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할 때

5. 아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by 박구사

감자 영그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어?


십오 년째 가계부를 쓰고 있다.


노점을 하면서 장부를 엑셀로 정리하던 것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한다. 처음 가계부를 쓰게 된 이유는 단밤의 수량관리나 매출 정리에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십 대가 그렇듯 그 당시 내 마음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했고 대학을 때려치우고 노점을 시작한 내 선택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정부 지원이 끝나면 매달 감당해야 할 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도 무서웠다. 길거리에 나가 장사를 시작한 며칠간은 잠이 오질 않았고 나중에는 쉬고 있어도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시간은 엑셀에 숫자를 넣을 때였다. 엑셀에 그날 매출을 입력하고 단밤 값과 포장봉투값, 가스비, 버스비를 빼면 그날 하루 동안의 내 노력과 선택의 결과가 정확하게 숫자로 나왔다.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는 내 하루에 유일하게 확실한 숫자. 돈.


‘어제 비를 쫄딱 맞아서 몸살 기운이 있는데 좀 늦게 나갈까? 출근 시간을 지키는 게 나을까? 혹시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옷을 하나 챙길까? 시장까지 걸어갈 텐데 더우려나? 그냥 버스를 타고 일찍 가서 장사를 더 하는 게 나을까? 오늘 점심은 또 볶음밥 먹어야 하나? 천오백 원 더 내고 돈가스를 먹을까? 돈가스는 비싸고 먹는 시간도 더 걸릴 텐데. 지금 건널목을 건너는 저 손님에게 단밤을 건넬까? 표정이 무서운데 그냥 주지 말까? 신발 밑창 떨어져 가는데 신발 하나 살까? 나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나?’


머릿속에 끊이질 않는 이런 질문들은 내게 선택을 요구했다. 이런 질문들에 딱히 정답이 있겠냐마는 나는 엑셀에 나온 숫자가 그날 내 선택의 결과이자 정답이라고 믿었다. 버스를 타든 걷든, 볶음밥을 먹던 돈가스를 먹건 간에 그날 엑셀에 입력한 매상이 크면 전부 다 옳은 선택이자 정답이 되었다. 매상이 줄어들면 다 틀린 선택이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정확히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나는 그렇게 여겼다.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논리적이고 다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계부를 쓰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장사에 도움이 되고 위안까지 주는데 안 쓸 도리가 없었다. 결국, 매일 숫자를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매일 숫자를 확인하는 버릇은 회사에 들어가서 더 심해졌다. 회사 사무실 벽에는 매일 아침 전날까지의 보험 판매 실적이 붙어있었다. 1등부터 600여 등 까지 모든 사원의 실적이 나와 있었는데 당연히 A4용지 한두 장에 다 들어가지지 않았다. 몇십 장의 A4용지를 세로로 길게 이어 붙여야 600여 명의 이름이 전부 들어갔다. 그걸 게시판에 붙여놓으면 벽에 걸린 길게 늘어진 두루마리 휴지처럼 보였다. 누가 생각했는지 참 악랄했다. 영업조직에서 실적 압박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판매실적 정도는 공개해서 붙여 놓을 수 있지 않냐고?


게시판은 보통 눈높이에 맞게 걸려있다. 정보를 전하려면 보기 편해야 하니까. 거기에 그 기다란 종이를 붙이고 물러서서 자기 등수를 확인하는 사람들을 보면 악랄한 의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맨 위의 한 두 장에 이름이 들어간 판매 실적 최상위권은 허리를 쫙 펴고 서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다. 판매실적 중위권부터는 실적이 낮은 사람일수록 본인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실적 최하위권이 자기 이름을 찾으려면 바닥에 휴지처럼 나뒹구는 종이를 하나씩 뒤집어야 한다. 비라도 내린 아침에는 사람들이 밟은 종이가 젖어서 더 찾기 힘들어진다.


