부미용부터 다이어트까지 다 좋다고 손짓 발짓하며 떠들었다. 손님들이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이미 다들 손에 단밤 봉지를 들고 있었다. 한동안 이 전략을 사용하다가 나는 진짜 VIP 고객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바로 꼬마 손님들. 엄마 손을 잡고 가는 꼬마들에게 몇 알씩 단밤을 건네면 저만치 갔다가 눈가에 눈물을 달고 엄마한테 안겨서 단밤을 사러 왔다.


“아휴, 애가 사달라고 떼를 써서요. 두 봉지 주세요.”


전략이 먹히자 나는 꼬마 손님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노점 마차에 다람쥐 통을 달아놨다. 단밤을 사서 다람쥐에게 먹이고 싶어 하는 꼬마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안타깝게도 다람쥐와는 금세 작별해야 했다. 몰려드는 손님들에 비해 다람쥐는 너무 작아서 단밤을 먹다 남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람쥐가 단밤을 먹지 않으면 꼬마 손님들이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곤란했다. 거기다 냄새와 관리도 어려웠기 때문에 별수 없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츰 장사 수완을 길러갔다.


이런 장사 수완도 성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나는 장사 초기에 거의 경건함에 가까운 태도로 장사를 대했는데, 하품하는 걸 손님들이 볼까 봐 노점 마차 안에 얼굴을 넣은 다음에 하품했었다. 물론 1년쯤 지나서는 그냥 쩍쩍 하품했지만, 아무튼 처음에는 그랬다. 근무일은 첫날부터 그만둘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추석이든 설날이든 생일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장사했다. 병원 진료를 받는 날이 아니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사했고, 왼손이 단밤 굽는 기계에 빨려 들어가 17 바늘을 꿰매고도 그날 장사는 마무리했다. 장사를 열심히 할수록 매출도 오르고 주변에서도 칭찬해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주변 노점상들의 견제와 질투가 끊이질 않았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럴 수가! 그 견제와 질투에 내 아버지가 포함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우리 부모님은 시장에서 오랫동안 과일과 야채를 파는 노점을 하셨다. 내가 노점을 시작했던 것도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처음에는 극구 반대하셨지만 결국 승낙하셨고 나는 부모님이 장사하는 곳 부근에서 노점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오랜 시간 시장에서 일하신 탓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분들의 배려 덕분에 수월하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저 몇 달 하고 그만두겠거니 했던 총각이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시장에 나와 손님들을 쓸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른 노점상들도 단밤을 팔기 시작했지만 나는 기존에 만들어둔 단골들과 성실함을 무기로 경쟁자들을 저만치 따돌렸다. 그렇게 매일 손님들을 줄 세우며 다람쥐 왕국도 먹여 살릴 만큼 단밤을 팔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

“단밤 기계를 시켰다.”


“네? 지금 있는 기계로도 충분한데요? 지금도 손님들이 몰리면 줄을 서서 기다리긴 하지만 기계를 더 사야 할 정도는 아니에요.”

“아니, 그건 내가 쓸 거야. 그러니까 너는 다른 곳에 가서 장사하도록 해라.”

나는 처음에 아버지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다음날 진짜 단밤 기계가 도착했다. 동네 공업사에서 30만 원을 주고 만든 내 기계와는 달리 단밤이 구워지는 모습이 보이도록 전면 통창이 달린, 심지어 내부에 조명과 음악까지 나오는 250만 원짜리 기계였다. 그 기계를 내가 장사를 하던 자리에 설치하면서 아버지는 다른 곳에 가보라고 나를 쫓아냈다. 아버지는 쫓아낸 게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쫓아낸 거였다. 충격과 혼란 때문에 머릿속에서 수많은 자아가 소릴 질렀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더니? 아버지까지 나를 질투할 줄이야! 이게 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인가? 아니, 그건 아들이 아버지를 질투하는 건데? 지금 그게 오이디푸스든 오이소박이든 간에 무슨 상관이야! 지금 내 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아들은 충격으로 다중인격이 될 판인데 아버지는 담담하게 이유를 말했다. '손님들이 계속 줄을 서야 하니 아직 수요가 충분하다. 손님들이 워낙 많으니 장사가 잘 될 때 얼른 기계를 더 사 와서 돈을 벌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질투가 난 게 분명했다. 몇 개월간 같은 자리에서 고생한 끝에 이제야 단골들이 생기는데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라니? 거기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단밤을 판다니? 너무 억울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쉴 수는 없었다.


머릿속으로 ‘이게 그 아침 드라마에서나 보던 경영권 다툼 같은 건가? 근데 우리 집은 재벌이 아닌데?’ 같은 현실도피적인 생각을 하며 노점 마차를 밀었다. 그날따라 더 무겁게 느껴졌다. 원래 장사하던 곳에서 한 400m 정도 떨어진 우체국 옆 분수대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장사하던 곳보다 훨씬 좁고 횡단보도도 없는 자리였다. 옮긴 첫날 매출은 작고 귀여워졌다. 어찌나 작아졌는지 보통 때의 반의반도 안됐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첫날 매출이 잘 나왔는지 운전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뒷좌석에서 아버지의 콧노래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복수의 칼을 갈았다. 집에 가는 내내 30만 원짜리 기계로 250만 원짜리 기계를 이길 방법을 떠올렸다.


며칠 뒤. 아버지가 그 도장은 뭐냐고 물으셨다.

“아, 이거요? 쿠폰에 찍어주려고 만든 다람쥐 모양 도장이에요. 귀엽죠?”


