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별이 내려왔다

6. 형광팬 캠프

by 박구사


우리가 언젠가 별을 딸 수 있을까? 괜히 미안하고 고맙고 위안이 되는 총자의 카톡을 곱씹고 있는데

위쪽이 소란스러웠다.



우등 고속버스의 문이 열렸다. 손님들이 다 내리고 나서 버스에 오르자 널찍한 자리에서 안전벨트까지 하고 있는 사과 상자가 보였다. 등 뒤에서 기사님이 말했다.

"엄청 귀한 사과인가 봐요. 부모님이 좌석에다 실으신 거 보면. “


괜히 쑥스러워서 그렇다고 대답하고 서둘러 상자를 들고 내렸다. 제작진은 형광팬 캠프에 합격 후 비밀 유지를 하라고 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는데,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다는 아들이 갑자기 텔레비전에 나오면 놀라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말씀드리지 않고 신문에 실렸다가 크게 놀라신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미리 말씀드렸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 형님과 1박 2일 캠프를 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날이 유재석 형님 생일이니 집에서 키운 사과를 한 상자 선물하고 싶다고. 부모님은 택배는 시간도 촉박하고 운송 중에 파손될 염려가 있다며, 예쁜 사과만 고르고 골라 서울행 우등 고속버스에 사과를 실어 보내셨다. 나는 고향 갈 때 돈 아끼느라 시외버스만 타는데 사과가 우등 고속을 타다니. 덕분에 버스에 사람이 안 타고 사과만 실어 보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새 신발에 새 옷, 선물까지 챙기고 나니 어느새 다음 날이 캠프 당일이었다. 나는 머리만 대면 잠드는 사람인데 캠프 가기 전날 밤에는 두근거려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면서 간신히 얕은 잠을 자다 깨다 했다. 잠을 설친 정도가 아니라 스친 것 같았다. 설레서 잠을 못 이룬 건 얼마 만일까. 가족끼리 보라카이로 첫 해외여행을 갔던 날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그 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를 떠나기 이전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았다. 왠지 이 캠프도 나를 조금 바꿔 놓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새벽 운동을 하러 갔다가 탄산이 뭉근하게 바뀐 오란씨를 한잔 마시고 택시에 올랐다. 이미 일산 드림센터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고 유재석 팀 푯말을 찾아가니 로우 킥으로 유명한 란주 작가님이 우리 팀 담당이었다. 불과 지난주에 방콕 특집에서 명수 형님을 로우 킥으로 쓰러트리는 걸 봤는데 지금은 내 앞에 있다니. 꼭 연예인이라도 본 것 같았다. 내가 본 것만 대여섯 명이 작가님께 로우 킥을 차 달라고 부탁했다. 확실히 특이한 사람만 모였구나 싶었다.


우리 유재석 팀은 여자 일곱 명 남자 세 명이었다. 면접장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사람도 우리 팀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다들 금세 친해졌다. 교복을 입고 온 두 학생에 전직 아나운서, 전업 부주, 경찰, 작가, 교사, 댄서 등 서로 비슷한 점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뭔가 성향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팀끼리 인사를 나누는 걸 지켜보니 다른 팀도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있는 것 같았다. 말하는 톤이나 리액션 같은 것들이 본인 팀의 연예인과 비슷했다. 홍철 팀은 만나자마자 시끌시끌했고. 우리 팀은 모두 진행자 기질이 있어서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정준하 팀은 이미 덩치만 봐도 정준하 팀이구나 싶었다. 나중에 작가들도 신기하게 팀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따라가는 것 같다고 한 마디씩 했다.


우리 팀 사람들이 내가 들고 있는 사과 박스를 보고 궁금해했다. 오늘 재석 형님의 생일이라 준비했다고 하자 다들 짐 보따리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사전에 말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각자 생일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다. 초상화를 그린 사람도 있고 노래를 준비해 온 사람, 케이크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알아서 손발이 착착 맞는 걸 보면서 괜히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사람들이 아니구나 싶었다.

시간이 되자 차례로 줄을 맞춰서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건물 1층 로비 중간쯤에 ㅁ자 모양으로 난간이 둘러쳐 있었고 바로 아래층이 내려다 보였다. 아래층에는 나무로 된 큰 계단이 보였고 고개를 들자 맨 꼭대기 층까지 천정이 없이 뻥 뚫려 있었다. 나무계단 앞에는 수많은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이미 자릴 잡고 있었다. 우리는 팀별로 한 줄씩 나무 계단에 앉아서 대기했다. 난간에 기댄 사람들이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무한도전> 멤버들을 기다리면서 촬영 시 주의 사항 같은 것들을 들었다. 그러는 동안 주변의 몇 명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연락을 했는데 총자에게 답장이 왔다.


‘네가 준 옷값은 봉투에 담아서 가방에 넣어뒀다. 조심히 잘 다녀오고 생각해줘서 고맙다. 가끔씩 자주 보자.’

가방을 뒤지자 안쪽 작은 주머니에서 내가 옷값으로 줬던 봉투가 나왔다. 애초에 옷값이 부족할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총자는 내게 값을 받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매일 전화로 욕을 들어가며 번 돈으로 총자에게 옷을 사러 갔고, 밤이면 가로수길에서 맥주잔을 나르고, 낮이면 옷더미 사이에서 미싱을 하던 총자는 내게 새 옷을 선물했다. 서울 생활은 팍팍하다.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합격과 대박을 꿈꾸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밤이 깊어야 잘 보이는 별처럼 힘든 하루하루를 보낼 때 이런 호의는 더욱 빛나는 법인가 보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나는 합격이라는 별을 따기 위해 오란씨를 마시며 돈을 아꼈다. 총자는 대박이라는 별을 따기 위해 알바가 끝나면 옷더미 사이에서 쪽잠을 잤다. 우리가 언젠가 별을 딸 수 있을까? 괜히 미안하고 고맙고 위안이 되는 총자의 카톡을 곱씹고 있는데 위쪽이 소란스러웠다. 고개를 들자 저 위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통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꿈에도 그리던 스타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에서 별이 내려왔다.

이전 10화오란씨와 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