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미 깁미와 우산 로켓펀치

4. 형광팬 캠프

by 박구사


언제가 됐든 더 이상 나한테 쪽팔리기 싫었다. 미안해하기 싫었다. 그건 이미 너무 많이 했다.



분명히 편안한 자리라고 했잖아요.


면접장 문을 열자마자 14개의 눈과 3개의 렌즈가 나를 쳐다봤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오라더니 개인기를 하라니요? 그것도 무대 한가운데서! 제작진은 <무한도전> 멤버들만 속이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 나 같은 예비 ‘형광팬’을 속일 필요는 없을 텐데. 이 사람들 이제 그냥 속이는 게 버릇이 된 거 아냐? 놀란 와중에도 무대로 걸어가면서 이곳이 정신 감정 특집이나 탐정 특집 등에서 여러 번 나왔던 무대임을 알아차렸다. 보통 외부에서 누군가를 초대해 멤버들이 방청석에 앉고, 게스트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곳이다. 오늘은 내가 바로 그 게스트인 것이다. 무대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자기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잃어버린 형을 찾으러 나온 ‘저 쪼 위에’ 박기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보통 이런 자기소개 후에 가장 좋은 반응은 ‘저쪼 위에 가 뭔가요?’ 하고 내가 준비한 질문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자기소개가 신통치 못했다면 반응이 없다. 별 반응 없이 면접관이 준비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무반응보다 더 나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뭐라고요? 하나도 안 들렸어요."이다.


떨린 나머지 목소리가 작았나 보다. 발음도 형편없었던 것 같다. 시장통에서 노점상으로 단련된 내가 목소리가 작다니! 콜센터에서도 매일 ‘작게 좀 말하라’고 실장에게 혼나는 데. 당황해서 자기소개를 다시 했고 작가들은 심상하게 듣더니 물었다.


"저쪼 위에 뭐예요?"


아까 인사할 때 설명해야 했는데. 긴장해서 까먹었나 보다. 그제야 셔츠 위로 튀어나온 돌기를 가리켰다.


"유재석 형님은 (젖꼭지가) 밑에 있어서 ‘저쪼 아래’ 시고 저는 위에 있어서 ‘저 쪼 위에’입니다. 에.. 둘이 합치면 위치가 중간이니까, 그러니까 지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


실수했다. 합치면이 아니고 평균을 내면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긴장해서 말소리도 떨렸다. 내가 말을 할수록 작가들의 흥미가 빠르게 식는 게 보였다. 점점 굳어가는 작가들의 표정에 내 자신감은 선풍기 앞에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빠르게 녹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말도 더듬었다.


"아, 예..."


그리고 정적. 그 짧은 시간 동안 뒤통수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겨드랑이에는 온천수가 폭발했다. 옆구리를 타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면접을 망쳤다는 생각에 어지러웠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작가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서류만 보고 있었다. 또 놓치는 건가. 거의 다 왔는데. 내 힘든 삶의 유일한 낙인 <무한도전> 멤버들을 만날 기회가 코앞인데. 회사는 사라지고 공부는 안 되고 나이는 먹어서 이제 30대. 갈수록 힘들어만 가는 내 인생에 이 정도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건가. 마음속에서 뭔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나 없는 ‘형광팬’ 특집을 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못 볼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망한 거 지금부턴 그냥 편하게 다 내려놓고 해 보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저기! 작가님들!"


서류만 들여다보던 작가들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지금 준비해온 ‘저쪼 위에’가 실패해서 엄청 주눅 들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무거나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 저 원래 잘 떨지도 않고, 낯도 안 가리는데 긴장했나 봐요."


긴장을 풀고 속마음을 털어놓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색했던 공기가 아주 조금 부드러워졌고 왼쪽 끝에 앉은 작가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긴장을 엄청 하시던데요. 캠프에 가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


"방금은 제가 긴장해서 그렇고요. 저 정말 낯을 안 가려요. 보험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오래 일했고, 밖에서 기다리시는 분들이랑 금방 친해져서 전화번호도 다 받았어요. “


"밖에서 기다리는 분들 전부 다요? “


"네. 왠지 탈락해도 연락을 안 주실 것 같아서요. 언제 전화 오나 기다리다가 갑자기 ‘형광팬’ 특집이 나오면 너무 속상하잖아요. 면접 통과된 분이 있으면 단톡 방에 이야기해 주기로 했어요. 그럼 떨어진 사람도 깔끔하게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요. “


대답이 끝나자 작가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나도 말을 할수록 점점 편해져 이어지는 일반적인 질문들에는 제법 잘 대답했다. 처음보다 훨씬 분위기가 부드러워질 무렵.


"개인기 준비한 거 있으세요? “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파스타 주문이 들어왔다. 이 분위기를 살려서 쭉 이어 가자. 이선균 성대모사를 하겠다고 하고 가슴을 비둘기처럼 부풀린 후 소리쳤다.