아침마다 높은 등수인 사람이 낮은 등수의 이름들을 밟고 서서 자신의 높이를 확인한다. 등수가 낮은 사람은 그들이 떠난 뒤에야 짓밟힌 자기 이름을 찾는다.


글로 적으니 가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이 짓을 매일 겪으니 무덤덤해지더라. 나는 맨 최상위 권까지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바닥에 밟히지 않는 등수를 사수하려고 발버둥 쳤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가며 전화통을 붙잡고 보험을 팔았고 헤드셋을 쓴 관자놀이가 옴폭 파일 정도로 오랫동안 입을 놀렸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다들 예민해져서 업무시간에 볼펜을 똑딱거리다가 욕설을 들었다는 정도는 이야깃거리도 못 되었다.

가끔 종일 전화를 돌려도 계약 한 건도 못 하는 날이면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 불안해졌다. 그럴 때면 나는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계약직 콜센터 직원에게는 통장에 찍힌 숫자만이 기댈 곳이었다. 내가 해온 선택과 버텨낸 것들의 결과가 거기에 있었다. 내일도, 오늘도, 직장도 전부 부표처럼 흔들렸지만 숫자만은 그대로였다. 내가 발버둥 친 만큼만 늘어나 있었고, 쉰 만큼 줄어들어있었다. 불안할 때마다 숫자를 확인해가며 다시 헤드셋을 썼다.


회사를 나오자 기댈 곳도 숫자도 사라졌다. 고민 끝에 서른이 넘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농업직을 골랐지만, 비전공자에겐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다. 재배학을 비롯한 농과대학 전공 서적들은 내가 보기에는 영어책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소리 내 읽을 수만 있고, 뜻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주변에 공시생도 없었으니 합격 수기만 보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회독이라는 것이 있었다. 원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걸 1회 독이라고 하는데 5회 독, 7회 독, 10회 독까지 했다는 수기가 많았다. 일단 회독이라는 게 필수라니 해봐야지. 3일에 걸쳐 처음 재배학 원서를 다 읽고 나서 머리가 멍했다. 마지막 장을 덮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게 1 회독이라고? 이걸 10번 하면 합격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당장 한 페이지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합격해? 갑자기 앉아있던 의자 다리가 하나 부러진 것처럼 불안해졌다.


책을 읽고 문제집을 풀어도 내 안에 쌓인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공부를 하면서도 긴가민가했다. 솔직히 돌아버릴 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서 무작정 책을 읽고 문제를 풀고는 있지만 이게 맞는 건지, 지금 내 안에 지식이 쌓이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시험 점수로 내 안에 쌓인 지식을 확인하면 좋겠지만 시험은 1년에 한 번 뿐이라 당장 확인할 수 없었다. 매일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오늘 공부를 제대로 한 건지 불안했다. 불안감이 차올라 갑자기 공부를 하다 말고 전년도 경쟁률이나, 합격선 같은 것을 찾아보았다. 나중엔 내가 지원하지 않을 지역의 경쟁률이나 이미 어제 찾아봤던 합격선도 또 찾아보게 되었다. 이제 그만해야 했다. 나는 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것을 믿는 법을 배워야 했다.


뭐 별다른 방법이 있었던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믿는 수밖에 없었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들여다봤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은 읽고 나면 바로 잊혔다. 그래도 계속 읽어나갔다. 어떨 때는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앉아서 계속 읽었다. 그렇게 종일 책과 씨름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누우면 뿌듯하기보단 오늘 제대로 공부를 하긴 한 건지 불안했다.


'하아…. 내일 공부는 또 어떻게 하지.'


그렇지만 내가 불안할 때 기댈 수 있는 것은 숫자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내일 뭘 할지 내일 뭘 할지 꿈꾸게 했지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나 자신을


- 유재석, 이적 ‘말하는 대로’ 중에서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하는 대로'를 참 많이 들었고 불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서관을 오가는 길이나 벤치에 앉아 쉬면서도 불렀다. 재석이 형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테니 너를 믿으라고 했기에 그렇게 했다. 숫자가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자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하는 말을 믿기로 했다.


