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구사 Dec 14. 2020

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할 때 1

1. 아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감자 영그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어?


십오 년째 가계부를 쓰고 있다.


노점을 하면서 장부를 엑셀로 정리하던 것에서 시작해서 이제

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한다. 처음 가계부를 쓰게 된 이유는 단밤

의 수량관리나 매출 정리에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불안했

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십 대가 그렇듯 그 당시 내 마음은 하루

도 편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했고 대학을 때려치우고

노점을 시작한 내 선택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정부 지원이

끝나면 매달 감당해야 할 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도 무서웠다. 길

거리에 나가 장사를 시작한 며칠간은 잠이 오질 않았고 나중에는

쉬고 있어도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마음이 편해지

는 시간은 엑셀에 숫자를 넣을 때였다. 엑셀에 그날 매출을 입력

하고 단밤 값과 포장용 봉투 값, 가스비, 버스비를 빼면 그날 하

루 동안의 내 노력과 선택의 결과가 정확하게 숫자로 나왔다.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는 내 하루에 유일하게 확실한 숫자.


돈.


‘어제 비를 쫄딱 맞아서 몸살 기운이 있는데 좀 늦게 나갈까?

출근 시간을 지키는 게 나을까? 혹시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옷을 하나 챙길까? 시장까지 걸어갈 텐데 더우려나? 그냥 버

스를 타고 일찍 가서 장사를 더 하는 게 나을까? 오늘 점심은

또 볶음밥 먹어야 하나? 천오백 원 더 내고 돈가스를 먹을까?

돈가스는 비싸고 먹는 시간도 더 걸릴 텐데. 지금 횡단보도를

건너는 저 손님에게 단밤을 건넬까? 표정이 무서운데 그냥 주

지 말까? 신발 밑창 떨어져 가는데 신발 하나 살까? 나 지금 최

선을 다하고 있나?’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는 이런 질문들은 내게 선택을 요구했다.

이런 질문들에 딱히 정답이 있겠냐마는 나는 엑셀에 나온 숫자가

그날 내 선택의 결과이자 정답이라고 믿었다. 버스를 타든 걷든

지 간에, 볶음밥을 먹던 돈가스를 먹건 간에 그날 엑셀에 입력한

매상이 크면 전부 다 옳은 선택이자 정답이 되었다. 매상이 줄어

들면 다 틀린 선택이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정확히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나는 그렇게 여겼다.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논리

적이고 다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계부를 쓰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장사에 도움이 되고 위안까지 주는데 안 쓸 도리가 없

었다. 결국, 매일 숫자를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매일 숫자를 확인하는 버릇은 회사에 들어가서 더 심해졌다. 회

사 사무실 벽에는 매일 아침 전날까지의 보험 판매 실적이 붙어

있었다. 1등부터 600여 등까지 모든 사원의 실적이 나와 있었는

데 당연히 A4용지 한두 장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 몇십 장의 A4

용지를 세로로 길게 이어 붙여야 600여 명의 이름이 전부 들어갔

다. 그걸 게시판에 붙여놓으면 벽에 걸린 길게 늘어진 두루마리

휴지처럼 보였다. 누가 생각했는지 참 악랄한 생각이었다. 영업

조직에서 실적 압박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판매실적 정도

는 공개해서 붙여 놓을 수 있지 않냐고?


게시판은 보통 눈높이에 맞게 걸려있다. 정보를 전하려면 보기

편해야 하니까. 거기에 그 기다란 종이를 붙이고 물러서서 자기

등수를 확인하는 사람들을 보면 악랄한 의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맨 위의 한 두 장에 이름이 들어간 판매 실적 최상위권은 허리를

쫙 펴고 서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다. 판매실적 중위권부터는

실적이 낮은 사람일수록 본인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 허리를 굽히

거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실적 최하위권이 자기 이름을 찾으려

면 바닥에 휴지처럼 나뒹구는 종이를 하나씩 뒤집어야 한다. 비

라도 내린 아침에는 사람들이 밟은 종이가 젖어서 더 찾기 힘들

어진다.


아침마다 높은 등수인 사람이 낮은 등수의 이름들을 밟고 서서

자신의 높이를 확인한다. 등수가 낮은 사람은 그들이 떠난 뒤에

야 짓밟힌 자기 이름을 찾는다.


글로 적으니 가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이 짓을

매일 겪으니 무덤덤해지더라. 나는 맨 최상위 권까지는 아니었지

만, 최소한 바닥에 밟히지 않는 등수를 사수하려고 발버둥 쳤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가며 전화통을 붙잡고 보험을 팔았고 헤

드셋을 쓴 관자놀이가 옴폭 파일 정도로 오랫동안 입을 놀렸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다들 예민해져서 업무시간에 볼펜을 똑딱거

리다가 욕설을 들었다는 정도는 이야깃거리도 못 되었다.


