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형을 찾아 나선 '저쪼 위에'의 모험

3. 형광팬 캠프

by 박구사

긴박한 순간 생각난 것은 유재석의 젖꼭지였다.



심장이 목에서 뛰는 것 같았다.


일산 드림센터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얼마나 거세게 뛰는지 머리까지 울릴 정도였다. 제작진이 면접 보는 걸 비밀로 하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며칠간 입을 꾹 다물고 지냈다. 사실 그런 말을 듣지 않았어도 남들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미신을 잘 믿지 않았지만, 입으로 복이 나갈까 봐, 혹시 내가 이 귀한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입을 굳게 닫았다. 심지어 복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에 길에 쓰레기가 보이면 줍고 다닐 정도였다. 철통같이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건만 동생은 금세 알아차렸다. 최대한 내색을 안 하려고 현관문 앞에서 심호흡하고 문을 열었는데 신발을 벗기도 전에 들켰다.


"뭐야? 오빠 무슨 일 있어? “


나는 아무 일도 없다, 결백하다, 평범한 하루였다. 등등 평상시의 나와 같음을 주장했지만, 귀신을 속이면 속였지 동생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동생은 내 멱살을 쥐어짰고 내 속에 있는 비밀은 치약처럼 밀려 나왔다. 동생은 조금 전까지 빨리 말하라며 멱살을 쥐던 손으로 내 손을 잡아 강강술래를 돌며 축하해주었다. 그날은 부족한 수험생 살림에도 치킨과 피자를 시켜 한껏 기쁨을 즐겼다.

그 후 동생과 나는 면접을 위한 회의에 돌입했다. 동생은 개인기를 반드시 시킬 테니 준비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유만만하게 필요 없다고 했다.


”이미 내가 물어봤는데, 제작진이 개인기는 안 시키니까 준비하지 말라고 했고, 면접은 일산 드림센터에서 3일간 진행되며, 면접 시간은 한 명당 10분 내외, 복장은 자유, 준비할 것은 없으니 정말 마음 편히 오라고 했어. “

동생은 그렇다면 인상이라도 깔끔해 보여야 하니 당장 옷을 사러 가자고 했다. 나는 아직 최종 합격을 한 것도 아닌데 벌써 옷을 사는 건 복이 나가는 행동이며, 긴장을 많이 할 테니 평소 좋아하던 편한 옷을 세탁해서 입고 가는 게 최고라고 답했다. 나는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동생은 이런 상황에서도 짠돌이가 돈을 아낀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돈이 아까웠다. 날카로운 것 같으니라고. 면접에 돈을 투자했다가 떨어지면 돈도 쓰고 속도 쓰리고 얼마나 비경제적인가. 그런 이유로 난 동생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개인기는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채 가방에 우산 하나, 책 한 권만 챙겨서 면접장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방송국 정문에 도착하니 면접장으로 안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면접이라 안내 문구 대신 그들이 직접 지원자들을 안내하는 듯했다. 면접을 보러 오셨냐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안내해주던 분은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누구에게 지원하셨냐, 정말 축하드린다, 잘하셔라, 나는 누굴 좋아한다 등등 이동하며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주었지만, 나는 긴장해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는 심장이 목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뛰는 것 같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 <무한도전>에 굉장히 가까이 와 있구나.


대기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교복을 입고 온 학생들, 한복을 입고 온 어르신, 정장을 입은 사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온 사람, 액자를 들고 온 사람 등 다양한 이들로 가득했다. 기분 탓일까. 척 봐도 뭔가 특이한 사람들 같았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랄까. 근처에 앉은 사람들과 바로 통성명을 하고, 누구에게 지원했는지 등을 물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자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조용하던 테이블이 시끄러워졌다. 다들 긴장해 있다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자 너도나도 말문이 트이는 듯했다.


‘여자분 전화받으셨어요? 저는 남자분이셨는데. 깜짝 놀라셨죠? 저는 전화받고 소릴 너무 질러서 목이 다 쉬었어요. 저는 울었어요. 전화 다시 안 올까 봐 잠도 못 잤어요.’ 등등.


한참 대화를 나누다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껏 제작진의 행동으로 짐작건대 불합격자에게 따로 통보하지 않겠다는 생각. 전화 면접 이후 다음 연락을 받을 때까지 전화통만 붙잡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무슨 말을 잘못한 건가. 아, 그때 이렇게 대답할 걸… 다시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기까지 피가 다 마를 지경이었다. 만약 이번에 면접에서 떨어진다면 내가 떨어졌다는 사실도 모른 체 전화만 기다리다가 갑자기 티브이에서 형광팬 특집을 보게 될 것 같았다.


"잠시만요! “


결심과 동시에 몸을 튕기며 일어났다. 사람들이 모두 주목했다.