“쿠폰이라니? 갑자기 무슨 쿠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건빵 주머니에서 명함 크기의 쿠폰 다발을 꺼내 들었다. 다람쥐 얼굴이 박힌 쿠폰에는 빈칸 10개가 그려져 있었고 밑에는 '다람쥐 도장을 10개 모으시면 단밤 1 봉지 공짜. 한 봉지에 상한 밤이 두 알 이상 나오면 교환해 드립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단골손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내 전략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노점에서 무슨 쿠폰이냐며 쓸데없는 짓이라고 손사래 치셨지만, 꽤 놀라는 눈치셨다. 후후,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아버지. 순순히 계열사를... 아니, 단밤 마차를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나는 장사가 끝난 야밤에 시내 곳곳을 돌며 포스터를 붙이기 시작했다. 내 얼굴이 들어간 노점 홍보 포스터였다. 포토샵을 쓸 줄 몰라서 컴퓨터 그림판으로 영화 포스터에 내 얼굴을 잘라 붙였다. 아마도 영화 괴물 포스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포스터에 괴물이라는 제목의 자음과 모음을 자르고 늘리고 돌려서 단밤으로 바꾸고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었다. 내가 새로 옮긴 위치도 표시해서 손님들이 찾아올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준비한 포스터는 시장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붙어서 나 대신 손님들을 끌어들였다.

쿠폰과 포스터는 금방 입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손님들은 줄을 서서 내 단밤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손님이 생길 때쯤. 나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진공으로 포장한 단밤이었다. 내 단밤 굽는 기계는 작고 굽는데도 시간이 좀 걸리다 보니 손님들이 몰리면 다들 줄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진공 포장 팩을 사다가 미리 구워놓은 단밤을 진공 포장해서 준비해놓았다. 이걸 사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따끈한 단밤을 먹고 싶을 때 즐길 수 있었다. 양도 내가 굽는 것보다는 더 넉넉하게 넣었다. 반응은 기가 막혔다.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진공으로 포장한 단밤 덕분에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가버리는 손님들까지 다 잡을 수 있었다. 두 달 정도 지나자 옮기기 전보다 매출은 두 배 늘었다. 그렇지만 늘어난 매출보다 기분이 좋았던 건 아버지의 단밤 기계가 창고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 두 달 간의 단밤 전쟁을 지켜본 어머니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흔드셨다. 시장 사람들 반응도 비슷했다. 세상에 저렇게 지독한 아버지와 아들은 처음 본다며 혀를 찼다. 그동안 시장에서 단밤을 팔던 다른 노점상들은 모두 두 손 들고 포기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아버지가 창고에 단밤 기계를 넣으실 때 도와드리며 승리자의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기곗값은 벌었으니 이걸 중고로 팔면 그만큼 이득을 본 셈이라는 아버지께 특짜 모둠회에 소주를 따라드리는 것으로 부자간의 단밤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물론, 내 자리도 다시 찾았다.

이 경험은 곧 내 영업 철학이 되었다. '이것저것 색다른 방법을 찾아서 재미있게 해 볼 것.' 서울에 올라가 전화로 보험을 팔 때도 이 철학 덕분에 좋은 결과를 냈다. 예를 들어 고객과 녹음이 다 끝나고 보험 판매가 완료되면 나는 마이크에 대고 손뼉을 쳤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든든하게 보장을 받게 되었으니 축하한다는 뜻이었고, 긴 청약 내용 녹음에 지루해하던 고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자녀가 있는 고객들은 꼭 자녀의 생일을 물어봤다. 그 생일과 같은 위인들을 찾아서 그 사람의 사진을 배경으로 편지와 선물을 보내곤 했다. 그 사람처럼 훌륭하게 자라라는 덕담과 함께. 한 번은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와 생일이 같아서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때리는 사진 위에 프로야구 대기록을 세운 이 선수처럼 건강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라고 써서 보냈다가 전화로 무지하게 혼났다. 알고 보니 편지를 받은 것은 여자아이였고, 어머니는 20년째 골수 롯데 팬이었다. 이 한 번을 제외하면 다들 좋아했고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영업실적은 좋았고, 일하면서도 즐거웠다.


지금은 우연의 장난인지 산골에서 식물을 연구하며 월급을 받고 있지만 한 번씩 시장에 갈 때마다 장사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노점 앞을 지날 때면 지금 장사를 해도 전처럼 잘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세상도 많이 바뀌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힘들지 않을까? 그렇지만 홍철이 형이 <무한도전>에서 날아다니는 걸 본 바로는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홍철이 형도 <무한도전> 속에서 말하는 속도, 제스처 같은 것들도 변하고 캐릭터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번뜩이는 장사꾼의 감을 보여주곤 했었으니까.


언니의 유혹에서 새우 무한리필(제한시간 1분)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품을 기획해낸 건 홍철이 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준하 형에게 1분은 새우를 싹 쓸어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거기다 끊임없이 부업 및 사업을 하던 명수 형이 유력하지 않을까 했던 쩐의 전쟁은 홍철이 형의 독무대였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들고 도매상을 찾아가서 연필부터 시작해 반나절 동안 16만 원을 만들고, 100만 원으로 호두과자 장사를 시작해 하루에 81만 원을 번 장사 수완은 두 번의 쩐의 전쟁 특집에서 모두 홍철이 형을 1등으로 만들어줬다. 쩐의 전쟁 2 특집은 홍철이 형의 음주운전으로 1등을 1등이라고 보여줄 수 없는 특집이 되어 아쉬웠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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