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물을 못 받건 속상하건 간에 수험서와 고지서는 쉴 새 없이 코앞에 디밀어졌다.
손 안의 전화기가 반짝거렸다.
나는 요즘 오전엔 도서관에 갔다가 오후엔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고, 밤엔 다시 도서관에 간다. 어디든 벨 소리가 울리면 안 되는 곳이라 전화기는 무음으로 해놓는다. 주머니에 있었으면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을 테지만 버스 도착 시각을 확인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02로 시작하는 일반 전화. 보험이나 인터넷에 가입하라는 스팸 전화일 것이다.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르려다 그냥 받았다.
다시는 돌아가기 싫었던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스팸 전화 같아도 일단 받게 되었다. 스팸 전화를 받으면 미리 정해놓은 3단계를 거친다. 1단계. 정중하게 인사한다. 2단계. 단호하게 거절한다. 3단계. 재빨리 끊는다. 일단 내가 전화를 받았으니 상담원도 하루에 할당된 콜 수가 하나 채워졌을 것이다. 전화를 걸어서 고객이 받은 횟수를 콜 수라고 부른다. 보통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아웃바운드 상담원들은 하루에 백 통 정도의 정해진 콜 수를 채워야 기본급을 받는다. 기본 콜 수를 못 채우면 집에도 안 보내는 실장들이 많기 때문에 꼭 채워야 한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빨리 끊는 건, 필요한 게 합격 소식밖에 없는 가난한 수험생 말고, 돈이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해야 뭐라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콜 밥을 먹다 보니 ‘남의 전화를 함부로 끊으면 결국 나에게 다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한 방침이다.
어떻게 거절해야 서로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인사를 하고 10초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신림역 사거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살면서 전화를 받고 다리가 풀리는 일은 흔치 않다. 그렇지만 이런 전화를 받으면 누구라도 다리가 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박 구사님 맞으신가요? 저희는 MBC <무한도전> 제작진입니다. 박 구사님? 안 들리세요?”
무한도전 제작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어? 이게 뭐지? 꿈인가.’ 넋이 나가서 앉아있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전화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단단히 쥔 전화기에 대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고 저는 지금 꿈만 같고 무한도전 제작진 여러분 자손만대에 복을 받으시고(실제로 말했다) 박 씨 가문의 영광이다.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내 말을 끊고 작가님이 물으셨다. 지난번에 <무한도전> 선거 특집에서 전국 1등으로 투표하신 분 맞으시냐고. 만 개가 넘는 사연 중에 워낙 특이해서 관심이 갔다고. 그때 저희가 선물도 드리지 못하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연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고. 여기까지 설명을 듣자 무슨 일인지 대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방송국 앞에 텐트를 치고 전국 1등으로 투표해서 기사도 실리고 제작진과 인터뷰도 했지만 본방송에는 통편집당했다. 투표장에서도 <무한도전> 멤버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추억 만들기는 성공한 듯 실패한 듯 어정쩡한 상태로 끝났고 나는 본격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머리를 식히러 도서관 벤치에 앉아있다가 별생각 없이 트위터에 접속했다. 투표 전날 텐트에서 인증숏을 올리려고 만들었던 일회용 계정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메시지 함을 눌렀는데 왠 걸? 메시지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무한도전> 제작진이 선물을 보내려고 하니 제발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였다. 부랴부랴 메시지에 적혀있는 연락처로 전화했지만 너무 늦었다. 시간이 너무 지나서 준비한 선물은 이미 다른 곳에 사용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맥이 탁 풀렸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구나.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인생에는 원래 마법 같은 순간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다들 팍팍하게 살지.’ 하고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이미 끝난 일을 더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서른이 넘어 늦깎이 수험생이 된 이상 생활비부터 수험공부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잔뜩 있었다. 내가 선물을 못 받건 속상하건 간에 수험서와 고지서는 쉴 새 없이 코앞에 디밀어졌다. 수험생활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통장에 있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 써야 했다. 결국 콜센터로 돌아갔다.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아쉬웠으니까. 오후에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전과 밤에 수험공부를 했다. 그렇게 완전한 수험생도 완전한 직장인도 아닌 상태로 어중간한 날들을 보냈다.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불안했다.
어쩌면 그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갈팡질팡하는 마음은 고단했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달라지는 장소에 몸은 불안했으니까.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한동안은 되는 일도 없었다.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책을 샀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과목이기도 했고, 준비하는 직렬인 농업 분야는 책을 봐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책에 ‘옥수수가 도복 하게 된다.’라고 쓰여 있어서 유도선수가 입는 ‘도복’(道服)인 줄 알고 옥수수도 옷을 입는 줄 알았다. 가로수가 겨울에 볏짚으로 된 목도리 같은 걸 두르는 것처럼. 알고 보니 식물이 쓰러지는 걸 ‘도복’(倒伏)이라고 했다. 비전공자라 이런 기본 단어조차 모르니 매일 공부해도 진도는 앞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다. 늪에 빠진 채 쇳덩이를 달고 발버둥 치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무한도전>에서 형광팬 캠프 지원자를 모집했다. 멤버 별로 형들의 광팬을 찾는다는 콘셉트이었다. 반쪽만 성공한 추억 만들기가 생각났다. 딱 봐도 어마어마한 경쟁률일 텐데 과연 내가 될까 싶었지만 일단 눈 딱 감고 지원했다. 가장 경쟁이 치열해 보이는 유재석 팀으로. 사실 경쟁률 차원에서 인기가 좀 덜한 멤버에게 지원하는 게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결국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평생 단 한 명과 캠프를 간다면 누구와 갈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한 번뿐인 기회라면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사연을 작성하러 들어간 게시판에는 이미 어마어마하게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똑같은 글을 중복해서 올리는 사람은 물론이고 아픈 사연이 있는 사람, 결혼을 앞둔 사람, 해외에 있는 사람 등등 게시판에 사연 올라오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화면이 바뀌어있었다. 부랴부랴 게시글을 작성했다.
‘저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재석의 광팬입니다. 지난번 선거 특집에서 전국 1등으로 투표하기 위해 방송국 앞에 텐트를 쳤던 사람이 접니다. 미련 없이 선물도 받지 않고 쿨하게 떠난 저를 꼭 뽑아주세요.’
선물은 내 실수로 못 받았지만 합격을 위해 없는 쿨함을 쥐어 짜냈다. 첨부 파일에는 텐트 앞에 서 있는 내 사진과 김태호 피디가 리트윗 한 사진이 실린 기사를 캡처해서 올렸다. 글을 저장하고 내가 쓴 글을 다시 확인하려는데 이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로 쭉 밀려나 있었다.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구나 싶었다. 며칠 뒤 3일 정도 모집을 받았는데 10,00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지원했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을 접고 있었다. 인생에 마법 같은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으니까.
그러나 마법 같은 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 안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