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가는 횟수를 줄이려고 커피 가루를 조금씩 삼켰다.
평생의 운을 다 써버렸다는 말이 있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행운을 만났을 때 하는 표현이다. <무한도전> 캠프에 다녀오고 방송이 나가는 3주 내내 축하가 끊이질 않았다. 첫 방송이 나가기 전 100% 충전된 휴대폰이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방전이 될 정도였다. 재석형은 방송이 끝난 후에도 우리 팀을 집 근처로 불러 밥을 사주기도 했다.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헤어질 무렵. 재석형은 본인이 타는 카니발이 크고 편하다며 여자 동생들을 태워 보냈다. 덕분에 남자들끼리 따로 한 차에 타서 재석형을 바래다주게 되었다. <무한도전>에서 자주 보던 압구정 아파트에 형을 내려드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바로 옆에 유재석을 태우고 집까지 바래다주다니, 나는 평생의 운을 다 써버린 게 아닐까?'
꿈같은 시간이 끝나고 다시 늦깎이 수험생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열이 펄펄 끓어서 이명이 들렸고 편도선은 부어서 수술 직전까지 갔다. 형광팬 캠프를 촬영하는 1박 2일간 강행군을 한 탓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형광팬’에 나가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무한도전> 멤버들과 나란히 앉아 있을 때는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렸다. 잠깐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몇몇 사람들이 쫓아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을 실제로 만나는 꿈도 이뤘으니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은 한 달도 안 돼 바닥으로 추락했다. TV에 내가 나온다 한들 나는 무릎이 나온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은 늦깎이 수험생이었다. 관심을 한 몸에 받다가 며칠 만에 밥벌이를 걱정하는 수험생이 된다는 건 마치 늦게 찾아온 고산병을 앓는 것 같았다. 높이 올라갔을 때는 멀쩡하다가 바닥에 내려오고 나서야 찾아온 열병. 그렇게 병에 걸린 마음으로 공부를 해나갔다.
마음이 비틀거려서 의자에 오래 앉아있기 힘들었다. 그래도 앉아서 한 글자라도 더 보려고 이를 악물었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나중에는 물 없이 커피 가루만 삼켰다. 덕분에 속은 시커멓게 망가졌고 집에 돌아갈 때면 허리보다 어금니가 더 아팠다. 체중이 날이 갈수록 줄었다. 시험 당일 아침에 거울을 봤더니 나는 벼려진 칼날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