"제 생각에는 면접에 떨어져도 불합격 통지를 따로 안 줄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여기 계신 분들끼리 단톡 방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저희 중에 합격하신 분이 나오면 다른 분들 희망 고문당하지 않게 단톡 방에 이야기해 주시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떠세요?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휴대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행동력들이 대단했다. 이렇게 마음이 잘 맞다니 신기했다. 결국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연락처를 받았다. 50명은 되었던 것 같다. 단톡 방에서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면접장에서 지원자가 나왔다. 재빨리 다가가서 연락처를 물었다. 아까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여자였다. 번호를 입력하며 면접이 어땠는지 묻자 개인기를 시키더라고 했다. 뭐라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자 본인도 놀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로는 개인기 안 시킨다고 하더니 갑자기 시켜서 깜짝 놀랐어요. 전 그래도 왠지 시킬 것 같아서 준비한 막춤 췄어요. “


이럴 수가. 망했다. 이 이익… 나쁜 제작진 같으니라고! 분명 개인기 안 시킨다고 했잖아! 개인기를 시킨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저마다 예상은 했다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정말 준비를 안 했기 때문에 넋을 놓고 있었다. 멍하니 있는 나에게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말했다.


“오빠, 목소리가 이선균 비슷한데 성대모사해보시는 거 어때요?”


뜬금없는 제안에 떨떠름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거 괜찮겠다며 얼른 연습해 보라고 했다. 유튜브에 이선균 성대모사를 검색하니 대부분이 몇 년 전 히트한 드라마의 대사를 따라 한 거였다.


“자 오늘의 첫 번째 메뉴다. 봉골레 파스타 하나. 또르뗄리니 하나. 빨리빨리 못 움직이나!”

급한 마음에 대사를 적어서 따라 해 봤다. 뭐 길게 할 것도 없이 첫음절 "자아" 에서부터 발가락이 쫙 오그라들었다. 생애 첫 성대모사를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급히 배워야 한다니. 시간이 촉박해서 발가락을 꽉 오그린 상태로 쉬지 않고 연습을 했다. 성대모사를 추천해준 학생은 오빠라고 하기는 애매하고, 아저씨라고 하기는 뭣한 나이 때의 나를 열심히 오빠라고 부르며 응원해줬다. 평생 먹을 만큼의 파스타를 주문해가며 성대모사를 연습하니 짧은 시간이지만 제법 입에 붙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분량도 짧고 무엇보다 임팩트가 없었다. ‘빅 재미’, ‘큰 웃음’이 없다고 당장에라도 박거성의 불호령이 떨어질 듯했다.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어느새 내 앞엔 지원자 2명밖에 남지 않았다.


긴박한 순간 생각난 것은 유재석의 젖꼭지였다. ‘저쪼 아래(젖꼭지가 아래 있다고 붙여진 유재석의 별명)’의 광팬이니까 나는 젖꼭지가 위에 달린 사람이라는 콘셉트로 나가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젖꼭지가) 위에 있고 유재석은 밑에 있어 둘이 평균을 내면 딱 중간에 자리하게(?) 되니 이번에 꼭 유재석 형님을 만나야 한다고 소개하기로 했다. 인사도 “안녕하세요! ‘저쪼 아래’ 형님을 좋아하는 ‘저쪼 위에’입니다!”로.


내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발가락이 오그라들고 가슴께가 욱신거린다. 수치스러운 기억은 화상처럼 흉터가 남고, 떠올릴 때마다 흉터 부위를 욱신거리게 한다. 내가 정말 합격을 위해 수치심도 다 버렸었구나. 카페로 뛰어가 커피를 시키고 테이프를 빌렸다. 커피는 마시지도 않고 곧장 화장실로 갔다. 핸드타월을 공처럼 말아 젖꼭지 반 뼘쯤 위에 올리고 테이프를 감았다. 긴장해서 보라색 셔츠 안에 입은 흰 티셔츠는 땀에 흠뻑 젖었고, 테이프가 잘 붙지 않았다. 그 사이 바로 내 앞번호 지원자가 면접장에 들어갔다. 마음이 바쁘니 손끝이 무뎌져 테이프는 더 안 붙었다. 이젠 정말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을 때 간신히 ‘저쪼 위에’로 변신할 수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꼴은 말이 아니었다. 셔츠 밖으로 튀어나온 그것은 너무 크고 수평도 안 맞아서 젖꼭지라고 할 수 없이, 돌기나 뿔이라고 불러야 적절했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옴과 동시에 앞번호의 지원자가 면접장에서 나왔다. 이제 내 차례였다. 면접장으로 들어가면서 어쩌면 불합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능 프로그램 면접에 오면서 개인기 하나 준비 안 했다니. 태평하게 수험 공부나 하고 있었다니.


맙소사! ‘저쪼 위에’ 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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