가끔 종일 전화를 돌려도 계약 한 건도 못 하는 날이면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 불안해졌다. 그럴 때면 나는 통장 잔

고를 확인했다.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계약직 콜센터 직원

에게는 통장에 찍힌 숫자만이 기댈 곳이었다. 내가 해온 선택과

버텨낸 것들의 결과가 거기에 있었다. 내일도, 오늘도, 직장도 전

부 부표처럼 흔들렸지만 숫자만은 그대로였다. 내가 발버둥 친

만큼만 늘어나 있었고, 쉰 만큼 줄어 있었다. 불안할 때마다 숫자

를 확인해가며 다시 헤드셋을 썼다.


회사를 나오자 기댈 곳도 숫자도 사라졌다. 고민 끝에 서른이

넘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농

업직을 골랐지만, 비전공자에겐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다. 재배

학을 비롯한 농과대학 전공 서적들은 내가 보기에는 영어책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소리 내 읽을 수만 있고, 뜻을 이해할 수 없었

으니까.


주변에 공시생도 없었으니 합격 수기만 보고 공부를 시작했는

데 ‘회독’이라는 것이 있었다. 원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걸 1

회 독이라고 하는데 5회 독, 7회 독, 10회 독까지 했다는 수기가

많았다. 일단 회독이라는 게 필수라니 해봐야지. 3일에 걸쳐 처

음 재배학 원서를 다 읽고 나서 머리가 멍했다. 마지막 장을 덮어

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게 1 회독이라고? 이걸 10번 하

면 합격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당장 한 페이지도 이해하

지 못했는데 어떻게 합격해? 갑자기 앉아있던 의자 다리가 하나

부러진 것처럼 불안해졌다.


책을 읽고 문제집을 풀어도 내 안에 쌓인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공부를 하면서도 긴가민가했다. 솔직히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서 무작정 책을 읽고 문제를 풀고는

있지만 이게 맞는 건지, 지금 내 안에 지식이 쌓이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시험 점수로 내 안에 쌓인 지식을 확인하면 좋

겠지만 시험은 1년에 한 번 뿐이라 당장 확인할 수 없었다. 매일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오늘 공부를 제대로 한 건지 불안했다. 불

안감이 차올라 갑자기 공부를 하다 말고 전년도 경쟁률이나, 합

격선 같은 것을 찾아보았다. 나중엔 내가 지원하지 않을 지역의

경쟁률이나 이미 어제 찾아봤던 합격선도 또 찾아보게 되었다.

이제 그만해야 했다. 나는 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것을 믿는 법을

배워야 했다.


뭐 별다른 방법이 있었던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

니다. 그냥 믿는 수밖에 없었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들여다봤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은 읽고 나면 바로 잊혔다. 그래도 계속 읽

어나갔다. 어떨 때는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앉아서

계속 읽었다. 그렇게 종일 책과 씨름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

에 누우면 뿌듯하기보단 오늘 제대로 공부를 하긴 한 건지 불안

했다.


‘하아…. 내일 공부는 또 어떻게 하지.’


그렇지만 내가 불안할 때 기댈 곳은 숫자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내일 뭘 할지 내일 뭘 할지 꿈꾸게 했지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나 자신을


- 유재석, 이적 ‘말하는 대로’ 중에서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하는 대로’를 참 많이 들

었고 불렀다. 도서관을 오가는 길이나 벤치에 앉아 쉬면서도 불

렀다. 재석이 형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테니 너를 믿으라고 했

기에 그렇게 했다. 숫자가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자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하는 말을 믿기로 했다.


나 말고도 이 노래 덕분에 위안을 받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특히 취업 준비생과 수험생이라면 더더욱. 믿지 못하겠다면 당장

유튜브에 들어가 보시길. 이 노래를 듣고 장문의 댓글을 남겨가

며 위로를 주고받는 많은 사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말

하는 대로를 들으며 거기에 달린 댓글들도 자주 읽었다. ‘불안해

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구나,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불

안함을 이기려 애쓰고 있구나.’ 하고 위안을 얻었다.


재석이 형이 부른 원곡도 좋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버전

은 ‘보이스 코리아 2’에 나왔던 윤성기, 조재일 님의 말하는 대로

였다. 재석이 형의 원곡이 잔잔하게 위로해주는 느낌이라면 윤성

기, 조재일 님의 노래는 답답한 미래를 뻥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이 동영상의 하이라이트는 2분 8초에 나오는 ‘예아!’와 2분 38초

에 ‘그댈 믿는다면!’ 이 부분이다. 매년 이 부분만 들으러 영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댓글창에 가득할 정도로 좋다.


시험에 합격하고 1년째 되던 날. 친구가 개최하는 행사에 초

대받았다. 국회에서 열린 청소년들의 연설 대회였다. 구석 자리

에 앉아 연설도 듣고 여기저기 둘러보는 사이 마지막 참가자의

연설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내 앞 좌석에 앉은 남자가 일어섰다. 청중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

더니 노래를 한 곡 부르겠다며 무대에 올랐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이었다. 누구지? 분명 얼굴이 낯익은데. 곧이어 익숙한 전주

가 나왔다. 전주를 듣고서야 저 남자가 누군지 생각났다. 무대에

선 남자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눈은 무대를 향해

있었지만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노래가 몇 명을 살렸을까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