"촤아! 오늘의 첫 번째 메뉴 돠. 봉골레 파스타 하나! “


힘을 너무 많이 준 덕분에 자! 가 아니고 촤아! 가 되어버렸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카메라 감독들은 무표정했지만, 작가들은 대부분 피식 웃었다. 좋아. 흐름이 살살 바뀌는 것 같다. 가운데 앉은 작가가 의자를 살짝 당겨 앉으며 말했다. 방금 파스타 주문에도 웃지 않던 작가다.


"너무 짧은데 다른 건 없어요? “


여기다. 여기가 승부처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여기서 승패가 갈리게 된다고. 그렇지만 급히 준비해 둔 것들은 이미 다 써버렸다. 어쩌지?


"제가 회사 다닐 때 회식 때마다 부르던 노래가 있는데 그거 한 곡 부를게요. 컨츄리 꼬꼬 <Gimme! Gimme!> 부탁드립니다. “


스물네 살에 입사해 보험 영업을 하면서 이래저래 좋은 일 싫은 일이 많았고, 별의별 꼴을 다 겪었다. 전화기를 들면 매일 욕설에 음담패설을 들었다. 승마장에 쫓아갔다가 말에 차일 뻔도 하고, 상담을 하자고 먼저 부르더니 다른 회사 영업 사원과 날 나란히 앉혀놓고 더 비싼 선물을 주는 쪽과 계약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비 오는 날 양평에서 혼자 걸으며 다시는 친구들에게 보험을 팔지 않기로 결심한 날도 있었다.


한 달이 그런 날들로 가득 채워지면 마감을 하고 회식을 했다. 회식은 매번 뜨거웠다. 특히 영업팀 회식은 뜨겁기로 유명했다. 온갖 고생을 하며 또 한 달을 버텨낸 스스로에게, 동료들에게 부어라 마셔라 술을 따라주고 근육통이 올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첫 회식 때는 와이셔츠가 다 찢어질 정도였다. 노래방을 가면 첫 마이크는 항상 막내에게 주어졌고 첫 마이크를 잡은 막내는 분위기를 띄워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막내인 내가 그때마다 불렀던 노래가 바로 <Gimme! Gimme!>였다. 어쩌다 고른 선곡이었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마이크만 잡으면 무조건 부르던 노래. 이제 회사를 나왔으니 다시는 부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노래였다.


나는 이십 대의 대부분을 한 평짜리 고시원에 살며 악착같이 버텼지만 회사는 버티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맨날 회사 욕을 했지만 회사에도 좋은 사람들은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매달 받은 월급을 맥주와 치킨, 비밀스러운 고백과 눈물, 수다로 바꾸며 이십 대를 버텼다. 내 이십 대의 많은 시간은 어쩔 수 없이 회사와 얽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사라지자 나의 이십 대도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다. 간절히 붙고 싶은 면접에서 급히 준비한 개인기가 다 떨어지고 이제 정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생각한 지금. 우습게도 회식 때 부르던 노래 한 곡이 남았다.


익숙한 전주가 나오자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그리고 나의 이십 대가 주마등처럼 눈 앞을 스쳐갔다. 힘들 때마다 보던 <무한도전>도, 회식 때마다 부르던 노래도 지금 모두 여기에 있다. 마이크 대신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뽑아 들었다. 지난 며칠간 평생 할 긴장을 다 해서인지, 아니면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인지 신기하게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이십 대 내내 불렀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자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그 시절의 내가 함께 서 있는 것 같았다. 전부 다 허무하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갖은 고생을 하고 사라졌던 나의 이십 대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도와주러 왔다.


아마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이 노래를 다시 부를 일은 없겠지. 잘 안 풀리면 내 인생에 회식은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을 때 달려 나와준 나의 이십 대처럼. 오늘 이 순간도 마음 깊숙한 곳에 평생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또다시 내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 다시 달려 나와서 힘을 줄 것이다. 에라이! 그런 중요한 순간에 쪽팔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 우산을 꽉 쥐고 무대 중앙에 단단히 버티고 섰다. 언제가 됐든 더 이상 나한테 쪽팔리기 싫었다. 미안해하기 싫었다. 그건 이미 너무 많이 했다.


"자아, 오늘도 oo생명 에인절 플러스 지점 회식에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 말씀드리면서!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노래 한 곡 띄워드립니다! 컨츄리 꼬꼬 깁미 깁미! 가자앗!! “


입에선 회식 때마다 했던 멘트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노래를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와 골반을 너무 흔들어서 그런 것 같다. 나중에 작가들에게 듣기로는 골반이 탈골된 사람 같았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니 한창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고 작가들이고 카메라 감독들이고 다들 웃고 있었다. 너무 열창하느라 반응을 살필 겨를이 없었는데 반응이 좋으니 기운이 펄펄 났다. 장내 분위기와 노래가 함께 달아오르며 어느새 클라이맥스가 코 앞이었다. 좋아! 힘을 더 주려고 마이크 대신 잡은 우산을 꽉 쥔 순간.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접이식 우산을 꽉 쥐면서 버튼이 눌렸고, 로켓 펀치처럼 날아온 우산이 얼굴을 때린 것이다. 춤추느라 골반과 머리가 정반대 방향으로 향했던 나는 그대로 자빠졌다. 별이 번쩍했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넘어지는 와중에도 작가들, 카메라 감독들이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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