나 말고도 이 노래 덕분에 위안을 받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특히 취업 준비생과 수험생이라면 더더욱. 믿지 못하겠다면 당장 유튜브에 들어가 보시길. 이 노래를 듣고 장문의 댓글을 남겨가며 위로를 주고받는 많은 사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말하는 대로를 들으며 거기에 달린 댓글들도 자주 읽었다. '불안해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구나,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불안함을 이기려 애쓰고 있구나.' 하고 위안을 얻었다.


재석이 형이 부른 원곡도 좋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버전은 ‘보이스 코리아 2’에 나왔던 윤성기, 조재일 님의 말하는 대로였다. 재석이 형의 원곡이 잔잔하게 위로해주는 느낌이라면 윤성기, 조재일 님의 노래는 답답한 미래를 뻥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이 동영상의 하이라이트는 2분 8초에 나오는 ‘예아!’와 2분 38초에 ‘그댈 믿는다면!’ 이 부분이다. 매년 이 부분만 들으러 영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댓글창에 가득할 정도로 좋다.


시험에 합격하고 1년째 되던 날. 친구가 개최하는 행사에 초대받았다. 국회에서 열린 청소년들의 연설 대회였다. 구석 자리에 앉아 연설도 듣고 여기저기 둘러보는 사이 마지막 참가자의 연설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내 앞 좌석에 앉은 남자가 일어섰다. 청중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노래를 한 곡 부르겠다며 무대에 올랐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이었다. 누구지? 분명 얼굴이 낯익은데. 곧이어 익숙한 간주가 나왔다. 간주를 듣고서야 저 남자가 누군지 생각났다. 무대에 선 남자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눈은 무대를 향해 있었지만 나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내가 무거운 가방을 앞으로 메고 걷고 있다. 디스크가 심해졌기 때문에 가방을 뒤로 멜 수 없기 때문이다. 영등포 구립도서관에서 당산동 낡은 오피스텔로 이어지는 정비소 골목. 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있고 길에서는 기름 냄새가 난다. 나는 걸으며 손에 쥔 암기노트를 읽다가 노트를 덮는다. 깊은 한숨. 잔뜩 날리는 눈송이들은 바닥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더럭 겁이 나서 걸음을 멈춘다. 하늘에는 눈송이가 가득한데 깜깜한 골목에는 눈송이도, 눈이 쌓이는 소리도 없다. 내 노력은 쌓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저 눈송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걸까. 나는 그대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 코 끝이 빨개질 때쯤 나를 위로할 말을 생각해낸다.


'감자 영그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어? 지식은 통장 잔고처럼 확인할 수 없으니 불안하겠지. 그렇지만 영그는 소리가 나지 않아도, 감자는 자라나. 농부가 땅속에 있는 감자를 확인할 길이 없어도 묵묵히 거름과 사랑을 주기 때문이야. 농부의 마음으로 공부하자. 조바심 내지 않아도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박수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노래를 마친 남자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무대를 내려오는 남자는 윤성기였다.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며 당신이 부른 말하는 대로를 들으며 힘든 날들을 버텼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웬 덩치 큰 남자가 울먹거리며 인사하자 당황해 보였지만 나는 뒤돌아 천천히 국회를 빠져나왔다. 지하철을 타러 곧장 국회의사당 역으로 가지 않고, 당산동 쪽으로 걸었다. 이 시험을 시작하기 전, 여의도 엠비씨 앞에 텐트를 치기 위해 걸었던 길을 거꾸로 걸었다. 매일 드나들던 영등포 구립도서관을 지나 회사원인 척 몰래 이용하던 구내식당 앞도 지나쳤다. 기름 냄새가 여전한 정비소 골목을 걸어서 예전에 살던 당산동 집 앞에 도착했다.


익숙하지만 이젠 다른 사람의 집이 된 202호의 현관문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안에서 어떤 이야기 하나가 완결된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나에게 어떤 비밀을 살짝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것을 믿길 잘했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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